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모임에서 사람 사는 이야기를 듣다

양주 장욱진 미술관을 가다

by 새벽일기

독서모임 덕분에 양주 교외로 나들이를 나갔다. 주말의 미술관 모임이라니 교양 있는 여성들의 모임이다.

그림에 대해 잘 알진 못해도 일 년에 서너 번은 꼭 전시를 관람하려고 노력한다. 의도적으로 음악회나 미술 전시를 보면서 생각을 다방면으로 하려고 뇌를 훈련시킨다. 다행히 양주까지 한 번에 가는 버스가 있다고 해서 구파발역에서 모였다. 근 일주일 내내 지속된 추위가 염려됐지만 토요일 오후엔 날이 풀려가고 있었다. 바람은 좀 차가워도 햇볕이 정수리에 따듯하게 내려앉았다. 2025년엔 독서모임에 지속적으로 참여하지 못했다. 오랜만에 만나는 운영자님과 새로 만난 회원분과 인사를 나눴다. 10분가량 버스정류장에 서서 담소를 나누다 보니 곧 양주 장흥으로 가는 19번 버스가 도착했다. 경기도까지 나가는 일이 드문지라 소풍 가는 기분이 들었다. 나란히 버스 뒷자리에 앉아서 근황을 이야기했다.


정규 독서모임에선 서로의 직업이나 나이에 대해 묻지 않았다. 이날만큼은 책 이야기의 굴레에서 벗어나 사람으로 회원들을 알아가게 됐다. 나는 원래 어떤 모임에서든 상대의 나이와 직업, 사는 곳을 먼저 묻지 않는다. 사람을 사귈 때 장벽이 높은 편이다. 누군가에게 호기심을 내보이는 일도 드물다. 그런 내 모습을 친해지고 싶어 하지 않는다고 오해하는 사람도 있었다. 진짜 내 속마음은 사람을 알아가는 일에 신중하고 싶었다. 이왕 알아가기로 마음을 먹은 이후엔 오랜 시간에 걸쳐 심도 있게 알고 싶은 것이다. 이날 나는 많은 질문을 받았다. 나에 대한 관심이 형식적인 건지 호기심인지가 자못 궁금했다. 그런 궁금증 또한 시간이 흐르면 저절로 풀릴 거라 생각했다. 지금 이 시간만큼은 앞에 있는 사람들을 대하는 마음에 충실하고 싶었다. 대답할 수 있는 말들을 했고, 하고 싶지 않은 말은 에둘러 비켜갔다. 내가 상대에 대해 다 알 수 없듯, 내가 말을 한다 해도 알 수 없는 부분은 여전히 존재할 수밖에 없다.


버스가 고양시 지축동을 지날 무렵 창 밖에 긴 줄의 행렬이 보였다. 요즘 유행하는 두바이쫀득쿠키를 사기 위한 사람들의 줄이었다. 우리는 그 줄을 바라보면서 서로 두쫀쿠를 먹었는지 물었다. 셋 중 누구도 먹어본 사람이 없었다. 비슷한 또래라 그런지 유행하는 요즘 쿠키를 왜 안 먹는지 굳이 말 안 해도 알 것만 같았다. 게다가 어쩌다 직업을 오픈하고 보니 우리 셋 모두 나랏일을 하는 공무원이었다. 구체적인 직업을 얘기하기 전 직장에서 받는 스트레스에 대해 이야기를 했다. 모두 일에 대한 애로사항보단 사람에 대한 스트레스가 컸다. 상대가 그만둘 일이 없다는 게 제일 스트레스로 다가온다고 말한 부분에서 공무원인가 보다 추측했는데 역시나였다.


버스를 타고 양주에 가는 길이 막히지 않아서 시야가 즐거웠다. 수다를 떨면서 가다 보니 생각보다 장욱진미술관 앞에 금세 도착했다. 매표소에서 성인 1인 표를 각자 끊었다. 날씨가 한풀 꺾였다 했지만 여전히 바람은 매서웠다. 추워서 따뜻한 차로 몸을 녹이고 싶었다. 미술관 근처에 카페가 보이지 않아 로비에 서서 합류하기로 한 회원 두 명을 기다렸다. 오늘의 모임원 다섯 명이 모여 우리는 민복진 미술관을 향해 먼저 발길을 돌렸다.





전시장에 들어서자 민복진의 이름이 먼저 들어왔다. 1층에는 넓은 공간에 민복진이 조각한 작은 오브제에 가까운 작품들이 있었다. 화이트 벽면과 조각품들이 잘 어우러져 분위기 있는 공간이라는 느낌이 들었다. 미술관을 방문한 관람객들이 실제로 민복진의 작품을 그릴 수 있도록 도화지와 연필이 구비되어 있었다. 나도 자리를 잡고 앉아 화병과 사람 등을 그렸다. 데생 기법으로 그럴듯하게 그리고 싶었다. 크로키를 그리듯 윤곽을 위주로 그리다 보니 세밀한 그림이 되진 못했다. 아쉬웠지만 기다리는 모임원들을 따라 2층으로 올라갔다. 2층에는 대형 조형물들이 창 안으로 들어오는 햇살을 맞고 있었다. 민복진의 작품들은 사람 안에서 행복과 사랑을 함께 표현하는 작품들이 주를 이뤘다. 작품의 제목 또한, "커플", "가족"이 대부분이었고, 조금씩 디테일한 형태만 달라졌다. 반달 모양의 틀 안에 가족으로 보이는 조각품들이 즐거운 한 때를 보내는 것 같은 조형물도 있었다. 사람이 혼자 살아갈 수 없듯, 서로에게 기대어 인생을 살아가는 삶을 표현한 것 같았다. 실험적이기보단 친근한 느낌이 드는 작품이었다.


장욱진 미술관 매표소 안으로 다시 들어와서 공원을 거닐었다. 조금 전 구경한 민복진의 조형물도 공원에 전시되어 있었다. 공원길을 따라 걷다 보니 하얀 건물이 눈에 들어오고, 그곳이 장욱진의 작품이 전시된 미술관이었다. 파란 하늘과 잘 어우러져서 바닷가 근처에 있는 건물 같았다. 서울의 시끌벅적한 주말 나들이 장소와는 확연히 달랐다. 내가 추구하는 고요한 분위기가 느껴지는 공간이었다.







1층 전시장으로 들어서자 검은 먹으로 그린 작품들이 벽에 걸려 있었다. 불교를 모티브로 한 그림들이 많았고, 달마대사, 보살을 표현한 작품들이 눈에 띄었다. 흰색 화선지 안에 먹의 농도와 붓의 질감으로 표현한 그림은 마음을 평온하게 했다. 명상을 하듯 먹을 갈고 참선을 하는 마음으로 그림을 그린 미술가의 모습이 떠올랐다. 초가집과 밭을 매는 농부, 밭고랑을 걸어가는 소의 모습을 그린 그림. 소박한 시골 정취가 담긴 풍경도 눈길을 끌었다. 2층 작품은 1층의 작품보단 색채가 다양한 작품들이 많았다. "완전한 몰입"이 주제였다. 삶의 의미를 자신만의 즐거움을 찾아 몰두하고 자기실현을 할 수 있음을 표현했다. 인간의 삶을 고도의 집중 상태로 표출해 내는 과정을 예술로 그려낸 것 같았다. 이날 오후 2시에 도슨트가 들려주는 강의가 있을 예정이었다. 우리 일행도 모두 도슨트 강의를 듣기 위해 한 시간 반 정도 각자 작품을 감상하는 시간을 가진 거였다. 그런데 막상 시간을 넘겨 기다려 보아도 도슨트는 1층 로비로 오지 않았다. 결국 우리는 조금 더 앉아서 기다린 후 같이 늦은 점심식사를 하기로 했다.


한 분이 미술관에 올 때 차를 갖고 오셔서 점심메뉴 선택의 폭이 넓어졌다. 안 그랬다면 미술관 근처의 계곡 휴양지에서 먹는 선택지밖에 없었다. 양주 장흥은 아직 대중교통이 원활하게 다니지 않는 대신 "똑타"라는 버스 운행 애플리케이션이 잘 되어 있다. 그래도 기동력 있게 움직일 수 있어서 회원분의 차를 타고 가니 시간이 단축될 수 있어서 좋았다. 생각보다 큰 차를 갖고 오셔서 여유롭게 좌석에 앉아 드라이브를 하는 기분으로 이동했다. 지금도 운전해 주신 분께 깊은 감사 말씀을 전한다. 자칫 지칠 뻔했는데 덕분에 편하게 밥을 먹으러 갈 수 있었다.


저마다 미술 관람도 좋지만 역시 배고픔이 먼저였다는 후기가 뒤따랐다. 제일 인간적인 말에 웃음이 뒤따라 터졌다. 송추가마골에서 갈비탕과 녹두전으로 배를 채웠다. 먹으면서 미술 관람에 대한 짧은 감상을 서로 나눴다. 장욱진, 민복진 미술관에서 관람한 작품 모두 현대미술처럼 어렵거나, 실험적이지 않고 친숙했다는 공통적인 감상 후기였다.






송추가마골에서 식사를 한 영수증을 들고 뒤편에 "OPIN"이라는 카페로 향했다. 베이커리도 같이 취급하는 넓은 카페였다. 식사한 영수증을 카운터에 보여주자 10%를 할인해 주었다. 이 카페는 2층에 있는 샹들리제가 너무 이뻤다. 층고가 높고 세 개의 샹들리에가 천장에 매달려 있으니 분위기가 색달랐다. 나는 말차라떼 아이스를 시켰고, 우린 자리를 잡고 앉아서 주거에 대한 이야기를 했다. 미혼과 기혼이 섞여 있어서 각자의 처지는 달라도 역시 집 문제가 생활 문제와 직결된 일순위였다. 천정부지로 오른 집값에 월세값을 나누어 내기 위해 룸메이트라도 구해야 한다는 의견도 있었다. 요즘은 전세도 품귀 현상이고, 서울에서 월세 사는 것도 최소 월 80만 원에서 90만 원이다. 강남 쪽으로 넘어가면 100만 원 후반대에 육박한다. 그러다 보니 사는 공간의 쾌적함을 위해 차라리 지방으로 이전을 할까 한다는 얘기도 있었다. 결혼한 부부들도 각자 수입과 처지만 다를 뿐이지, 사는 모양은 제각기 팍팍할 것이다. 안 그래도 점심에 송추가마골에서 갈비탕을 먹을 때 옆 테이블에서 굽는 고기 냄새가 솔솔 우리 테이블까지 넘어왔다. 고기를 먹어도 괜찮겠느냐는 의견도 나오긴 했지만 우리는 모두 극구 고개를 저어서 갈비탕을 먹자고 했다. 그 말 뒤에 내가 "요즘 힘들어서 안된다."라고 하자 저마다 웃으며 수긍하는 분위기였다. 송추가마골 고기는 먹어본 경험자로서 너무 맛있지만, 가격 또한 만만치 않다. 아쉽지만 월급이 많이 들어오는 어떤 날을 기약하며 갈비탕을 맛있게 먹었다.


모임원 중 한 분이 남편의 전화를 받았다. 낮잠을 재운 아기가 깨어나서 남편이 기다린다고 했다. 시간도 어느새 오후 4시였다. 같이 가기 위해 자리에서 일어났다. 이곳 장흥에서 어떻게 서울로 넘어가야 하나 대중교통을 알아보려 했다. 그러자, 식당까지 차를 몰고 와주신 분이 조심스럽게 우리에게 같이 서울로 가자고 제안을 해주셨다. 미안하고 고마웠다. 이렇게 신세를 져도 되나 싶어서 다음에 뵈면 차라도 한 잔 대접하고 싶었다. 감사함을 흔쾌히 받아들이고 뒷좌석에 탔다. 한 분은 양주 장흥이 본가라 똑타를 불러서 가게 됐고 우리는 손을 흔들어 작별인사를 했다. 서울로 돌아오는 길 역시 차가 막히지 않아서 좋았다. 밥도 먹어서 배도 부르고 달달한 라테로 목도 축이니 잠이 솔솔 왔다. 라디오에서 나지막하게 흘러나오는 남자 DJ의 음성이 나근나근하게 들려왔다. 뒷좌석에 앉은 방장님과 이런저런 얘기를 했다. 방장님은 갓생을 사는 분이었다. 평일에 일도 하면서 헬스 PT도 끊고, 곧 대학원에 진학할 예정이라 했다. 나의 2026년 목표는 오로지 "건강하기"이다. 다른 목표가 있다면 그냥 좋아하는 글을 무슨 글이든 꾸준하게 쓰기이다. 나에게도 작은 버킷리스트가 있으니, 저마다의 속도로 2026년을 채워가자는 생각을 했다.


구파발역에서 내려 우리는 각자의 주거지로 발길을 뗐다. 점심 무렵에 만나 오후 시간을 지나 초저녁까지 같이 있던 시간이 꿈같았다. 모두 같은 권역에 사니 언제든 볼 수 있는 날 또 볼 것이다. 책을 좋아한다는 공통점이 있으니 책을 읽고 또 이야기를 나누게 될 것이다. 오늘의 만남 이후 친구가 별 건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이렇게 같이 밥 먹고 카페 가는 사람들이 친구가 될 수 있는 거지. 그런 시간들이 쌓여서 친구까지 될 수도 있는 일이지. 그러고보니 "친구"를 정의하는 기준이 꽤 낮아졌다. 오늘 만남에 대한 후기를 채팅창에 올렸다. 다른 회원들의 후기를 읽는 내 마음에도 미소가 번졌다. 저마다 카메라 앵글로 담은 오늘의 하루가 하나 둘 게시글로 올라오기 시작했다. 사진을 넘기는 손가락에 경쾌함이 더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