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독 무거운 마음으로 독서실을 나선 날이었어요. 언 손으로 사물함에서 신발을 꺼내, 센서등이 깜빡거리는 어두컴컴한 계단을 내려와 1층 문을 밀어 바깥으로 나왔지요. 기다렸다는 듯 살을 에는 밤공기가 파고들더군요. 한참 전부터 눈이 내렸던 듯 이미 한 겹 쌓여 얼어붙은 보도 위로, 미처 안착하지 못한 가벼운 눈송이들이 바람에 밀려 허공을 떠돌고 있었어요. 분분히 내리는 눈 속, 시간은 새벽 한 시. 왠지 서먹해진 걸음으로 문구 가게와 서점, 상가 건물들을 지나 사거리로 나오니 텅 빈 찻길이 보였어요. 말 없는 가로등 아래 침묵이라도 내린 듯 암암한 거리였죠. 저는 그제야 소음 차단용 귀마개를 빼내어 주머니에 넣고, 천 재질의 낡은 신발이 젖지 않도록 조심조심 눈을 밟았습니다. 그리고 조금이라도 집에 늦게 가고 싶어, 일부러 먼 길을 골라 아주 아주 천천히 걸었습니다.
아버지 때문이었어요. 아버지 볼 낯이 없어서요. 이별을 통보한 전 남자 친구의 새 연애 소식과, 몇 없는 지인들의 결혼 소식을 접할 때마다, 꼭 합격할 것이라며 이를 악물던 것이 어느덧 5년째 되었죠. 대학을 졸업하고 호기롭게 도전한 고시에서 번번이 고배를 마셨거든요. 친구들은 하나 둘 취업에 성공해 또 다른 삶의 페이지를 써 나가고 있는 동안, 미련을 놓지 못하고 독서실의 1평 남짓한 개인실에 틀어박힌 채 책과 씨름을 하는 일상이란…. 그렇게 아쉬움에 ‘이번 한 번만 더.’ 하던 것이 오기가 되어 제 얼굴에선 미소가 점점 사라져 갔고, 쓸데없는 말은 많아졌으며, 사계절을 기분 좋게 피부로 느끼지도 못하고 있었어요. 처음엔 기대가 찬 눈길로 절 바라보시던 집안 어른들은 점점 아버지에게 제 근황을 묻지 않으시더군요. 일부러 묻지 않아 주는 것일 테죠. 마음이 무거웠어요. 그 예의 바르고 착잡한 배려에.
와중에 그날은 하필, 아버지의 생신이었어요. 생전 말 한 번 살갑게 하지 못한 딸이었지만 유독 그런 날이면 더 변변치 못한 자식이 된 것만 같아 암담해졌죠. 파트타임을 뛰어 수험 생활을 빠듯하게 꾸려나가며, 첫 한두 해는 미역국이라도 끓여드릴 마음의 여유가 있었지만 점점 머쓱하게 축하 인사말로 때우길 두 해 째. 꼭 물질적인 문제만은 아니었어요. 생일 같은-마땅히 좋아야 할- 날이면, 이유 모를 부담감과 함께 ‘내가 어서 성공한다면…’ 하는 아직 이뤄내지 못한 성취의 그림자가 어깨에 드리워졌어요. 그 때문이었을까요, 그날따라 아버지 얼굴이 더 보기 힘들더군요. 마치 그런 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하신 듯, 늘 한사코 자정까지 딸을 기다리시다 오늘 늦느냐고, 여자아이는 새벽에 다니면 안 된다, 전화를 거시던 아버지도, 그날은 종일 전화를 걸어오지 않으셨어요.
그렇게, 느릿느릿…. 한참 후에야 도착한 집 앞 도로변 너머, 주차된 지 시간이 조금 흐른 듯, 눈이 쌓인 아버지의 구형 소나타. 그렇게 생각하지 않으려 해도, 그 차가 꼭 나 같았어요. 열심히 오래 달렸지만, 거리 속 반짝이는 차들 속 나는 저 오래된 소나타처럼, 보잘것없어 보이지 않을까.
범인처럼 조용히 들어가려 했는데 야속하게 큰 현관문 도어록 소리가 울렸어요. 거실이 아주 조용했어요. 가만히 서서 귀를 기울이자 희미하게 아버지의 코 고는 소리가 들려왔어요. 저는 조심조심 신발을 벗고 조용히 방 안으로 들어왔어요. 불행인지 다행인지, 코를 고시는 걸 보면 친구분들과 혹은 홀로서라도, 약주를 하셨나 봐요. 그제야 전 조용히 방문을 닫고, 가방을 내려놓고 의자 위에 털썩, 주저앉았어요.
한숨을 푹 쉬곤 다행이다, 하고 생각하는 스스로에게 약간의 부끄러움을 느끼며. 그런데 책상 스탠드를 켜자, 책상에 무언가 놓여있었어요.
눅눅한 봉투에 담긴 채 차갑게 식은 붕어빵 세 개와 꾸깃꾸깃하게 두 번 접힌 오만 원짜리 지폐, 그리고 찢어낸 듯한 작은 종이쪽지가 눈에 들어왔어요.
왜였을까요. 조금 불안한 마음으로 그 쪽지를 펼쳤던 것 같아요.
그런데 거기엔 제가 받아 본 가장 짧은 편지가, 연필로 적혀 있었죠. 그것은 아버지 글씨였어요.
‘우리 딸 사랑한다 까까 사 먹어라’
아주 오래전 본 적 있는 아버지의 손글씨였어요.
초등학교 담임 선생님께 받은 학부모 편지에 짧게나마 직접 답장을 적으신, 배움이 길지 못하시더라도 늘 곧고, 정성스레 힘주어 쓰시던 그 담담한 글씨체.
점도 찍히지 않고 적힌 투박한 편지와, 행여 눈 맞을세라 붕어빵 봉투를 품고 오셨을 아버지의 늙은 손 때문에, 서른이 되어가는 딸을 어찌 위로하실 줄 몰라 그저 ‘까까’ 사 먹으라는 말 뿐이신 아버지의 그 마음 때문에, 그날 전 그 자리에 우뚝 선 채 어깨를 들썩이며 한참을 조용히 울었답니다.
이제는 돌아가셔 더 이상 만날 수 없는 아버지지만, 매년 돌아오는 겨울, 아버지의 생신이면 제가 가장 힘들고 치열했던 이십 대, 그저 한없이 숨고만 싶던 그 시절에, 단 한마디로 꾹꾹 참아온 눈물을 터뜨리게 한 아버지가 떠오릅니다. 중심을 잃고 쉼 없이 휩쓸리기만 하던 딸의 뒤에 등대처럼 가만히 서 계신 채, 당신 살을 발라내 딸에게 숨을 곳을 마련하신 그 우물 같은 마음이 떠오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