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년 시절 나는 '지극히 평범한 아기 게이'였다. 활동적이고 짓궂은 남자애가 아니라 얌전하고 조용조용한, 흔히들 말하는 '딸 같은 아들'이었다. 그리고 부모님의 결혼식 비디오 보는 것을 어찌나 좋아했는지 이제 겨우 말을 배우기 시작한 서너 살 때 화면 속 주례 선생님의 “검은 머리 파뿌리 될 때까지…”라는 주례사를 외울 정도였다. 비디오를 다 보고 난 다음에는 신랑신부 인형으로 결혼식 놀이를 했고, 흰색 애착 담요를 곱게 두르고 집에 있던 조화 다발을 손에 들고서 신부 흉내를 내며 놀았다. (결혼에 대한 나의 로망은 이미 그때부터 있었는지도 모르겠다)
놀이 취향도 여느 게이들과 다르지 않았다. 변신 로봇보다는 '웨딩 피치' 삼총사 피겨를 훨씬 좋아했다. 어쨌든 로봇 장난감이 있기는 했다. 그렇지만 우리 집에서 변신 로봇은 웨딩 피치와 릴리, 데이지의 남자 친구 역할일 뿐이었다. 물론 우리 집에 축구공도 있었다. 하지만 그 축구공이 왜 있었는지는 도무지 기억이 안 난다. 혹시 아빠가 아들과 공놀이를 하고 싶은 로망이 있어서 사 오셨던 걸까? 아니면 방구석에서 인형만 가지고 노는 아들을 보고만 있기 답답해서? 이도저도 다 아니면 혹시 나 스스로 어린 마음에도 ‘이건 좀 아니다’ 싶어서 남자애 놀이를 좀 시도해 보고자 자발적으로 사달라고 했을까? 도저히 모르겠다. 어쨌든 그 축구공은 제대로 한번 발에 차여 보지도 못한 채 베란다 구석에서 서글프게 바람만 빠져 버리고 말았다.
지금껏 어디서도 말한 적 없는 어릴 적 취미 하나가 있었다. 하지만 이 또한 크게 놀랍지는 않을 지극히 평범한 취미다. 바로 엄마의 파란색 고무줄 치마를 입고 놀기였다. 엄마가 집에서 편하게 입던 옷이었는데, 자잘한 꽃무늬가 박혀 있고 신축성이 좋은 원단에 밑단이 발목까지 오는 긴치마였다. 나는 그때 키가 작았기 때문에 허리 고무줄을 겨드랑이까지 한껏 끌어올리면 바닥에 끌리지 않고 딱 알맞았다. 그 치마를 입고 방 안을 걸어 다니거나 빙글빙글 돌면 치마가 바람에 날려 펄럭였다. 그 느낌이 무척 좋았다. 어쩐지 내가 표현하고 싶은 내 모습이 된 해방감 같은 것도 느껴졌다. 하지만 그러면서도 '나는 남자니까' 이런 옷을 입은 꼴을 남들에게 들켜서는 안 된다는 학습된 수치심이 공존했다. 열심히 치맛바람을 일으키며 재밌게 놀다가도 수시로 누가 오지 않는지 현관에 촉각을 곤두세웠다. 그래서 집에 아무도 없을 때만 그 치마를 입고 놀았고, 치마를 입고 밖에 나가는 등 남의 눈에 띄게 하는 일은 없었다. 아기 게이의 은밀한 취미 생활이었던 셈이다.
남몰래 동경하던 것이 한 가지 더 있다. 바로 긴 머리카락이다. 긴 머리가 날려서 찰랑거리는 모습이 그렇게 멋져 보일 수 없었다. 그래서 엄마가 짧은 머리보다는 긴 머리 스타일을 했을 때 더 좋았고, 학교에서도 머리를 기르고 다니던 여자 친구들이 부러웠다. 90년대생 어린이들을 홀렸던 만화 '세일러 문'에서도 내가 가장 좋아했던 캐릭터는 다름 아닌 세일러 넵튠이었다. 다른 세일러 전사들도 물론 멋지지만, 넵튠의 변신 장면은 유독 멋지다. 넵튠이 변신 주문을 외치면 심금을 울리는 우아한 바이올린 선율이 흐르기 시작하고, 미용실에 들고 가서 보여주면 '손님, 이건 고데기세요' 소리를 들을 게 분명한 컬이 탐스러운 푸른색 머리카락이 파도처럼 넘실댄다. 그 모습을 보고 있으면 '내 머리도 저렇게 길고 탐스러웠으면 좋겠다'는 생각이 들곤 했다. 비록 실행에 옮기지는 못했지만. 게다가 넵튠과 우라누스는 유명한 레즈비언 커플이 아니던가. 비록 한국에 수입되면서 연인 관계임이 드러나는 장면은 모두 검열되었지만 뭐, 세상에 어떤 것들은 꼭 말로 하지 않아도 알 수 있는 법이니까. 세일러 넵튠이 아기 게이의 타고난 마이너 취향을 저격하기에는 모자람이 없었다. (나중에 안 사실이지만 게이들 사이에서 넵튠이 '세일러 문' 최애 캐릭터인 것은 하나의 공식이었다. 이 또한 지극히 평범하지 않을 수 없다.)
초등학교에 가서도 자연스럽게 남자애들보다는 여자애들과 어울렸다. 그게 마음이 편했다. 쉬는 시간마다 야구공 대신 공깃돌을 던졌고, 축구공을 차는 대신 노래에 맞춰 고무줄을 밟느라 구슬땀을 흘렸다. 교실 뒤 마룻바닥에 서너 명이 둘러앉아 손가락에 가시가 박히도록 치열하게 공기놀이를 하다 보면 그렇게 즐거울 수 없었다. 고무줄을 끊거나 잡아당겼다 놓고 도망가는 남자애들도 물론 있었지만 언제나 나는 그런 애들을 쫓아가 잡는 쪽이었다. 놀랍지 않게도 그런 무리에서 나 혼자만 남자일 때가 많았는데, 나를 이상하게 보는 남자애들도 간혹 있긴 했지만 오히려 당시에는 크게 개의치 않았던 것 같다. 어린 마음에 그냥 내가 좋아하는 친구들과 하고 싶은 놀이를 하려는 마음이 조금 더 컸던 모양이다.
하지만 그토록 평범한 아기 게이에게도 사춘기가 찾아왔다. 차츰 또래 집단의 눈치를 보기 시작하면서 내가 여자애들과 더 잘 어울리고 공놀이를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는 점, 그러니까 남들이 보기에 충분히 남자답지 않다는 점이 점점 부끄러워졌다. 중고등학교에 가서는 남자애들과 억지로 어울리며 축구를 하려고 노력도 해봤지만 초등학교 때부터 밥 먹고 공만 차던 애들과 상대가 될 리가 없었다. 노력할수록 자꾸만 우스꽝스럽게 반사적으로 공을 피하거나 헛발질만 하면서 웃음거리만 될 뿐이었다.
자연스럽게 마음이 가고 좋아하던 것들은 일부러 멀리하고, 눈길 한 번 주지 않던 것들은 억지로 가까이하려다 보니 중고등학교 때에는 취향 없는 삶을 살았다. 기억 속 그 시절은 맑은 날보다는 회색빛 안개가 잔뜩 낀 날이 많다. 하지만 그 안개 속에서도 넵튠의 푸른 빛 머릿결은 살아 있었다. 늘 조용히 일렁이며, 내가 진짜 나를 잊지 않도록 붙들어 주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