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프롤로그] 남자끼리 결혼, 왜 하려고 해?

한국에서 과한 게이로 살아가기

by 조삼식

돌이켜보면 나는 어릴 적부터 참 ‘과한 게이’였다. 중학교 3학년 여름방학에 좋아하던 같은 반 남자애에게 커밍아웃과 고백을 동시에 날렸고, 고등학교 때도 짝사랑하던 친구에게 커밍아웃과 고백을 또 날렸다. 그래도 성에 차지 않았는지 대학교에 간 뒤로는 본격적으로 주변 친구들과 지인들에게 커밍아웃을 하기 시작했다. 스물한 살 여름에는 부모님에게도 커밍아웃을 했다. 군대에 가서도 선임에게 커밍아웃을 했고, 이후로도 대학원 교수님들, 회사 동료들에게까지 냅다 커밍아웃을 해 버렸다. 그럼에도 커밍아웃은 죽을 때까지 할 수밖에 없는 것인가, 하는 생각을 하며 30대 중반이 된 지금까지도 꾸준히 기회가 닿을 때마다 커밍아웃을 하고 있다.

누구는 30대가 되어서도 제대로 된 커밍아웃 한번 없이 은둔으로 살기도 한다던데, 나는 사춘기가 시작되고부터 줄곧 내가 남자를 좋아하는 동성애자임을 알리지 못해 안달난 사람 같았다. 대체로는 응원해 주는 친구들이 대부분이었지만 어떤 친구들은 오늘 또 커밍아웃 한 건 하고 왔다는 얘기를 별일 아닌 듯 얘기하는 나에게 농담처럼 너는 좀 과한 거 같다며 고개를 가로젓곤 했다(어쩌면 진담이었을지도 모르겠다). 내가 과해서 같이 어울리기 불편함을 노골적으로 드러내는 게이 친구들도 있었다. “왜 그렇게까지 너를 드러내야 해? 그냥 평소에는 조용히 살다가 종로나 이태원에서만 신나게 놀면 되잖아. 너 때문에 같이 다니는 나까지 게이인 거 들킬 것 같아서 불안해.” 하지만 과한 게이를 막을 수는 없었다.


그러던 어느 날, 그 과한 게이가 정말로 일을 저질렀다. 궁합도 안 본다는 4년 연상의 동성 애인과 10주년 기념일에 무려 미국 땅 하와이까지 가서 혼인신고를 한 것이다. 그리고 그 다음 해에는 한국에서 친지들과 친척들 수백 명을 모시고 결혼식을 올렸다. 그리고 이제는 동성혼을 인정하지 않는 한국의 현행 민법이 위헌이라며 다른 동료 동성 커플들과 소송까지 시작했다.


사실 어지간히 과하지 않고서는 아무리 장기 연애를 하는 커플이라도 동성혼이 불가능한 한국에 살면서 결혼으로 생각이 이어지기는 힘들다. 주변에 처음 결혼 계획을 알렸을 때 응원해 주는 사람들만 있는 건 아니었다. 의외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동성 결혼? 어차피 한국에서 인정도 안 되는데 굳이 왜 하려고 해?"라며 의아해하는 사람들도 꽤 있었다. 충분히 나올 만한 반응이었다. 나조차도 내가 게이임을 인정한 순간부터 한국을 뜨지 않는 이상 내 인생에 결혼이란 없겠다는 생각을 늘 했으니까. 그렇지만 특별한 계기로 귀인을 만나, 실현 가능한 선택지로서 결혼에 눈을 뜨게 되었고 실행에까지 옮길 수 있었다. 물론 그 과정에서 선례를 찾기 힘들어서 짝꿍과 함께 머리를 맞대고 열심히 난관을 헤쳐 나가기도 했다.


뒤에서 상세히 다루겠지만 핵심은 가시화와 상상력이다. 과거의 나를 포함한 수많은 한국 퀴어들이 결혼을 지레 포기해 버렸던 데에는 여러 가지 원인이 있겠지만 주변에 그런 사람이 없기 때문이라는 이유가 굉장히 크다. 사람은 자신의 미래를 그릴 때 자신이 보고 들은 것들을 바탕으로 상상하고 계획하게 마련이다. 닮고 싶은 롤모델을 참고하는 경우도 매우 많다. 그런데 한국에 결혼한 동성 커플이 얼마나 될까? 직접 아는 주변인으로 범주를 한정한다면 더욱 드물 것이다. 우리 결혼식에 참석했던 퀴어 친구들이 보내 준 후기 중에서도 가장 많았던 이야기가 “파트너와 결혼을 상상하고, 결혼을 주제로 대화를 할 수 있게 되어 좋았다”였다. 퀴어들에게는 다양한 삶의 예시가 하나라도 더 필요하다.


내가 왜 이렇게까지 ‘과하게’ 살아 왔는지 때로는 나 스스로도 의문이 들어서 혼자 곰곰이 생각해 본 적이 있다. 그리고 다다른 결론은 내가 점잖게 말하면 인정욕이 큰 사람이고 시쳇말로는 ‘관종’이기 때문이라는 점이었다. 누군가는 과하다고 표현하고, 누군가는 대단하다고 박수를 보내던 이 모든 과정들은 결국 내가 나로서 있는 그대로 인정받고자 하는 욕구에서 비롯되었을 뿐이다. 가만히 있는다고 해서 내가 게이인 사실이 변하지도 않고, 게이들을 포함한 다양한 성소수자, 즉 퀴어들이 차별받는다는 사실도 변하지 않는다. 아무도 우리를 먼저 알아주지 않고 아무것도 나아질 수 없다. 그래서 우리는 끊임없이 우리의 존재를 알리고 우리가 겪는 부당함을 고쳐 달라고 외쳐야 한다. 물론 모든 퀴어가 그럴 수도 없고, 그럴 필요는 없다. 목소리를 내는 행위에는 반드시 크고 작은 리스크가 따르기에 개인의 삶을 무탈히 영위하는 것이 최우선이 되어야 한다는 데에는 나도 절대적으로 동의한다.


어쨌든 나는 최대한 목소리를 내는 편을 택했고, 지금까지 나를 드러내온 여정을 글로 남겨 보려고 한다. 말하고 보니 이 또한 과하다. 그 누구에게도 글을 써 달라고 의뢰를 받은 적은 없다. 하지만 내 경험을 세세히 담은 글을 읽고서 누군가는 벽장 밖으로 나와 스스로를 드러내고, 나아가 인생의 반려자를 만나서 결혼까지도 꿈꿔볼 수 있기를, 또 누군가는 세상을 보는 시야를 넓힐 수 있기를 바라며 한 자씩 써 보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