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3.06.22. 진정한 제주살이
오늘은 숙소에서 늦게 나왔다. 그래봤자 11시. 아이와 빈둥빈둥하다가 11시쯤 나와서 근처 산책을 갔다. 숙소가 외진 곳에 있어 산책하는 것도 마땅치 않다. 그냥 마당을 도는 것도 좋지만 5일 차가 되니 그 마저도 아이에게도 나에게도 익숙한 느낌이다. 야자가 우거진 공간을 걸으며 아이와 나는 또 한 번 제주를 실감했다.
'아, 우리가 제주에 있구나.'
아이와 단둘이 이렇게 지내다 보니 숙소밖을 나가지 않으면 그냥 제주라는 느낌이 적다. 그래서 꾸역꾸역 나가려고 하는 건 아닌가 생각했다. 제주를 더 느끼고 싶어서 제주라는 공간을 더 담아주고 싶어서.
아이가 힘들다면 안아주고, 내가 힘들다 하면 잠시 쉬어가는 시간들이 생겼다. 그 힘듦을 공유하는 것이 아이라는 것에 새삼 또 감사함을 느꼈다. 아이와 내가 이제 메이트가 되어 함께 즐기고 있다. 엄마가 혼자 고군분투하는 것이 안쓰러운지 아이가 한 번씩 꼭 안아준다.
"사랑해." 무심한 듯 뱉는 이 말에서 진심이 느껴져서 너무 좋다. 그러면 나도 말해준다.
"엄마가 더 사랑해."
사랑한다는 말의 뜻이 온전하게 느껴질까? 사랑해라는 말에 담기엔 나의 사랑은 크다. 그래서 사랑한다는 말을 더 자주 하려고 하는지 모르겠다. 아이도 마찬가지일 거라고 생각한다.
아이와 단둘이 5일을 보내보니 아이가 나를 많이 배려해주고 있다는 것을 새삼 느낀다. 기다려주는 아이의 모습에서 나는 또 한 번 성숙함을 느끼고, 나에게 양해를 구하는 모습에서 또 한 번 아이의 성장을 느낀다. 같이 성장하고 있는 기분이다. 나는 나대로, 아이는 아이대로.
이 제주살이는 한 달 살기의 워밍업이지만 아이와 내가 다시 한번 우리의 관계(?)와 우리가 앞으로 살아갈 삶의 방향성을 다시 한번 생각해 주는 기회가 되었다. 나는 더 열심히 아이와 살아갈 것이다. 아이와 함께 일 년에 한 번은 이렇게 타지에서 살아가는 삶을 살아가는 여정을 택할 것이다. 그건 아이에게 경험에 대한 가치를 더 실어주기 위해서 일지도 모르겠다.
비행기도 타 본 놈이 탄다.
나는 이 말에 공감한다. 나는 직장생활을 하며 처음 해외여행이라는 것을 가 보았다. 세상이 이렇게 넓은지 세상에 이렇게 할 일이 많은지 그때 처음 알았다. 그걸 미리 알았더라면 나의 꿈은 더 크지 않았을까?
아이가 이루어야 할 꿈을 생각하기 전에 더 방대한 꿈을 꿈꿨으면 좋겠다. 이루어지든 안 이루어지든 꿈의 폭과 깊이가 넓고 깊었으면 좋겠다. 그래야 하고 싶은 것도 해야 하는 것도 많아질 것이다. 삶은 길다. 그 삶 속에서 지루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내일이면 아이 아빠가 비행기를 타고 제주에 온다. 그렇게 생각하고 보고 싶다던 아빠를 만나면 어떤 반응일지 궁금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