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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황섬 Apr 20. 2024

명륜진사갈비에서 길을 잃다

참 하찮은데, 그걸 보는 사람은 속 터지는 가족들의 티격태격 썰 푼다

명륜진사갈비에 엄마, 아빠, 나, 그리고 곰돌과 함께 갔다. 오늘 우리가 간 곳은 모든 것이 다 뷔페식. 고기도 먹을 만큼 가지고 오는 곳이다. 엄마가 아마도 다른 명륜진사갈비를 가봤던 것 같은데, 그곳이랑 고기나 다른 반찬 제공하는 방식이 다 달라서 좀 당황했던 모양이다. (엄마는 연세도 있으시고, 젊었을 때도 뭔가 당신이 아는 방식과 다르면 바로 얼음! 되는 경향이 있다) 


나는 상황을 딱 보니까 우리 네 사람 먹을 것, 즉 상추, 쌈장, 김치, 파절이 등등을 세팅을 해야 할 것 같아서 가자마자부터 분주했다. 엄마는 멀뚱멀뚱 뭘 할지 몰라 가만히 자리에 앉아 계셨다. 엄마에게 뷔페 방식이라고 이야기를 하고 엄마가 먹을 것을 가지고 오라고 했다. 그리고 너무 바빴던 나는 쌈장 좀 우리 다 먹을 수 있게 가지고 와 달라 부탁했다. 


그때는 아빠와 곰돌이 아직 도착하지 않아서 세팅부터 해야 했던 상황. 엄마가 자기가 잘 아는 집 아니면 능동적으로 움직이지 않는 스타일이고, 늘 받아만 왔던 사람임을 알아서 내가 미리 빨리 움직였던 것이기도 하다. 


조금 있다가 보니까 엄마는 두 접시에 엄마 드실 상추와 양파와 다른 음식들을 담아 오셨다. 옆에 아직 오지 않은 아빠 자리도 확보를 해야 하는데, 본인 접시로 거의 3분의 2 정도 자리에 죽 펼쳐 놓았다... 아, 왜 이게 짜증이 나던지. 


바로 곰돌 오고, 아빠 도착.  각자 먹을 것을 들고 자리에 앉았다. 당연히 고기는 나와 곰돌이 구웠다. 이 정도야 당연히 할 일. 그런데 엄마가 내가 다들 먹으라고 떠온 김치를 본인 젓가락으로 하나씩 하나씩 집어가는 것이다. 앞 접시에 먹을 만큼 다 떠갔으면 좋겠는데... 

문제는 계란찜! 두둥~ 

아니 본인 침, 쌈장이 다 묻은 숟가락으로 퍼 먹는다. 내가 그럴 줄 알고 미리 새 숟가락도 꽂아 놓았구만. 


- 엄마 이걸로 떠가. 이 숟가락은 아니지


그랬더니 엄마 반격. 


- 너 오늘 말이 세다. 왜 그러냐. 


솔직하게 다른 사람들을 배려 1도 못하고 자기 먹을 것만 가지고 와서 주욱 늘어놓고 다른 사람들 자리 침범해서 그냥 그게 뭔지도 모르고 먹고 있는 엄마가 싫었다. 아까 쌈장도 우리 네 사람 먹게  떠 와 달라고 부탁했는데, 밥공기에 한 사발을 떠 왔다. 아이고. 


- 소를 좀 먹자. 


나는 혹시 소고기가 있는데, 내가 못 보고 안 가지고 온 줄 알고 다시 돌아갔다. 없다. 여기는 돼지갈비, 삼겹살 등 돼지고기만 있나 보다. 엄마는 얼굴 한가득 그때 내가 간 데 갈 걸 하는 표정으로 계속 이 말을 되풀이했다. 


- 내가 간 데는 중랑구청 쪽인데 돼지고기, 소고기 다 잔뜩 구워 놓고 사람들이 계속 가져가게 해 놨어. 여긴 소가 없니? 소고기를 먹으야는데... 소가 없구나. 


이렇게 온몸으로 아까비를 외치는 할머니에게 딸이 또 애교 필살기를 펼친다. 


- 다음에 만날 때는 할머니 드시고 싶은 소고기 같이 먹으러 가요. 


'제가 살게요'라는 말 한마디 하지는 않았어도, 그리고 학생이라 당연한 일인데, 이 소녀는 어쩜 이렇게 다정한 말을 꺼내놓을 수 있는지 경이롭다. 나는 자꾸  엄마가 소, 소 거리는 것이 보기 싫어서 그냥 꾹 누르고 가만히 있었는데 말이다. 아니 왜 '무한리필'이겠어. 돼지나 되니까 수지타산 맞아서 하는 거지. 거기다 소고기까지 넣어봐요. 그게 남는 장사겠나. 이렇게 톡 쏴주고 싶은 못된 심보가 치밀어 오르는데, 딸의 예쁜 말 한마디가 순식간에 그를 가라앉힌다. 


구석에 앉은 엄마가 이번에는 상추를 계속 찾는다. 아빠는 에이, 여보쇼, 여기 파절이도 있고 양파도 있으니 그냥 드시오! 그런다. 아빠도 나도 상냥한 구석이라곤 1도 없다. 


- 상추가 비싸니까 많이 좀 가지고 와 봐요. 


엄마도 지지 않는다. 


- 에헤이~ 이런 부정직한 사람을 다 봤나. 비싸니까 가지고 오라니. 


엄마는 상추가 먹고 싶은 것이고, 아빠한테 은연중에 시키고 있는 건데, 아빠는 또 안 갖다 주겠다는 것이다. 그리고 부정직하단다. 내가 벌떡 일어나 상추 잔뜩 가지고 와서 엄마한테 안겨드렸다. 엄마는 정말 우리 다 나갈 때까지 상추 먹기 벌칙 받는 것처럼 다 드셨다.

싫은데, 불쌍하고, 또 괴랄하고, 비루해서 짜증 나는 사람들. 가족...


딸이라고 하는 애가 다 늙어서 오늘 이 두 어르신들을 보니까 전혀 다른 사람들을 위해 배려할 줄은 모르고, 또 나쁜 뜻은 아닌, 이기적인 두 사람이 뭉친 부부 조합이다 싶어 마음 참 미묘하다. 그 중간에 수많은 생각이 있었지만, 결론. 


나 참 이 냥반들 사이에서 그나마 잘 컸네. 

그리고, 명륜진사갈비가 잘못했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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