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잔.

오래되고 우아한 호텔 1층 커피숍의 아메리카노

by Simple and light


-우린 모두 여러 가지 색깔로 이루어진 누더기. 헐겁고 느슨하게 연결되어 언제든지 자신이 원하는 대로 펄럭인다. 그러므로 우리와 우리 자신 사이에도, 우리와 다른 사람들 사이만큼이나 많은 다양성이 존재한다.


-우린 모두 여럿, 자기 자신의 과잉, 그러므로 주변을 경멸할 때의 어떤 사람은 주변과 친근한 관계를 맺고 있거나 주변 때문에 괴로워할 때의 그와 동일 인물이 아니다. 우리 존재라는 넓은 식민지 안에는, 다른 방식으로 생각하고 느끼는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미셸 에켐 드 몽테뉴와 페르난두 페소아의 책에서 따 온 짧은 글로 시작하는 책. 파스칼 메르시어의 [리스본행 야간열차]이다.


그 책 속의 ‘책’ 속의 주인공, 삼십 대의 젊은 프라두는 그가 쓴 낡아 빠진 책을 얻어낸 문두스 교수에게, 삶에 대한 자신의 고찰을 담담하게 풀어낸다.


“우리는 많은 경험 가운데 기껏해야 하나만 이야기한다. 그것조차 우연히 이야기할 뿐. 그 경험이 지닌 세심함에는 신경 쓰지 않는다. 침묵하고 있는 경험 가운데, 알지 못하는 사이에 우리의 삶에 형태와 색채와 멜로디를 주는 경험들은 숨어 있어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러다가 우리가 영혼의 고고학자가 되어 이 보물로 눈을 돌리면, 이들이 얼마나 혼란스러운지 알게 된다. 관찰의 대상은 그 자리에 서 있지 않고, 말은 경험한 것에서 미끄러져 결국 종이 위에는 모순만 가득하게 남는다. 나는 이것을 극복해야 할 단점이라고 오랫동안 믿어 왔다. 그러나 지금은, 이런 혼란스러움을 인정하는 것이야말로 익숙하면서도 수수께끼 같은 경험들을 이해하기 위한 하나의 왕도라고 생각한다. 이 말이 이상하고 묘하게 들린다는 것은 나도 잘 안다. 하지만 이렇게 생각을 하고 나서야 깨어 있다는 느낌, 정말 살아 있다는 느낌이 든다.


…우리가 우리 안에 있는 것들 가운데 아주 작은 부분만을 경험할 수 있다면, 나머지는 어떻게 되는 걸까?”


자신의 고고학자가 되어가는 것. 진정으로 자신에 몰두해 보지 않은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생각과 말하기 방식이었을 것이다. 조용히 세상과 차단되어 이 구절을 읽을 때, 나 또한 책 속의 늙은 교수와 함께 그 여자, 빗속에서 허공을 바라보던 설화석고 같은 얼굴의 그 여자를 따라가고 있었다. 지금까지와는 모든 것이 달라질 것이라는 예감으로, 현재를 이제부터는 내가 장악하겠노라는 의도와 함께. 지겨울 만큼 똑같은 패턴만을 착실히 살아오던 라이문트 그레고리우스는 어느 순간, 누구에게 알리지도, 아무것도 설명하지도 않고, 아무것도 정리하지도 않은 채, 이제껏 같은 길만을 걷던 두 다리로 그렇게 낯선 리스본행 야간열차에 오른다.


삶이 단지 우리가 말하고 생각하고 살아내는 방식에 관한 것이라면, 이미 발견된 생각으로 애써 메우고 이해하는 것으로 충분한 것일까. 그러나 우리의 경험 중 침묵하고 있는, 진주처럼 숨어 있는 그것들은? 우리가 말하지 못하고, 생각하지 못하고, 우리가 살아온 삶과는 전혀 다른 방향의 어떤 것들이라면? 만일 그것들, 나를 채워가는 수많은 경험을 놓치지 않은 채 전부 다 의미를 깨워 자각할 수 있다면, 그때부터 난 내가 드러내고 싶은 색깔을 그들 중 하나로 선택할 수 있는 것일까? 사춘기적 냉소에 빠져 도태되거나 겨우 머무르기 전에, 우리는 우리 자신의 경험을 조금 더 세심하게 지켜보아야만 한다. 행여 그것이 즐겁지만은 않더라도, 반드시 그래야만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