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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Apr 11. 2024

선거가 끝나고 난 뒤

240411

  4·10 총선 결과가 나왔고, 새벽까지 근무한 대신 오전 오프하며 책을 조금 읽었다. 런던정경대 정치학과 교수 케니스 미노그의 <정치>. 특히 8장 '정치인'과 9장 '정당과 교리'를 집중해 봤다. 방대한 쟁점을 아무렇지 않게 이론과 먼 언어로 툭툭 정리하는데, 어찌보면 미덕이지만 단점이기도 하다. 요즘처럼 혼탁한 때는 범주를 명확히 나눠 설명하는 책이 좋다. 아이러니를 품은 영국식 어법과 유머, 화려한 인용은 간지.

  인상깊은 구절이 많아 옮겨 둔다. 어쩐지 서늘하다. 어떤 말은 불길한 예언처럼 들리고, 확신에 대한 옹호는 지금 한국 정치 상황에 비춰 고개를 갸웃거리게 된다. 권력이 하찮아지는 순간은 정작 그 인식이 필요한 이에게 와닿지 않은 듯하다. 아니, 그냥 다 선거 결과 때문인가.


  정치인과 배우는 확실히 서로 연관된 종족에 속한다. 공적인 삶과 관련된 건축물의 많은 부분은 로마 광장이 지닌 고전적 영감을 떠올리게 한다. ... 크렘린궁의 건축과 그곳의 공산주의적 장식물들은 전제정의 원격성과 웅장함을 반영한다. 프랑스의 공공 건축은 그 웅대함의 측면에서 제국적이다. 영국 총리가 비교적 평범한 거리에 있는 비교적 평범한 집에서 산다는 것은 영국의 공적인 삶이 신중하게 설계되었음을 어느 정도 보여준다.
  이것이 정치의 국립극장들이다. 그러나 대부분의 정치 드라마는 텔레비전 시대에도 여전히 지역의 정당 사무실에서 벌어지고 정치인이 유권자들에게 열변을 토하는 먼지 많은 강당과 바람 부는 길모퉁이에서 벌어진다. - 케네스 미노그, <정치>, 118~119p


  세대를 넘어 사상과 감정을 전달하는 언어 자체가 개념적 구조를 드러내며, 그것이 정치적 가능성에 영향을 끼친다. 예를 들면, 모든 언어가 '정의(justice)'에 해당하는 등가물을 가지고 있지만, 공정성(fairness) 관념처럼 이 넓은 주제에 대한 많은 변주들이 있으며, 이 변주된 것들은 다른 언어들로부터 오로지 수입될 수 있을 뿐이다.
  ... 어떤 사람들에게 영웅적인 일이 다른 사람들에게는 통탄할 만한 일일 것이다. 노동당 정치인은 램지 맥도널드가 1931년에 (보수당과 함께 거국내각인) 국민정부를 형성한 것을 당에 대한 반역 행위로 여길 수 있다. 보수당 정치인은 그 사건을 사뭇 다르게 취급할 것이고, 확실히 그것을 덜 중요하게 볼 것이다.
  ... 사건의 의미가 오랫동안 유지되는 일은 매우 드물다. 역설은 미래와 거의 마찬가지로 과거가 불투명하다는 것이다. - 121~123p


  정치는 이야기이기 때문에 정치적 기술은 재치를 요구하고 정치인들은 그들이 한 말로써 기억된다. - 123p


  권력은 일종의 통속극으로서 매력적이긴 해도 대부분 과장돼 있다. 총리나 대통령의 공직은 헌법상 제한되어 있어서 그들이 세상을 개선할 능력을 사용하려면 그들이 하고 싶어하지 않는 온갖 양보를 해야한다는 것을 이상주의자들은 곧 발견한다. ... 공직이 가진 권력은 옳은 일이 이루어지도록 하기 위해서 통치자가 자기의 권위를 이용할 수 있는 기술일 뿐이다. 그렇지 않다면, 사람들이 권력에 대해 이야기할 때 그것이 의미하는 바는 그저 공직 보유자가 자기 의지를 순전히 사적으로 행사해 얻을 수 있는 기쁨일 것이다. 그것은 기본적으로 하찮은 것이다. - 126p


  1945년 이후 영국에서 실현된 복지국가는 이익을 유권자 집단에 폭넓게 퍼뜨렸다. 그러므로 그 단기적 효과는 그 정책을 실행한 노동당에 대한 지지를 증대시키기 위한 것이었을 수 있다. 결과적으로 그 일은 이루어지지 않았다. 노동당은 1951년 선거에서 패했다. 더욱 심각하게도 그 시기의 몇몇 복지 법안들은 노동 계급을 '고급화(gentrify)'하여 그들을 노동당으로부터 떼어놓았다고 생각되었다. 정치인들이 때때로 말하듯이 성공만큼 실패하는 것도 없다. - 128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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