수도원에 밥을 먹으러 가보겠습니다.
작년 4월, <아무 걱정 없이, 오늘도 만두>라는 음식 에세이집을 내면서 또 한 가지 새로운 아이디어가 떠올랐다. 수도원 밥을 먹으러 방방곡곡 다녀보기.
좋아하는 만두, 전국 다니며 먹어보면서 이런 저런 계획에 차질도 빚었고, 생각한만큼 취재도 안 된 적도 많았고, 나 홀로 시식 여행인지라 그놈의 '2인분' 문화가 팽배한 우리나라 음식점에서 쫓겨(?) 나온 적도 있었지만, 이 모든 것을 다 덮어버리는 행복감이 있었다.
그 행복감을 수도원 식사를 하면서 또 느껴보면 어떨까. 만두먹으러 다닐 때는 그나마 배꼽시계를 나한테 맘대로 맞출 수 있었지만, 수도원은 정해진 식사시간이 있다. 그것부터 만만치는 않을 것이지만, 분명히 '수도', 도를 닦는 초월의 신성한 공간에서 뭔가 묵직한 죽비를 기꺼이 맞고 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수도원에서 죽비라니?)
일단 수도원의 밥은 굉장히 맛있다. 적어도 내가 기억하는 수도원의 밥은 늘 정갈하고 맛이 좋았다. 공동체의 인원이 많으니까 몇 가지 반찬과 국, 간식을 소담하게 담아 뷔페식으로 접시를 들고 떠서 먹는 형식은 거의 모든 수도원 비슷했고, '영원한 도움의 성모 수녀회' 가서 식사 대접을 받았을 때는 딱 한 번 도톰한 자기 식기에 음식을 담아 1인상이 나왔었다. 벌써 거의 30년은 된 일인데도 약간의 푸른 빛이 감도는 자기 그릇, 그에 얌전히 담긴 반찬과 국이 잊혀지지 않는다.
왜 맛있는 것일까. 일류 요리사들은 모두 수도원에서 도를 닦으며 기량을 향상시키고 있는 것은 아닐 테고... 혹시 내가 제삿밥이나 장례식장 밥을 좋아해서 유독 더 많이 먹는 이치와 통하는 것일까. 젯밥도 조상님이 내려와서 드시는 거라고 하지 않나. 다른 이들은 그래서 제사음식이 헛헛하고, 먹고 뒤돌면 또 배고파지는 음식이라고 하는데, 나는 왜 그런지 정확하게는 모르겠지만 조상님들이 손을 대서 그런가, 더 맛있게 느껴진다. 여하튼 음식을 만드는 이들의 정성과 기도가 담긴 밥을 하나 하나 직접 먹어보고 싶었다.
수도원의 밥을 먹어보려면 일단 '피정' 신청을 해야 한다. 피정이란 세상과 잠시 거리를 두고 수도원이나 명상의 집 같은 곳에서 오로지 나와 대화하며 조용히 지내는 시간을 뜻한다. 피정의 종류에 따라 신부님 강론과 같은 프로그램이 있기도 하지만 보통 개인이 신청하는 피정은 수도원의 기도, 미사 시간에 참여하는 것을 제외하고는 따로 일정이 없다. (그런데 새벽부터 시작하는 기도시간과 점심, 저녁 기도 참여하면 은근히 바쁘다. 뭣 좀 하려고 하면 점심 기도시간, 또 좀 뭐 하다보면 저녁 기도시간이 이어진다)
나와 같은 일개 날라리 신자에게 수도원의 부엌을 처음부터 보여줄 리는 없다. 물론 이곳 저곳 다니면서 혹시 짬이 늘면 넉살 좋게 혹시 식사준비하시는 것을 보고 사진 찍을 수 있겠냐고 요청은 드려보려고 하지만, 먼저 가장 짧은 진입로는 피정 신청을 해서 수도원에서 하루 혹은 이틀 묵으면서 식사시간에 참여하는 것이다.
다들 모르실 테니 간단히 소개하면, 나는 열 살에 첫 영성체를 받은 천주교 신자이기는 하다. 그리고 스무살 조금 넘겨서는 무슨 바람이 들었는지(왜 들어갔는지 부끄러워서 말을 못하겠다...) 수녀원에 들어가서 짧은 기간 살기도 했다. 그러니, 수도원에서 하루 이틀 정도 생활하는 것에 별 부담이 크지는 않다...고 생각했는데, 정작 피정을 신청하고 첫 날 도착하기 전까지 왠지 모를 부담감이 나를 짓눌렀다.
수도원은 생각보다 꽤 도심에 있었다. 그래봤자 왜관읍내이지만... 출입문으로 들어가니 수도원 신관 증축 공사가 한창이었다. 안내실에 가서 문간 수사님께 인사를 드리고 열쇠를 받고 들어간 개인방. 폭신한 침대와 책상 하나가 놓여 있는 단촐한 방이다. 책상 위에 놓여 있는 성경책을 펼쳤다. 늘 그렇듯, 오늘 이 책이 나에게 주는 메시지가 뭘까 알아보는 시간. 평소 아침에 일어나서도 눈에 띄는 책 한 권 슥 뽑아서 아무데나 펼친다. 어떤 날은 1페이지가 보고 싶은 날도 있다.
나는 여행하면서 많은 것을 보았다.
하지만 내가 배운 것을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다.
오늘의 나에게 참 고마운 구절이 선물처럼 들어왔다.
그 다음 새로운 공간에 왔으면 이제 슬슬 산책하며 살펴야지. 미사를 드릴 수 있는 대성당이 어디있고, 식당이 어디 있는지 파악은 기본이다. 수도원 방문의 즐거운 점 중에 하나는 산책로를 잘 닦아 놓아서 걷는 재미가 쏠쏠하다는 점. 일단 첨탑, 십자가 자체가 사실 나에게는 조용한 절 지붕에 매달린 풍경과도 같은 그윽한 볼거리이고, 위로가 되는 시선이다. 우두커니 서서 바라보는 것만 해도 수백 개의 생각이 떠오른다. 아마도 이런 조용한 시간을 알뜰하게 누리고 싶어서 피정을 오는 게 아닌가 싶다. 일상은 정말 너무나 많은 일이 한꺼번에 돌아간다. 돌봐야 할 일도, 사람도 너무 많다. 내 일에만 집중하기에는 선수쳐서 해내야 할 일도 가지각색이다. 하다못해 차에 다 떨어진 기름 주유도, 밀린 건강보험 액수 확인하고 내는 일도, 어플을 깔고 보험금 신청하는 것도 모두 누군가는 해내야 할 몫이다. 이 일만 해도 벌써 머릿속으로는 3시간이 계산된다. 잽싸게 하면, 그리고 늘 하던 일이라면 2시간 정도... 이렇게 쉴 새 없이 시간을 계산하고 쫓기고 산다. 다들... 그래서 억지로 끊는 시간을 일부러 만드는 것일 터. 피정. 避靜. 고요함을 피한다니... 시끄러운 세상을 피해서 고요함으로 나아가는 시간. 그 뜻이 조금 아이러니하다.
베네딕도회 왜관 수도회는 파이프 오르간이 있는 성당으로 유명하다. 2010년 오르간 축복식을 하면서 수도원과 함께 하게 되었는데, 지금은 오르간 연주를 하시는 수사님들께서 세계 각지로 뿔뿔이 흩어지셔서 그런지 뚜껑을 열지 않는다.
수도원의 아침은 새벽 5시 30분에 시작한다. 기도와 미사 시간 참석은 내 마음대로라고는 하지만, 나는 되도록 다 가서 기도하고 싶었다. 새벽 5시, 정말 이 소리 듣고 안 일어나면 인간이 아닐 정도의 음악소리가 울렸고 그 소리에 깬 나는 나도 인간이구나... 생각하면서 그대로 씻고 성당으로 향했다.
새벽 기도와 미사를 드리고 난 뒤 이제는 아침 식사 시간. 여자분 세 분이 함께 온 팀을 제외하고는 다들 개인 피정을 온 사람들이라 자기 먹을 만큼만 가져가서 따로 떨어져 앉아 먹었다. 말은 없지만, 왠지 모를 이 상황의 다정함이 묘했다. 혼자 드세요. 저도 혼자 먹을게요. 깔끔하게 나를 방해하지 않는 쿨한 배려가 너무 좋았다. 눈인사도 하지 않는다. 그냥 조용히 자기 자리 잡아서 먹으면 된다.
예전에 수녀원에 있을 때 대부분은 아침에 밥과 국을 먹었는데, 이렇게 빵이랑 치즈 등을 먹는 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그걸 '빵식'이라고 했었다. 빵식을 하는 날도 연세 드신 수녀님들을 위해 한쪽에는 미역국과 밥, 삶은 계란을 준비했었다. 베네딕도 수도원에서도 아침에 삶은 계란을 먹으니 30년 전 그때 우리 수녀원 부엌을 총괄하시던 여사님이 생각난다. 그 분은 내가 아는 대한민국, 혹은 세계 최고의 다량 달걀 삶이 권위자였다. 백 개도 넘는 달걀을 아침마다 토, 일 할 것 없이 매일 와서 먼저 안치는 것이 그분의 일이었다. 일? 소명이었다. 입 꾹 다물고 다 삶은 달걀을 찬물에 촥촥 헹궈서 물 쫙 빼서 테이블 위에 올려 놓는 모습을 보면 탄성이 절로 나왔다. 우리는 그 계란을 까서 미역국물에다가 풀어 먹기도 하고, 빵이랑 같이 먹기도 했다.
아, 여기에서 잊지 말아야 할 것. 베네딕도 수도원은 소세지로도 유명하다. 독일에서 오신 수사님들이 고국의 음식이 그리워 만들기 시작한 것이 이 수도원의 시그니쳐로 발전한 것. 분도푸드 소세지에서 주문하실 수 있으니 한 번 둘러보고 가시길. 정말 맛있다. 특히 나는 그릴 부어스트 구워 먹는 것을 가장 좋아한다네.
궁금하신 분들을 위해 링크 걸어둡니다.
사실... 수도원에 오기 3일 전, 신경정신과에서 과거에 '경계성 인격 장애'였을 것 같다는 이야기를 병원에서 들었다. 그동안 내가 왜 그렇게 에너지가 넘쳐서 미친 듯이 불안해했는지, 어디에선가 사랑을 받고 싶었는지, 나도 이해가 가지 않았다. '여미새'라는 말이 있다지. 여자에 미친 새끼. 그 반대 버전이 나인 것 같아서 사는데 너무 창피했었다.
그러다가 40대 중반부터 뭔가 가라앉는 느낌이 들면서 이제 겨우 정신이 차려졌다. 조금은 화도 덜 내고, 감정도 격해지지 않고, 특히 사랑이니 뭐니 하는 것들은 이미 내게는 사치재 같이 느껴졌다. 살 것 같았다.
너무나 다행인 것은 경계성 인격 장애를 지금 운이 좋게, 호르몬 문제든 현실 상황 때문이든 잘 치유(!)가 된 것 같다는 의사 선생님의 판단이었다. 경계성 환자 특유의 날카로움이 지금 내게는 전혀 보이지 않는다고 했다.
원인은 안다. 엄마로부터 유전을 받은 인자도 작용을 했겠고, 엄마가 '경계성 인격 장애'자였다. 심한...
이 정신질환은 사실 2000년 대 초반, 나 자신을 고민하면서 알아본 것이었다. 혹시 내가 이런 사람 아닐까. 그런데 엄마가 나르시시트이기도 하고 이 질환의 전형적인 사람이었다. 나는 엄마에게 어린 시절, 신체적인 폭력, 언어 폭력을 받으며 컸고 트라우마가 생겼다. 이것 때문에 엄마와 아빠가 너무 싫은데 못 떠나고 있는 상황. 아이가 어려서는 일하는 내가 아이를 맡겨야 하니까 울며 겨자먹기로 있었다고 쳐도 벌써 고2가 된 지금은 때가 되면, 명절, 생일 등등이 되면 이제는 늙은 그들이 애처로워서 못 떠나고 있다. 그리고 마냥 악인도 아니다. 일관되게 나쁜 년놈이라면 떠났겠지만, 아니다. 때가 되면 김장김치도 가져가라고 하고, 늘 기도한다고 했다. 큰 용돈이 생기면 내게 뚝 떼어서 돈을 주기도 한다. 그 마음이 이해가 간다. 고맙고, 불쌍하고, 혼란스럽다. 이렇게 나빴고, 좋기를 반복하는, 이제는 늙은 사람들이...
의사 선생님은 내게 살면서 어머니한테 사과 받을 생각은 포기하라고 했다. 그리고 불쌍해하지도 말라고도 했다. 괜한 숙제나 하나 더 얹히는 거라며.
수도원 와서 기도 시간 내내, 미사 시간 내내 계속 나를 숨 막히게 때리는 못된 엄마, 그걸 보고도 나를 구해주지 않은 아빠가 계속 생각이 났다. 나는 가정 폭력의 생존자가 맞긴 맞다. 내 기억에 남은 정말 숨을 못 쉬게 담요를 덮어서 때린 엄마를 용서할 수가 없다. 정작, 엄마는 기억이 안 난다고 했다. 그리고 아빠는 지금 다 커서 그렇게 극복을 못하고 있으면 되냐고 호통을 쳤다. 부모탓 하지 말라고.
이 상황 안 당해 본 동생도 능글맞게 웃으면서 이야기 했다.
- 누나, 이제는 부모탓 좀 그만 하지.
누나가 능력이 안 되어서 못 살고 있는 걸 왜 부모님 탓으로 돌리냐는 이야기다. 저 말에 내 해석은 그랬다. 나는 지금 못 살지 않고 있다. 잘 산다는 의미를 경제적으로 따진다면 그냥 중간 정도. 부자는 아니다. 하지만 사실은... 부모님의 사과를 받고 싶었다.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울리는 그 쌍욕들, 머리채 잡아 돌리는 엄마의 야무진 손, 나무 빗자루로 미친듯이 내리치는 소리, 탁 터지는 핏줄기랑 함께 날아가는 내 손톱...
혹시 내가 과장되게 기억을 하고 있다 해도 이런 기억의 소재의 빌미를 준 엄마, 아빠는 내게 잘못했다. 정말 잘못했다. 잘못은 저희들이 해놓고 왜 수습을, 극복을, 용서를 내가 해야 한단 말인지.
그래도 지금 가장 중요한 것은 내 마음의 평정이었다.
엄마 아빠 용서까지는 못해도 그냥 상처 입은 마음으로, 상처는 남았지만 완벽하게 아물지는 않았지만 그냥 그대로 살게 해달라고 몹시 기도했다. 다들 무릎에 까진 자국 남고, 칼로 베인 자국 하나씩 몸에 남은 것 같이...
수도원의 점심식사.
너무나 안타까운 것이, 내가 기도시간 마치고 타타타타! 식당으로 일착으로 내려가는 것까지는 성공했는데, 아직 수도원 취재 기술이 능수능란하지 못한지라 음식이 소담하게 담겼을 때 사진을 찍지 못했다. 눈치보느라... 잡채는 실로 내가 먹어본 것 중 최고였다. 그리고 고깃국은 스님들이 아무리 "밑에 깔어!"라고 실눈을 뜨면서 요청을 해도 들켜버릴 넉넉한 국이었고, 봄동 무침은 그야말로 새콤 달콤의 신세계를 느낄 수 있었다. 봄동은 이렇게도 잘게 자라서 무치는 구나 처음 알았다.
손님들을 맞이하시는 펠릭스 수사님의 식사 전 기도와 함께 식사가 시작된다.
주님, 우리에게 내려주신 이 음식과 우리에게 강복하소서.
역시 수도원 음식은 맛있다!
그냥 조용히 1박 2일 다녀온 이곳, 또 가고 싶다. 자꾸 생각이 난다.
아 참, 베네딕도 회 왜관 수도원의 최고의 음식은 바로 김치다.
사진이 너무 형편 없어서 정말 죄송하긴 한데, 다음에 가면 정말 잘 찍어올 것이다. 이 김치가 그냥 사온 김치가 아니다. 실제로 지금은 쿠바에 계시는 베네딕도회 신부님께 이야기를 들으니 초겨울이 되면 다들 모여 김장을 대규모로 엄청 한다고 한다. 지금은 신축 공사를 하고 있는 그곳에서 매년 배추를 길러서 뽑아 절이고 무치고 담갔는데 지금은 휴업중이라고. 정말 김치 최고였는데, 사진은 참담하구만... ㅋㅋㅋ
사실 나는 요즘 성당에 매주 미사 드리지 않는다. 아이 기르면서 한 15년 됐다. 그래도 늘 본향은 가톨릭이라고 생각은 하고 있지만...
수도원 가서 밥이라도 먹고 올 참이다. 그리고 하루에 세 번 기도 시간, 귀찮지 않고 참 좋았고. 또 다른 삶의 숙제고, 도전이 되는 것 같아서 좋기도 하다. 혼자 먹는 밥, 침묵, 침잠... 이런 것들이 정말 바쁜 삶 속에서 선물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