다자이오사무-인간실격
아 그 얼굴에는 표정이 없을 뿐만 아니라 인상조차 없다. 특징이 없는 것이다. 예컨대 내가 이 사진을 보고 눈을 감는다 치자. 나는 이미 그 얼굴을 잊어버렸다.- 고교시절 사진인지 대학시절 사진인지는 분명치 않지만 어쨌든 대단한 미남이다. 그러나 이것 또한 이상하게도 사람이라는 느낌이 전혀 들지 않는다.
(인간실격 Page 16)
저는 화를 내는 인간의 얼굴에서 사자보다도, 악어보다도, 용보다도 더 끔찍한 동물의 본성을 보게 되는 것이었습니다. 평상시에는 본성을 숨기고 있다가 어떤 순간에, 예컨대 소가 풀밭에서 느긋하게 잠자고 있다가 갑자기 꼬리로 배에 앉은 쇠등에를 탁 쳐서 죽이듯이, 갑자기 무시무시한 정체를 노여움이라는 형태로 드러내는 모습을 보면 저는 언제나 머리털이 곤두서는 듯한 공포를 느꼈습니다. 이 본성 또한 인간이 되는데 필요한 자격 중 하나일지도 모른다고 생각하면 저 자신에 대한 절망감에 휩싸이곤 했습니다. (인간실격 Page 42)
또 저는 가족한테 꾸중을 듣고 말대꾸한 적이 한번도 없었습니다. 그 사소한 꾸중은 저에게는 청천벽력과도 같아 저를 미칠 지경에 이르게 했기 때문에 말 대꾸는 커녕 그 꾸중 이야말로 말하자면 만세일계, 즉 고대로부터 단일 계통을 이어온 일본인의 ‘진리’임에 틀림없다, 나한테는 그 진리를 행할 능력이 없으니까 더 이상 인간과 더불어 살 수 없는게 아닐까, 라고 확인해 버리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저는 말싸움도 자기 변명도 하지 못했습니다. (인간실격 page 2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