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리수 씨가 남긴 선물

by 조삼식

부모님은 내가 충분히 ‘남자답지’ 않은 것에 대해 크게 개의치 않으셨던 것 같다. 내가 나가서 축구공을 차는 대신 방에서 인형을 가지고 놀아도, 변신 로봇이나 미니카가 나오는 만화(그런 만화는 제목이 하나도 생각이 안 난다) 대신 마법 소녀들이 나오는 ‘세일러문’과 ‘웨딩피치’를 열심히 보고 있어도 “너는 왜 남자애가 되어서”로 시작하는 잔소리나 꾸중을 하신 기억이 없다. 오히려 그냥 내가 원하는 장난감이면 그게 인형이든 로봇이든 따지지 않고 사 주셨다. 로봇? 그렇다. 로봇도 세 개나 있긴 있었다. 물론 전투 상황극 따위에서 활약하기보다는 웨딩피치 삼총사 피겨의 남자 친구들 역할에 늘 머물렀지만.


그런데 나중에야 알게 된 사실이지만 엄마는 아무래도 그런 내가 조금은 걱정되셨던 모양이다. 내가 유치원에 다닐 때쯤, 아는 정신과 의사 선생님에게 “삼식이가 인형만 계속 가지고 노는데 혹시 그래도 괜찮은 걸까요?”라고 슬쩍 물어보신 적이 있는데, 다행히 그분이 전혀 심각하게 여기지 않으시고 “별로 문제 될 건 없어요.”라고 하셨고, 그 덕에 엄마도 대수롭지 않게 여기고 마음을 놓으셨다고 한다.


이제는 해프닝이 된 그 사건을 엄마가 처음 얘기해 주었을 때에는 엄마도 나도 같이 와하하 웃었지만, 곱씹어보면 살짝 아찔하기도 하다. 과거뿐 아니라 지금 이 순간까지도 한국의 수많은 퀴어들이 부모의 잘못된 인식과 비뚤어진 믿음 때문에 교회로 ‘전환 치료’를 받으러 끌려다니는 현실을 생각한다면 참으로 천운이라고 할 수밖에 없다. 만약 혹시라도 그 선생님이 “아무래도 정상이 아닌 거 같은데요. 한번 병원에 데리고 와 보시겠어요?”라든가, “삐빅, 게이입니다. 유년기부터 교정 치료가 시급합니다.” 따위의 말로 엄마에게 불안감을 조성했더라면 내 유년기는 평화롭지 않았을지도 모를 일이다.


게이 아들로서는 다행스럽게도 부모님은 지금까지 진보 성향의 한겨레 신문을 구독하고 있고, 내가 어렸을 때에는 같은 신문사에서 발간하는 시사 주간지 <한겨레21>도 함께 받아보셨다. 나는 초등학생 때라 열심히 읽은 기억은 많이 없지만 매주 그 주간지가 집으로 배달되던 기억은 선명한데, 여기에는 내가 지금의 나로 성장할 수 있었던 밑거름 같은 소중한 기억이 하나 얽혀 있다.


2001년 6월 어느 날 저녁, 엄마는 당시 초등학교 5학년이던 나에게 <한겨레21> 최신호를 불쑥 내밀며 물으셨다. “삼식아, 이 사람 여자로 보여, 남자로 보여?” 표지에는 예쁜 여성의 얼굴이 크게 인쇄되어 있었다. 고민의 여지가 없었다. 도리어 나는 왜 이런 질문을 하냐는 듯 대답했다. “여자 아니야?” 엄마는 살짝 웃으며, 덤덤하게 말씀하셨다. “이 사람은 원래 남자로 태어났는데, 여자로 살고 싶어서 수술을 하고 여자가 된 사람이야.” 그렇다. 표지의 그 여성은 바로 한국의 1호 트랜스젠더 연예인, 하리수 씨였다.


당시 한국 사회는 새 천년을 맞고도 여전히 퀴어의 불모지나 다름없었다. 하리수 씨는 스스로 ‘핫이슈’가 되겠다는 포부를 담은 예명답게 퀴어로서 존재감을 마구 뿜어내며 데뷔와 동시에 스타가 되었다. 12살 아기 게이의 눈도 감쪽같이 속일 정도로 예뻤던 하리수 씨는 “여자보다 예쁜 여자”라는 (요즘 관점에서 보면 다소 정치적으로 올바르지 못한) 꼬리표가 늘 따라다녔다. 하지만 한국을 휩쓸었던 인기만큼 부정적 편견도 거셌다. 슬프고 화나는 이야기지만 홍석천 씨의 커밍아웃과 하리수 씨가 데뷔한 이후로 전국 수많은 학교에서 게이들, 또는 '충분히 남자답지 못한’ 남학생들은 그 두 사람의 이름으로 불릴 정도였다.


그토록 센세이셔널했던 하리수 씨의 존재를 엄마가 처음 내게 소개해 주던 순간이었다. 하지만 엄마는 12살 눈높이에 맞춰 담백하게 설명한 MTF 트랜스젠더의 정의 외에는 그 어떤 부정적 가치 판단도 덧붙이지 않았다. 그저 세상에는 이런 사람도 존재한다고 알려주었을 뿐이었다. 그 덕분에 나도 비록 당시에는 어떻게 남자에서 여자가 될 수 있다는 것인지 이해가 잘 되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런 사람도 있나 보다, 하며 있는 그대로 받아들일 수 있었다. 그렇게 엄마가 트랜스젠더를 향해 보여준 의연한 태도는 내 마음속 깊은 곳에 짧지만 또렷한 기억으로 자리 잡았다.


그러다 시간이 흘러 스스로를 좀 더 객관적으로 알아가는 사춘기를 거치면서, 내가 남성에게 끌리는 게이라는 사실을 분명히 깨달았다. 쉽지만은 않은 정체화의 시기였다. 같은 반 남자애를 짝사랑하고 속앓이를 하면서 세상에 나 같은 사람은 나뿐인 것만 같아 외로웠다. 숨겨야 할 커다란 비밀을 남들보다 하나 더 많이 안고 태어났다는 현실이 원망스럽고 버겁게 느껴지던 와중에도 극심한 자기혐오나 부모님을 향한 불신으로까지 빠지지 않을 수 있었던 것은 그날 엄마가 하리수 씨로 대변되던 성소수자를 향해 보여준 의연함 때문이었다. 어째서 동성에게 끌리는지 고민이 되어 괴롭다가도 그때 하리수 씨 사진을 보여주던 엄마의 덤덤한 표정과 목소리가 한 번씩 떠올랐다. 그리고 엄마 덕분에 피어난 막연한 자신감으로 그저 괜찮을 거라 믿으며 안개 낀 학창 시절을 버텨냈다.


‘그래, 하리수 씨가 그냥 그런 사람이듯 나도 그냥 이런 사람인 거야. 남들하고 좀 다르긴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내가 잘못한 것도, 잘못된 것도 없어. 나중에 어른이 되고 나면 나와 같은 사람들을 분명 만날 수 있겠지.’


가끔은 백 마디 말이나 설명보다도 무미건조한 의연함이 훨씬 더 강력할 때도 있다. 엄마가 찾아갔던 정신과 의사 선생님의 의연함이 엄마를 살렸고, 하리수 씨를 내게 처음 소개하던 엄마의 의연함이 나를 살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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