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끝내 프렌치워크재킷을 입는다

눈에 밟히면 조만간 사고야 만다

by 새벽일기

한 장의 사진으로부터 출발했다. 백발이 성성한 할아버지가 파란색 워크재킷을 입고 자전거 위에 걸터앉아 있었다. 특별히 잘생긴 배우도 아니고, 눈길을 끌만한 화려함도 없는 착장이었다. 활짝 웃는 얼굴엔 세월의 주름만큼이나 여유로운 표정이 유독 돋보였다. 그 사진을 본 이후로 재킷이 자꾸 눈에 밟혔다. 예전에 홍대 연남동에 있는 가정집 주택을 개조해서 만든 빈티지옷 가게를 들른 적이 있다. 마당을 가로지르는 빨랫줄에 재킷이 열 벌 정도 일렬로 걸려있었다. 성큼 들어가서 높이 걸린 재킷을 한 벌씩 빼내 몸에 걸쳤다. 다행히도 옷과 인연이 닿았는지 저렴한 가격에 살 수 있어서 기분이 좋았다. 빈티지옷에서 나는 퀴퀴한 냄새는 어느 정도 감수를 해야 했다.


원하던 옷을 손에 넣은 나는 집에 와서 냄새를 빼느라 꽤나 고생했다. 섬유유연제를 들이부어 빈티지의 흔적이 묻어난 냄새를 지웠다. 패션은 기세라고 했던가. 그 시절 아메카지 마니아들에겐 프렌치워크재킷이 익숙했다. 그러나 여자들이 입기에 대중적인 옷은 아니었다. 거울에 비친 내 모습이 마음에 들었다. 조금은 느슨하면서도 삶의 팍팍함으로부터 한 켠 벗어난 듯한 모습. 어느 날 친하게 지낸 언니가 주말 저녁에 클럽에 같이 가자고 했다. 나는 시끄러운 환경에서 정신을 못 차리는 편이다. 게다가 유흥에 돈 쓰는 걸 아깝게 생각한다. 그렇지만 칵테일 한 잔을 마신 언니들은 계속 "클럽"을 외쳐댔고, 술기운을 빌려서 눈 딱 한번 감기로 했다. 가게 앞에 있는 풍선인형보다 더 춤을 못 추는 나이기에 그 시간을 어떻게 버텨야 할지 난감했다. 그러나 걱정은 기우였다. 클럽에 발을 들여놓지도 못한 것이다. 그날도 나는 여전히 프렌치워크재킷을 걸치고 있었다. 언니들은 나만 내버려 두고 클럽 안에 들어갈 순 없다고 했다. 결국 모두 가지 않는 방향으로 의리를 지켰다. 그리고 우린 감자탕집으로 발길을 향했다. 감자탕을 먹으면서 언니가 내게 말했다.


"아니, 그 재킷은 왜 자꾸 입고 다니냐고. 무슨 노동자 같아. 그것만 안 입고 왔어도 오늘 입밴(입장거절) 당하는 일은 없었잖아."


"언니 제대로 봤어. 딱 맞췄네 이거 프랑스 노동자들이 입던 옷이야."


"그러니까 뭐 그런 옷을 입고 다니냐고."


"언니가 패션의 세계를 알 리가 없지. 말을 말자."


"쟤는 왜 자기만의 추구미를 고집하나 몰라."


"이게 내 스타일이고 나만의 패션세계야. 이 재킷 때문에 입장거절 당한 거면 안 들어가도 돼. 무슨 귀족들 들어가는 데야?"


언니들은 나의 고집에 혀를 내둘렀다. 출근할 때도 나는 재킷을 자주 입었다.

그러던 어느 날, 이사를 하면서 옷을 잊어버리게 됐다. 한참이 지나서야 아끼던 옷을 잊어버리게 된 사실을 알고 실의에 잠겼다. 빈티지옷을 같은 가격대에 구하기란 하늘의 별따기였다. 게다가 다시 검색을 해보니 그 사이에 프렌치워크재킷은 대중적으로 유행하는 옷이 되어 있었다. 이제는 빈티지 개체라 해도 15만 원은 줘야 했다. 무려 세 배나 넘는 가격이 된 것이다. 그 사이에 패션피플들이 가입한 카페에서 프렌치워크재킷을 구입한 후기가 우후죽순 올라왔다. 나는 스크롤을 내리며 후기 사진을 보는 것으로 헛헛한 마음을 달랬다. 그렇게 워크재킷에 대한 열망을 조금은 가라앉힐 수 있었다.


어느날 sns를 보다가 빈티지옷을 파는 연남동 가게의 피드를 보게 됐다. 영롱한 파란색 빛깔의 1940년대 재킷들이 개체별로 착착 줄 맞춰 걸려있었다. 나의 발걸음은 연남동으로 향했다. 주말이라 그런지 경의선숲길엔 많은 사람들이 거리를 걷고 있었다. 나는 혼자서 네이버지도를 주시하며 "매그놀리아미스"라는 빈티지옷 가게를 찾아 걸었다. 가게의 문을 열고 들어가 보니 예전에, 내가 5년 전 프랜치워크재킷을 구입한 바로 그 가게였다. 나는 적당히 루즈한 핏의 재킷을 몸에 걸쳤다. 보라색 빛깔로 잘 익은 원단 재질이 마음에 들었다. 계산을 하면서 점원에게 예전에 주택 개조해서 만든 빈티지가게가 아니었는지 묻자 깜짝 놀라며 맞다고 했다. 나보고 아주 옛날에 그럼 오시지 않았었냐 묻기에 웃음이 터져 나왔다. 5년 전이 아주 옛날인가, 그럴 수 있겠다. 여자 점원이 아메카지 옷을 취급하는 가게에서 일한다는 게 새로웠다. 나는 반가운 마음에 이것저것 질문을 했다. 가령 반다나를 스타일리시하게 활용하는 방법이라든지. 점원은 행거치프로 꽂을 수도 있고, 흔하게는 그냥 목에 스카프처럼 두르는 거라고 했다. 나는 빈티지 반다나 종류가 다양하지 않아 아쉽다는 말을 한 후 인사를 하고 가게를 나왔다. 점원이 다음에 또 놀러 오시라며 반갑게 인사를 했다. 쇼핑백을 들고 홍대입구역으로 걷는 걸음이 사뿐했다. 나는 돌고 돌아서 프렌치워크재킷을 다시 몸에 걸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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