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이지색배블루베리

속초, 당일치기 여행, 터미널,

by 변덕텐트


#베이지색배블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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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보세요? 어 형 뭔 일이야.”
“어 형준아, 너 그 혹시 금요일날 시간 있나?”

속초를 가게 됐다.
군인이었던 시절 같은 군인이었고
지금도 군인이고 앞으로도 군인일
우리 막내형 김 하사님의 휴가날이라고
강원도 속초로 가기로 정해졌다.

아무것도 안 하는 시험기간이나,
괜히 스트레스 받는 요즘이었는데
잠깐 탁 트인 바다 보며 힐링 하기로 마음 정했다.

당일날 부랴부랴 씻고 옷을 입고 나와
약수. 약수에서 신당, 신당에서 강변
적적한 노래를 들으며 걷곤 했던 익숙한 거리를 걸었다.
터미널에 도착해서 복귀 할 때 거쳤던 승차홈에서 얼떨결에 속초행 버스를 탔다.

속초에 도착했고
출발했어야 하는 시간에 일어나버린 김 하사님 덕분에
많은 시간을 가지게 됐다.
처음 전화를 받았을 때부터 그런데
예상도 들었고 화도 나지 않았다.
여행의 묘미는 원래 어영부영 흘러감 속에 존재하지 않던가?

미묘한 분위기의 카페에 앉아
이것저것 할 수 있었다.
과제도 하고 투두리스트도 적고 갑자기 그림도 그렸다.
지느러미 카페라고 하니까 바다생물이 생각나서 막 그셨다.

아바이 순대 전문점을 가서 배 터지게 이야기 꽃을 피웠다. 오랜만에 만났음에도 어제 본 것처럼 같이 그 어제 있었던 것처럼 느껴졌다. 많은 공통점을 공유하고 있던 사람이라 그런가 그랬다.


길로 나와 조금 걷다가 이것저것 샀다.
쇼핑 삼매경에 빠져 갑자기 옷을 사고
지출에 관대하기로 마음을 다잡았다.

결국 바다은 못 갔다.
속초까지 와서 무슨 일인가 싶지만
아쉬움을 두고 떠나왔으니
다음에 한 번 더 갈 핑계가 생긴 셈이다.


터미널에는 사랑이 있다.
이곳은 오랫동안 머물다 가기보단 매순간순간 잠깐 거쳐가는 그런 곳이지만

직장 다니느랴 애 보느랴 바쁜 아들 딸내미를 위해 시골에서 밑반찬들 손수 만들어 바리바리 싸온 할망구의 설레는 마음과
국군장병들이 오랜 시간 손꼽아 기다리다 새벽부터 부지런히 준비해 나와 마신 사회의 첫 공기가 담겨있는 곳
많은 연인이 그곳에서 서로를 설렌 마음으로 기다리다 결국 만나는 곳
그러다가 아쉽게 다음 만남을 약속하며 찐하게 끌어안는 곳
수많은 이들의 고향과 닮아 있는 곳

정말 많은 만남, 설렘과 아쉬움 그리고 이별같은 것들이 깃들어 있는 곳

그곳이 터미널이다.
사랑처럼 단순하면서 복잡한
솔직한 행복들이 그 터미널에 있다.



김 하사가 갑자기 핸드폰을 보더니 말했다.
지금 입고 있는 바지 색깔과 먹고 있는 음식의 이름을 합치면 밴드이름을 만들 수 있다고.

웃겼다. 밴드 이름 대신 이번 짧은 여정에 이름을 지어줬다.

‘베이지색배블루베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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