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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김초아 Jul 02. 2024

딸과의 데이트

에세이_모든 게 같을 순 없지만 6

요즘 5살 난 딸의 고집이 장난이 아니다. 첫째를 키워 본 경험으로 이 시기에는 당연히 그런 것이라고, 그래서 떼를 쓰고 고집을 부려도 어느 정도는 이해가 되었다.

아침 등원마다 옷이 마음에 안 든다, 머리가 마음에 안 든다, 투덜거리는 둘째.

치마와 드레스, 하츄핑, 디즈니 공주들에 푹 빠진 우리 딸.

둘째는 사랑이라더니 그 모습도 예뻐 그냥저냥 받아주고 넘어가는 편인데, 유독 그날은 떼가 너무 심해 나에게 혼이 나고 말았다.

열흘 전, 아예 어린이집에 가지 않겠다는 딸. 무슨 일이 있는지 물어보아도, 어디가 아픈지 물어보아도 그냥 다 싫단다. 신발도 신지 않고 밖으로 나가겠다는 딸을 안고 신발을 들고 부랴부랴 첫째를 먼저 학교에 데려다주었다.

점점 심해지는 투정을 내가 받아주어 이렇게 되었나 싶어 그날은 따끔하게 혼나고 어린이집에 울며 들어간 딸. 그 모습이 속상해 하루 종일 집안일이 손에 잡히지 않았다.


그로부터 며칠 뒤 담임 선생님과 전화 상담에서 이유를 알게 되었다.

"요즘 여자 친구들이 한 명씩 엄마랑 데이트한다고 하루 빠지고 와서 자랑하고 그런 시간을 보냈어요."

아, 마음이 쿵 내려앉았다. 그래서 가기 싫었구나.

5살인데도 자신의 속상함을 잘 이야기하지 않는 우리 딸. 첫째가 기분 상하게 말해도 가만히 듣고 크게 내색하지 않는다. 내가 이렇게 하자, 저렇게 하자 하면 정말 싫지 않은 이상 군말 없이 따라준다. 벌써부터 속 깊은, 마치 어린 시절의 나처럼 애어른 같은 딸이라 평소 더욱 신경이 쓰이고 마음이 갔다. 그런데 요즘 늘어난 투정이 시기 상 5살이라 그럴 것이라고 이해하고 넘어갔는데, 엄마랑 있고 싶어서였다니.

미처 생각지 못한 이유에 너무 미안하고 미안한 마음. 상담 후 아이를 꼬옥 안아주었다.

"우리도 데이트 가자!"


하루 어린이집을 땡땡이치는 날. 오늘은 너 입고 싶은 치마, 옷, 머리핀, 팔찌, 목걸이 다 하라고 그랬더니 신나서 치장하는 예쁜 우리 딸.

"키즈카페 갈래!" 생각해 보니, 둘째는 항상 오빠와 함께였다. 오롯이 엄마, 아빠와 시간을 보낸 적이 없었다. 키즈카페에서도, 공원에서도, 식당에서도, 마트에서도, 병원에서도 늘 질투 어린 첫째의 시선을 받아내느냐고 나름대로 고단했겠지?

"오빠한테는 비밀이야~ 우리끼리의 비밀!"

그렇게 우리끼리의 데이트를 처음으로 하게 되었다. 왜 진작 생각하지 못했을까. 미안함에 마음이 아리고, 그만큼 더 열심히 놀아주었다.


점심은 무얼 먹고 싶냐는 말에 짜장면이라고 하는 딸.

항상 서로 나눠먹느라 성에 안 차게 먹었을 짜장면. 오늘은 맘껏, 실컷 먹는 모습을 보니 내가 더 행복했다.

탕수육도 이렇게나 잘 먹었구나. 늘 첫째가 빨리, 그리고 많이 먹느냐고 느린 둘째는 조용히 주는 대로 먹었는데.

이렇게 좋아하고 잘 먹는 아이였구나.

많은 생각이 드는 하루였다.


"우리 다음에 또 데이트하자~"

종종 둘째와의 시간을 보내야겠다고 생각했다. 가족이 모두 함께하는 것도 좋지만 각각의 자녀와의 추억을 쌓는 것도 좋은 시간이라는 것을, 각자의 이야기를 더 잘 귀 기울여 줄 수 있고 아이의 먹는 모습을 자세히 볼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그래서 엄마, 아빠는 너를 많이 많이, 아주 많이 사랑한다는 것을 이야기할 수 있는 시간이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다음 날, 폴짝폴짝 뛰며 달팽이도 구경하고 기분 좋게 손가락 하트를 발사하며 어린이집에 등원했다. 선생님과 친구들에게 실컷 자랑하고 오겠다며 행복해하는 우리 딸.

"그래그래, 우리 다음에 또 시간 보내자. 꼭 엄마가 그렇게 할게. 사랑해. 이따 보자."


새카만 눈동자에 동그란 눈이 나와 닮아 더 예쁜 우리 딸. 오빠에게 양보도 잘 하고 설거지와 빨래 개는 것도 시키지 않아도 와서 도와주는 우리 딸. 미용실을 무서워해 아직 가지 못하고 어른들께 인사하는 것이 부끄러워 엄마 뒤로 숨는 마음 여린 우리 딸. 나처럼 책 읽기를 좋아하고 춤추는 것도 좋아하는 사랑스러운 우리 딸.

나는 어린 시절 사랑한다는 말을 잘 듣지 못해 그게 아직도 상처라 하루에도 몇 번씩 어르고 달래고 안아주고 뽀뽀해 준다. 그게 아니더라도 그저 바라만 봐도 세상에서 제일 예뻐 그냥 사랑한다는 말이 나온다.


"우리 딸! 공주님! 엄마가 더 많이 사랑하고 안아줄게. 투정 부리고 떼써도 괜찮아. 그래도 넌 세상에서 가장 소중한 사람이야. 사랑해 우리 딸.

우리 다음에 또 데이트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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