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담 - 누군가에겐 당혹스러웠을 수도 있는 5일 간의 아키비스트의 '약수' 연설이 끝이 났다. 스토리는 한 주 내내 올려본 적은 있어도, 게시글을 이렇게 6일 동안 게시한 것은 큰 결심이었다. 그것도 '글'을. 글을 보여주는 것은 본디 치부를 보여주는 일이다. 또 어떤 이에겐 자신의 자산을 보여주는 일과 같다. 그렇기에 자주 나의 모습을 발설하는 것은 '요즘'의 무서운 시대 (남을 헐뜯는 것이 비일비재하고 그것에 혈안이 된)를 앞으로도 쭉 살아가야 하는 입장에서는 꽤나 꺼려진다. 또한, 이 행위는 인스타그램의 '갬성'과는 사뭇 부합되지 않는 까닭에 어려운 고민들이 우열을 가리지 못하고 계속해서 충돌한다.
이 글은 사실, 요즘 듣고 있는 수업의 과제의 한 부분이다. 과제를 빌미 삼아 난 내가 쓰고 싶었던 글을 쓰고자 했고, 그 수업은 우연하게도 나를 나의 욕구가 깃들어 있는 '약수'를 향해 발걸음을 딛게 해주었다. 그렇게 내가 사는 '약수동'이라는 곳에 대해 글을 써 나가면서 전에는 보지 못했던 다양한 시선에 대해 고찰해볼 수 있었다. 수업에서는 아키비스트, 익숙하지 않은 감각으로, 발바닥으로, 끌림과 욕구에 충실하게, 격식을 차려 아예 새롭게, 월담하며와 같은 새로운 접근 방식을 선사했다.
나와 내 글을 우연히 마주한 사람들이 함께한, 한 주간의 아키비스트 여정은 프롤로그를 시작으로 타지에서 - 경계에서 약수 사거리를 바라보는 것 - 약수 사거리에 서있게 된 것 - 약수 사거리를 넘어 달동네가 주를 이룬 '약수'의 안까지 건너서고 - 마침내 그 약수의 골목길, 태초에 글이 시작되었던 그 골목길 구석탱이로까지 글과 시각이 함께 이동하며 이어진다. 나는 이 글을 약수에서 적어내려 갔을까, 약수가 아닌 곳에서 적어내려 갔을까? 다만 '약수'의 글을 쓰기 위해서는 약수에 머무르는 법도, 약수에서 벗어나는 법도 알고 있어야만 했다. 만남과 이별을 모두 알고 있어야지만, 만남의 감정과 이별의 감정도 모두 알고 있어야지만 하는 그러한 과정이었다.
24살의 나는 나도 내가 무엇을 하고 다니는지, 잘 모르겠는 시간을 걷고 있다. 2020년의 10번째 달도 절반을 훌쩍 지나가버렸다. 살면서 가장 안 풀리는 한 해라고 생각하고 있었다. 바닥까지 곤두박질 치며 죽어간다는 것이 무엇인지 깨달아가고 있었던 찰나였다. 답을 알 수 없는 노릇이지만, 앞서 다뤘듯 만남과 이별을, 만남의 감정과 이별의 감정까지 모두 알아야 비로소 그 '약수'에 대해 적을 수 있는 아키비스트가 될 수 있기 때문에, 나에게 이러한 죽어가는 시간이 주어진 것인지도 모르겠다. 지쳐있다. 하지만 이내 죽지도 않을 것이다. 오랜 시간 글을 썼기에 글이 아닌 나의 휴식을 써야할 시간이 찾아왔다.
야훼가 육일이라는 시간 동안 세상을 창조한 뒤, 제 칠일 되는 날에 안식을 취하셨듯이, 이 글의 처음과 끝을 책임질 약수 아키비스트도 마찬가지로 이제 제 칠일 되는 내일은 안식할 계획이다. 육일 간의 작은 도전은 나에게도 새로웠다.
여담이 길었다. 앞으로의 시간 속에서 '나'는 어떻게 살아갈지 궁금해진다. 이 연설문의 유언, 그 마지막 문장은 이럴 것 같다. <온점으로 이 여정을 마친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