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브제로서의 수집품들
어릴 때부터 어떤 조형물을 손에 쥐고 노는 걸 좋아했다. 애착인형도 아닌 태엽으로 감아서 움직이는 작은 강시 장난감을 늘 손에 쥐고 다녔다. 그냥 플라스틱 장난감일 뿐이었다. 건전지를 투입하는 곳도 없는 강시가 태엽을 몇 바퀴 돌리면 바닥을 빙글빙글 도는 것이 신기했다. 살아있는 생명체를 손에 품고 다니는 것 같은 기분이었다. 세월이 흘러서 그 대상만 조금씩 바뀔 뿐 나는 부피가 크지 않은 손바닥에 쥐어지는 무언가를 늘 수집했다.
세계명작동화라는 애니메이션이 있다. 오후 5시쯤이 돼서 저녁을 먹기 전 지상파에서 틀어주는 애니메이션이었다. 내가 그중 유독 좋아했던 만화는 "빨간머리 앤"이었다. 지금 돌아보면 내 감정의 방향을 결정하는 데 이 만화가 적잖은 영향을 주었다. 앤은 삶이 주는 외로움 속에서도 감동받을 일을 스스로 찾아내며, 감정의 파고를 넘나드는 대사를 읊조렸다. 나는 처음에 만화를 보면서 앤이 너무 시끄럽고 못생겨서 싫었다. 그러나 이야기가 깊어질수록 어느새 앤이 하는 주옥같은 대사에 끌리기 시작했다. 성인이 되고 나서도 일이 잘 풀리지 않을 때 앤의 대사를 떠올렸다. 앤은 늘 내일을 낙관했고, 불완전함을 삶의 재미로 받아들였다. "내일은 아직 실수가 하나도 없는 새로운 날"이라는 말은 지금도 삶이 흔들릴 때 떠오른다.
그렇게 마음속에만 머물던 앤의 세계는, 성인이 된 어느 날 우연히 마주친 작은 조형물을 통해 다시 내 손바닥 위로 내려앉았다. 어릴 적 봤던 빨간머리 앤 만화 속 장면을 그대로 구현한 피규어였다. 성냥갑 크기의 디오라마 피규어도 수집했다. 손바닥 속 작은 세계는 섬세했고, 장면이 흘러가는 것처럼 느껴졌다. 어떻게 이렇게 작은 크기 안에 세밀함을 담아낼 수 있는지 경이로웠다. 마침 온라인서점에 빨간머리 앤 핸드북세트도 판매 중이어서 소장용으로 구입했다.
어느덧 시간이 흐른 이후엔 안경을 수집했다. 안경을 손에 올려두고 바라보는 걸 좋아했다. 템플의 모양과 힌지의 차이, 그리고 경첩이 접혔다 펴질 때의 견고한 조립감을 관찰했다. 안경은 하나의 예술품이자 기능성, 실용성을 겸비한 작품과 같았다. 어떤 안경은 건축물을 바라보는 것처럼 조형미가 있었다. 나에게 안경은 단순한 시력 보정 도구가 아닌 기능과 미학이 응축된 하나의 오브제였다. 같은 아세테이트 뿔테라고 해도 시트가 주는 색감이 다르고, 빛에 반짝일 때 더욱 매력적으로 느껴졌다.
살다 보면 자신의 존재보다 크고 높은 단계를 바라보느라 고개가 뻐근할 때가 있다. 이런 일상에서 벗어나 잠시 고개를 숙여 작은 행복, 작은 목표를 추구하는 일 또한 삶의 균형감을 맞추는 일이다. 나는 거실 장식장에 그동안 수집한 작은 가챠 피규어들을 전시했다. 일상이 힘들거나 근심이 생기려 할 때 내가 모은 세계관을 바라본다. 그 속엔 나의 과거, 현재, 미래가 전시되어 있다. 또 내가 나를 객관적으로 바라보게 해주는 도구가 된다.
안경함에서 그날의 기분과 코디에 따라 안경을 고른다. 작은 예술품은 얼굴 위에 얹혀 또 다른 나를 만들어낸다. 손바닥 위의 세계를 들여다보는 동안, 시간은 잠시 멈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