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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조문희 May 18. 2022

'그냥 무덤'은 없다

제주도 조천읍 북촌리에서 함덕리까지 펼쳐진 서우봉 둘레길에 몇 기 묘지가 늘어서 있다. 직접 촬영.


 제주도 북촌을 찾은 건 꼬박 2년만이었다. 휴가를 앞두고 인스타그램 계정을 뒤적이던 중 남매가 서점과 함께 운영하는 게스트하우스에 묵었던 기억이 났다. 아침 산책으로 나섰던 서우봉 둘레길에서 상대가 ‘나’인 카카오톡 대화창에 전송한 짧은 메모 몇 줄이 지금도 남아있다. “잘 좀 살아보자”고, 함덕 해수욕장부터 펼쳐진 바다 풍광으로 괜스레 스스로를 다독인 날이었다.


 그때의 잘 살자는 다짐에는 직업인으로서 소명도 조금 녹아있던 것으로 기억한다. 뭣도 모르고 올랐던 여행길, 카페를 찾다 우연히 ‘너븐숭이 4·3기념관’을 본 뒤로 이 지역 역사에 관심이 생겼다. 짧은 조사로 알게 된 북촌은 4.3사건 당시 가장 많은 피해자가 발생한 장소였다. 아이들이 죽어 ‘애기무덤’이 만들어졌으며, 현기영 작가의 소설 <순이삼촌>도 이 지역을 배경으로 쓰였다고 했다. 여행 전 진작 알았다면 마음 준비를 좀 단단히 하고 왔으려나.


 그날 해질녘엔 북촌 초등학교에서 크리켓하는 외국인 노동자를 봤다. 혹시 ‘예멘 난민’ 아닌가, 제주에 정착한 이들의 일상 얘기를 들을 수도 있겠다며 게임이 끝날 때까지 운동장에서 기다렸다. 하지만 답변으로 돌아온 그들의 고향은 스리랑카였고 “예멘에서 오셨나요”라는 질문 뒤로 머쓱한 순간이 지나갔다. 그래도 아는 것이 생기면 시선도 달라지는 법이라고, 어딜 다니든 무심하지 말자고 다짐했다.


 2년 전 여행의 잔상 때문인지 올 휴가는 유난스러운 데가 있었다. 점심 식사 후 소화 겸 서우봉을 산보하는 내내 길가의 무덤이 눈에 밟힌 것이다. ‘혹시 이것도 4.3 때 생긴 묘일까‘, 혼자 심각해서는 잘 알지도 못하는 묘비 문구 속 한자를 몇 차롄가 더듬거렸다. “해방 후에 제주도 사람들이 많이 죽었다더니, 여기도 그런 곳인가비네.” 선캡 쓴 할아버지가 사투리 섞인 말투로 뒤따라오는 할머니에게 말을 건넨 게 그 즈음이었다.


 “천 팔백 사십 육년에 돌아가셨댜. 별 상관없는 거 아녀요?” “이 사람은 ‘진사’(조선시대 과거시험 중 하나인 진사시에 합격한 사람)였나보네.” 할머니는 조용히 묘비를 들여다 보더니 이윽고 말을 쏟아냈다. ‘그냥 무덤이구나’, 어쩐지 시간 낭비했다는 생각에 남은 산책길을 마저 오르려는데 뒤에서 할아버지의 목소리가 들렸다. “다 읽어봐. 뭔 사연 있을지 알어.”


 최근 몇년 새 한국일보는 <디어 마더>를, 경향신문은 <우리가 명함이 없지 일을 안 했냐>라는 기획을 내놨다. ‘엄마’라는 이름으로 살아온 이들의 꿈과 노동, 인생 역정을 이야기하는 기사 묶음이었다. 평소라면 ‘얘기가 안된다’(기사거리로 적절하지 않다는 기자들 은어)며 미뤄뒀을 평범한 사람에게 귀기울인 좋은 연재물이라 여겨 SNS에 공유도 했다. 그런데 ‘그냥 무덤’이라니.


 2년 전 그때 스리랑카에서 온 청년은 어떤 이야기를 품고 있었을까. 이번엔 코로나19 여파로 통제가 심해 들어가지 못했지만 다음 여행 때는 다시 한 번 북촌초에 가고 싶다. “어쩌다 제주도까지 오게 됐나요” “제주도에서의 삶은 어떠신가요” 물음을 연습하면서.


2년 전 개인 인스타그램 계정에 업로드한 동영상. 당시 "무슨 게임을 하고 있냐"고 물었는데 스리랑카인이 "킥캣"이라고 답해 이해를 하지 못했다. 나중에 알고보니 '크리켓'이었다.


* 주간경향 '꼬다리' 코너에 연재한 에세이입니다. 2022년 5월18일 온라인에 노출됐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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