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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Apr 02. 2024

첫 책을 쓰다

뒤늦은 알림


  동료들과 함께 책을 한 권 썼습니다. 제목은 <논픽션 글쓰기 전설들>입니다. 한국의 '이야기 논픽션' 작가 12인을 인터뷰했습니다.

  한 번이라도 제 브런치에 방문한 적 있으시다면 제목에서 기시감이 드실 수 있습니다. 한동안 '저널리즘 논픽션 프로젝트'라는 페이지에 논픽션 작품 서평을 올린 적이 있어서입니다. 당시 독서와 논의가 이 책 작가 선정과 인터뷰의 뿌리입니다.



  알라딘 표기 출간일이 지난해 12월22일이니, 출간 100일(3월31일 기준)을 막 돌파했네요. 모든 게 빨리 흐르고 쉽게 잊혀지는 세상이다 보니 100일이면 벌써 오래 전 같은데, 제게는 지금도 집필 당시 손끝 감각이 그대로입니다. 완성된 책을 처음 받은 날, 표지 색 때문인가 어쩐지 따뜻했던 느낌도 함께요. 그 사이 '편집장의 선택' '이 달의 주목 도서'라는 영광의 세월을 함께 지났습니다. 지금도 '작가론' 분류 6위라네요. 기특한 녀석이죠.

  '이야기 논픽션'이란 말이 생소하시다면, 그게 곧 이 책의 존재 이유일 수도 있겠습니다. 기자 출신 작가들의 취재 경험, 소설 같은 글쓰기를 위한 분투를 두루 담았습니다. 실용서인 동시에 그 자체 한 편의 직업 논픽션입니다. 현직 기자, 작가는 물론, 기자·PD를 꿈꾸는 사람들, 글쓰기에 관심있는 이들 모두에게 매력적인 책이라고 확신합니다. 밑줄 긋고 책 귀퉁이를 접어두고픈, 마음에 심을 만한 대목 두서넛쯤 발견하게 될 거예요.

  인터뷰 대상 작가들의 책을 여러 번 숙독하며 많은 공부가 됐습니다. 글쓴이로선 다들 정독해주면 더 바랄 나위 없겠지만, 읽다가 어디 쳐박으셔도 어쩔 수 없겠지요. 책 표지 색감이 요 몇년 유행한 물빠진 주황색이라 들고 다니기만 해도 간지... 아닙니다. 손에 딱 들어올 만큼 사이즈가 작아 냄비받침으로 쓰기엔 적절치 않습니다.

  '밀리의 서재'에서도 보실 수 있습니다. 아래 서문 일부를 남겨둘게요. 편은 더 재밌을 거라고 감히 확신합니다 ㅎㅎ 읽어주세요!


    ... 열두 작가를 묶는 공통분모는 여기까지입니다. ‘구성을 고민한다’는 점이 같을 뿐 이들은 무엇이 구성에서 중요하냐는 판단부터 어떻게 구성하느냐는 방법론까지 세세한 쟁점 하나하나 생각을 달리했습니다. 예를 들어 팩트스토리 대표 고나무 작가는 캐릭터와 장면을, 장강명 작가는 기승전결의 전통적 서사 구조를 강조합니다. 잭 하트가 《논픽션 쓰기》(2015)에서 내러티브의 핵심으로 ‘발단-상승-위기-절정-하강’ 구조의 포물선을 언급한 것과 결이 다르지 않습니다. 반면 《한겨레》 이문영 기자는 “기법으로서의 내러티브에는 별 관심이 없다”고 말합니다. 그의 책 《노랑의 미로》(2020)는 통상적 기삿거리와 작법에서 벗어날지라도 등장인물 개개인에게 ‘말할 공간’을 주는 데 관심이 많아 보입니다. 때로 추상적이라는 비판을 “감수하는” 그의 문장은, 실은 독자들이 “멈춰 서서 생각해보도록” 부러 만들어낸 결과물입니다. 조갑제 작가는 또 달라서, “작법보다는 영향력에 주목해야 한다”며 “특종”의 가치를 강조합니다.

    사실의 함량 차도 눈에 띕니다. ‘진짜 이야기’라고 할 때 ‘진짜’의 범위가 어디까지냐는 논점입니다. 김동진 작가는 “논픽션은 70%의 팩트에 30%의 상상이 가미될 수밖에 없다”는 입장입니다. 그는 1923년 경성 한복판에서 벌어진 일본 경찰과의 총격전 당시 김상옥 의사의 내면 풍경을 묘사하지만, 정작 김 의사는 격전 중 사망해 조사 기록을 남긴 것이 없습니다. 반면 김당 작가는 취재로 밝힌 사실 외의 것은 쓸 수 없다고 말합니다. 첩보의 세계를 다룬 저술 특성상 법정 분쟁 등을 대비한 것이라고 짐작합니다만, 논픽션이 ‘역사적 기록’이라는 작가 본인의 신념이 일단 강해 보입니다. 그는 취재 대상을 꼭 실명으로 적고, 자동차 번호, 호텔 방 넘버 같은 어찌 보면 불필요한 디테일까지 정확히 씁니다. 이범준 작가는 취재 기간, 참고한 자료의 분량, 인터뷰한 사람의 숫자와 녹음 시간까지 공개합니다.

    이 차이를 저는 각자의 소재나 추구하는 바가 다른 탓으로 짐작합니다. 예컨대 김동진 작가의 재료는 ‘닫힌 과거’입니다. 사안의 실체는 이미 존재하며, 작가의 역할은 이를 ‘발견’해 현재의 독자들이 전모를 이해할 수 있도록 잘 전달하는 것입니다. 인터뷰 내내 그가 “인터프리터(통역사·해설자)”를 자처한 것은 이 같은 생각의 발로 아니었을까요. 한편 “특종”을 강조하는 조갑제 기자에게 어떤 사안은 ‘발굴’을 통해서만 그 모습을 드러냅니다. 이문영 기자라면 ‘재발견’을 주장할 것 같습니다. 엄연히 존재함에도 지배적인 목소리에 밀려 묻히는 이야기가 있다고, 누군가는 그것을 굳이 찾아내려 애써야 한다고 그가 믿기 때문입니다. “편을 들수록 꼼꼼해야 한다”는 희정 작가의 말은 또 어떻습니까. 이들의 다름은 ‘사실’과 ‘진실’이 맺는 미묘한 관계를 드러냅니다. 진실은 사실의 종합인가요, 사실만으로는 도달할 수 없는 먼 존재인가요. 이 책은 선뜻 답하기 어려운 이 물음에 대한 열두 번의 대화이기도 합니다.

- <논픽션 글쓰기 전설들>, 프롤로그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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