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기생충
영화 기생충 감상,
두 번 보고서야 적어보는 글
썼다 지웠다를 무수히 반복하고 냅다 질러보지만
아직도 모르겠다.
그냥 아직도 슬프기만한 것이다.
내가 이 영화를 보며 슬펐던 이유는
희망을 갖고 키워가는 그 무수한 다짐과 포부와 의지의 집념 모두가
수없이 이어지는 수많은 권태와 무력감 그리고 상실감에 의해서
짓밟히고 자꾸 맥이 끊기게 되는 것이, 쓰러지게 되는 것이 어떤 것들인지 너무나도 잘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안에서 비로소 찾게 되는 '나' 자신이, '나'의 모든 것이 부끄러웠기 때문이다.
그 치부가 들켰을 때,
그 철저한 무계획 속에서 세웠던 무너질 예정인 계획이,
처량하고 초라한 것을 완벽히도 아는데,
책임감을 위한 책임감이 자신을 희생해가며 얻어낸 기생의 결과로
아픔만 남아 쓸쓸히 지하로 지하로 내려가는 그 책임감의 삶을 보며
기우가 어찌 웃지 않을 수가 있을까.
책임감이라는 것은 무서운 것이다.
그리고 권태와 무력감, 상실감 같은 따위의 것들도
모두 무서운 것이다.
우리의 초라한 삶에 연민을 느끼게 한다.
우리는 그들과 결코 같아질 수 없음을
우리의 성향이
그 우리의 처절한 몸부림이
그러하다.
과연 우리는 그들과 같아질 수 없을까
그러하다.
우리는 벌레들이기 때문이다.
더더욱 슬픈 것은
공생하고 상생하며 살아가는 평등한 사람들이
선을 넘나들게 되는 순간부터
기생충이 되어 완벽하게 파국을 맞이하게 된다는 그 결론이
너무도 아프다는 것이다.
사람들은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 너그럽고
너그럽기 때문에 자신의 이기심을 위해서 한없이 잔혹하다.
그런 세상에서
다른 이들에게 기생하며 살아간다는 것을
각자는 모른다.
인지하지 못한 삶은 따라서 그 각자에게 헛된 꿈을 꾸고
완성된 결말을 향해 살아가게 한다.
과연 나는 자신의 주제를 인지했는가
내가 기생충이라는 사실을 자각하고 살아가는가
나는 벌레로부터 슬픔을 느낀다.
무뎌진다.
이미 기생하게 된 기생의 생각이
생각을 멈추게 한 뒤 갉아 먹고 있다.
정말로 나는 내 주제파악을 온전히 인정할 수 있는가.
나는 좋은 세상이란 욕망을 헛되게 꿈꾸며 살아가는 적어도 내 세계에서는 순수한 벌레이다.
그리고 이미 내 뒷이야기는 정해져있다.
이 권태와 상실 그리고 무력한 세계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