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심에 남아 있는 오래된 것들

서울 곳곳에서 만난 빈티지의 얼굴들

by 새벽일기

유유자적 사는 삶을 선호한다. 그런 것 치고 나는 도시가 주는 조용한 활력을 좋아한다. 지역으로 보자면 사실 강남 지역의 도회적인 화려함은 나와 거리가 있다. 콘크리트에서 뿜어져 나오는 여름의 열기, 겨울철 풍기는 냉기와 같은 것들은 교대 근처와 강남역 주변에서 머무르는 걸 어렵게 한다. 이태원과 홍대는 다양성을 품고 있다는 점에선 자유를 느끼게 해서 좋다. 하지만 어둠이 몰려올 때 광란의 시간이 시작되고, 길에는 젊음의 기운을 어쩌지 못해 몸을 못 가누는 청춘을 보는 일이 좀 괴롭다. 성수는 이제 너무 많은 인파에 시달리는 곳이 되어버렸다. 소금빵 하나 사 먹기 위해 귀한 시간을 길에서 낭비하고 싶진 않다. 내가 좋아하는 서울의 풍경은 종로, 을지로, 연희동, 서래마을, 망원동, 은평 한옥마을과 닮아있다. 도시의 일원으로 살되, 자연이 근거리에 있는 지역. 도피처처럼 자연 한 구석으로 숨어들 여지가 있는 지역을 좋아한다. 내가 좋아하는 도시들에는 세련됨과 오래된 것들이 따로 분리되지 않고 공존한다. 을지로만 해도 핫플에서 지인들과 모임을 가지기 좋다. 트렌디한 장소를 벗어나 골목길로 접어들면 세월이 오래된 간판들과 마주한다. 조금 전 머물던 장소의 인테리어와 분위기, 오래된 간판에 적힌 폰트의 빈티지함이 믹스돼서 "을지로"의 이미지가 그려진다. 그 거리는 나를 다시 부른다. 괴리감에서 오는 활력이 에너지를 갖게 한다.


쉬는 날엔 동네 곳곳을 탐방한다. 목적지를 찾아 걷는 것이 아닌 우연에 기대서 산책을 한다. 그러다 골목길에서 커피콩을 볶는 카페에 앉아 시간을 보내기도 하고, "이런 곳에 서점이 있었나." 하는 생각이 들게 하는 장소에서 책을 무작정 고르는 경험도 하게 된다. 얼마 전에는 요즘 새롭게 생겨나는 건축물들과는 다르게 붉은 벽돌로 지어진 웅장한 성당을 지나치게 됐다. 현대식 건축물에선 더 이상 쓰이지 않는 재료다. 빌라의 경우에는 "30년이 훌쩍 넘은 건물이군"하는 생각이 들고 그것이 웅장함을 자랑하는 건물일 땐 연대기가 궁금해진다. 내가 발길을 멈춘 곳은 "불광동성당"이다. 건물이 네모 반듯한 모양이 아닌 왼손, 오른손을 마주 붙인 것과 같은 형태를 취하고 있었다. 종교가 주는 상징인 "기도하는 손"과 닮아있어서 호기심을 자극했다. 가까이 다가섰다. 성당 입구 초입에 "서울미래유산"이라는 현판이 붙어있었다. 어쩐지 심상치 않은 건물 외형에 눈길이 머물렀다. 붉은 벽돌이 세월의 무게를 정통으로 맞아 완연한 붉은 빛깔이 아닌 잘 숙성된 빛깔을 품고 있었다. 색이 바랜 붉은 벽돌은 각 벽돌 한 장 한 장마다 일률적인 형태와 색이 아닌 불규칙성을 품은 조형미를 갖고 있었다. 울퉁불퉁한 벽돌을 손으로 쓸어내렸다. 나도 이렇게 시간이 지날수록 깊은 중후함을 품어내는 사람이 될 수 있을까.


타투를 하기 위해 문래동 거리를 간 적이 있다. 간판도 없는 타투이스트의 시술 공간에서 타투를 받고 집으로 돌아가려는 길, 참았던 허기가 밀려왔다. 아무래도 뭔가를 먹고 가야 될 것 같았다. 문래동 골목길은 분위기 있는 와인바와 카페, 수제 햄버거 가게가 이미 생긴 이후였다. 그 옆에는 작지 않은 규모의 철공소가 붙어있었다. 철공소에서 내는 쇳소리들이 옆 가게에 영향을 미치진 않나 궁금했다. 그런데 늦은 저녁 시간이라 그런지 궁금증을 해소할 길은 없었다. 그렇다고 배가 고플 뿐인데 분위기 있는 와인바에 앉아 시간을 보내고 싶진 않았다. 익숙한 음식을 먹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 비가 추적추적 내리는 날씨에 습기를 머금은 안개가 공기 중에 부유하며 떠다녔다. 든든한 곡기로 허기를 달래고 싶은 마음. 골목길을 조금 더 돌자 기사식당이 눈에 띄었다. 포렴을 걷고 들어간 공간은 조금 전 세련된 인테리어의 와인바와는 대비되게 생활의 흔적이 묻어났다. 나는 쌈밥을 주문하고 앉아 창밖을 바라보면서 고기를 상추에 잘 얹어서 야무지게 먹었다. 밖에는 문래동의 거리 문화를 체험하기 위해 찾아온 젊은 여자들이 둘셋씩 짝지어 카페, 와인바, 비스트로 가게로 들어갔다. 철판 위에서 잘 구워진 고기를 상추에 싸 입으로 연신 가져갔다. 입안 가득 우물거리며 창밖을 보았다. 옆에는 철공소 노동자의 공장 점퍼를 입은 아저씨가 소주 한 잔에 찌개를 놓고 노동의 고됨을 달래고 있었다. 마치 두꺼운 책 속에 끼워진 책갈피가 된 기분이었다. 과거를 지키는 철공소와 미래를 향하는 와인바. 그 경계의 지점에 내가 꽂혀 있었다. 공간의 시간이 겹쳐지고 변해가는 찰나를 온몸으로 감각했다.


가수 이효리가 제주도를 떠나 연희동에 머무른다는 기사를 읽었다. 그곳에서 요가원을 새로 열었다고 한다. 일일클래스로 가격도 비싸지 않고 무엇보다 이효리와 같은 공간에서 요가를 즐길 수 있다는 게 큰 매력이었을까, 일일 요가클래스는 빛과 같은 속도로 매진된다고 한다. 나는 이효리의 요가원을 찾지 않고 연희동 골목 곳곳에 자리한 빈티지가게를 구경한다. 아난타요가 아래에도 빈티지샵이 있다. 문을 열고 들어서면 목재로 지어진 공간이 포근하게 공기를 감싸고 있다. 목재가 주는 향, 나이테가 쌓은 세월의 흔적에 마음이 간다. 그곳에서 열기로 구부려서 만든 의자를 구경한다. 나무 합판이 유려하게 꺾인 모습을 살펴보면서 열로 나무를 구부려 만드는 기술력에 감탄한다. 인더스트리얼 인테리어, 혹은 성수동 "할아버지네 공장"의 높은 층고의 개방감과 철골 구조를 그대로 드러내는 러프함과 극명하게 대비된다. 목재는 세월의 결을 품고 있고 그것이 빈티지샵의 가치와 물건들과 잘 맞닿아 있다. 나는 옷걸이에 걸린 옷들의 결을 손에 담는다. 스웻셔츠의 라벨 하나에도 세월의 변화가 읽힌다. 봉제방식, 옷에 바느질된 스티치, 주머니 덮개는 정돈되지 않은 미학을 담았다. 르메르와 포터리와 같은 댄디함은 없지만 뭉근한 매력이 숨어있는 옷들은 상상력을 자극한다. 이 옷을 입은 나는 미국의 버몬트, 메인 같은 동북부, 콜로라도 산간에 살아야 할 것만 같다. 그곳에서 올드카를 끌고 캠핑을 즐기는 삶을 살 것이다. 빈티지 숍 한 구석, 영롱한 오렌지 빛깔을 머금은 의자가 나를 상상 속 그 시간으로 데려다 놓았다.


헌책방의 종이 냄새, 골목의 오래된 간판, 붉은 벽돌의 거친 표면 앞에서 나는 자주 발걸음을 멈춘다. 세월을 견딘 것들은 나를 재촉하지 않는다. 세월 곳곳에 남아 있는 오래됨은 오늘도 제 속도로 도시를 밝히고 있다. 그 앞에서 나는 잠시, 변해도 괜찮은 사람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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