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공간 탐방

쓰기 위해 모입니다

망원동 책방에서 모였던 수요일 저녁의 회상

by 새벽일기

매주 수요일 저녁이 되면 퇴근시간을 평소보다 조금 더 서둘렀다. 몇 분 차이로 글쓰기 모임에 도착하기 전 간단히 요기를 해결할 수 있느냐, 없느냐가 걸린 일이었다. 금강산도 식후경이라 했던가. 회사 정문에서부터 날아가듯 지하철역에 도착해서 2호선에 재빨리 몸을 싣는다. 운 좋으면 신도림역에서부터 앉아서 갈 수 있었다. 6호선으로 갈아타기 위해 합정역에서 하차한다. 망원역까지는 한 정거장이라 이제야 마음이 느긋해진다. 2번 출구로 나와 김밥집에 도착해서 구석 자리에 앉는다. 늘 먹던 야채김밥 한 줄을 먹는다. 셀프 라면기계에 눈길이 머무른다. 어느새 양은냄비에 물을 안치고 있다. 계란 한 알은 서비스. 라면 면발이 꼬들꼬들하게 익어갈 즈음 계란 한 알을 "톡" 터뜨려 넣는다. 노른자가 작은 화산의 용암처럼 울퉁불퉁한 면발 위로 흘러내린다. 노른자와 흰자가 얇은 막 코팅을 입히면 딱 먹기 좋을 때다. 에세이 수업은 두 시간가량 이어진다. 지금 허기를 채우지 않으면 수업 시간 내내 배 속에 사는 오케스트라가 요란한 연주를 시작할 것이다.


오늘의 모임장소인 책방까지 걸어가는 거리에 반려견들을 산책시키는 힙스터들이 많다. 어째서인지 망원동에 사는 젊은 사람들은 여유로워 보인다. 생활이 느긋한 사람들이 이곳에 터를 잡는 것 같다. 틀에 박힌 일상에서 비켜나가는 청춘들. 가령 9시 출근해서 6시 퇴근하는 직장인들이 아닌, 자유로운 예술가, 프리랜서들이 마을을 이루어 사는 동네 같다. 나는 태생적으로 망원동에 어울리는 사람일지 모른다는 생각을 한다. 빈티지옷을 파는 가게들이 곳곳에 있고, 늘어지는 핏의 추리닝을 입고 비니를 눌러쓴 젊은이들이 강아지의 목줄을 잡고 노닌다. 시장에서 과일을 고르고 싶어진다. 허나, 곧 시작할 수업을 위해 눈으로 재빨리 잘 익은 과일들을 훑으며 걸음을 재촉한다.


모임 인원 중에 그나마 내가 회사와 망원과의 거리가 가까운 편이다. 대체로 네 번 중 절반은 먼저 도착해서 책상 배치를 한다. 앉던 데로 앉아도 똑같이 배치하는 일은 스도쿠를 푸는 것만큼 어려운 일이다. 기억력이 갈수록 뒷걸음질을 친다. 틀린 그림 찾기를 하듯, 지난번 배치를 떠올리며 책방의 집기를 떼었다가 붙인다. 혹은 작은 의자를 이쪽에 놨다가 저쪽에다가 두어본다. 조명은 이 자리였던가, 아니 이 자리가 맞나 보다. 선생님 한 분이 요령 있게 책상배치를 핸드폰으로 찍어두는 기지를 발휘했다. 우리는 더듬더듬 사진을 확인하며 책상과 집기를 알맞게 배치한다. 이것은 일종의 놀이와 같다.


일주일간의 회포를 푸는 스몰토크로 인해 오 분 정도 수업시간은 뒤로 밀려난다. 책방에 올 때 선생님들이 사 온 간식거리가 책상 위에 푸짐하게 쌓일 때도 있다. 여행을 다녀와서 초콜릿을 나누는 선생님, 한 입 베어 물면 고소한 단물이 쭉 나오는 찰진 옥수수, "후와후와"라는 망원동 빵집에서 사 온 각종 멜론빵이나 베이글과 같은 먹을거리들이 펼쳐져 있다. 왠지 얻어먹는 일이 빚을 지는 기분이 든다. 게다가 수업 끝나고 있을 뒤풀이에 갈 수 있을지 염려스럽다. 그렇지만 걱정이 무색하게 대체로 다 먹거나, 못 먹은 건 나누어서 싸간다.


각자가 써온 글을 서로가 낭독해 주고 중간중간 작가님은 글의 잘 쓰인 부분과 개선해야 될 부분을 짚어준다. 시험채점을 하는 일이 아니련만, 어쩐지 내 글이 평가받는 일이 오랜만에 시험을 본 것 같은 기분에 가깝다. 나는 문예창작과를 졸업했기에 합평에 익숙하다. 학교 다닐 때는 서로의 글을 신랄하게 평가했다. 어릴 때는 합평이 내 인격을 침해하는 것 같다는 생각을 했다. 수업이 끝난 후엔 서로 알게 모르게 얼굴이 붉으락 푸르락 했던 기억도 있다. 그렇지만 지금 내가 쓰는 글은 나라는 사람의 일부이지만, 나의 전부는 아니다. 에세이에는 때론 진솔한 일상이 있지만, 연출된 일상도 있다. 칼날을 잘 벼르듯이 문장을 잘 벼려서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는 일이 쉽지 않다. 우리는 일기를 쓰기 위해 모이는 것이 아니다. 전체의 일부인 한 조각을 내어서 보여준 것 같다. 거울에 깨진 조각을 들어 서로의 신체 한 부분을 비춰보는 것 같다.



어떤 날은 수업이 끝난 후 이자카야에서 스시와 나가사키우동을 먹었다. 사케가 목을 타고 흘러내릴 때 뜨거운 열기가 목구멍을 데웠다. 차가운 기린 생맥주로 열심히 잔을 부딪쳤다. 저마다의 말들이 오가고 서로의 접시에 먹을 것들을 덜어주었다. 도토리묵과 전어, 때론 치즈감자전. 어떤 주말 아침엔 브런치를 먹기 위해 모였었다. 수란을 까는 법을 일러주던 기억들. 메뉴판의 목록들이 늘어감에 따라 쓰기의 말들이 이어지고, 추억이 쌓여갔다.


이 모든 일들이 지금은 '회상'으로 남았다. 나는 이제 수요일의 모임에 나가지 않는다. 글을 쓰는 일이 더 고독해야 한다는 생각이 들었다. 작가도 아닌 내가 이런 말을 하는 것이 유난스럽다. 같이 하고 나면 시끌벅적한 기운이 응고된 혈액처럼 끈적하게 남는 것 같았다. 그러고 나면 집에 들어와서 조금 더 외롭다는 생각이 들었다. 몸이 잘근잘근 아파왔다. A4용지에 그날 첨삭된 글을 들여다보고 수정하는 밤을 보낼수록 머리가 얽혀왔다. 글이라는 것을 조금 더 잘 써보고 싶은데 그 방법을 스스로 더 찾아서 헤매게 됐다.


내 글에서 반복되는 습관 같은 것들이 거슬렸다. 어렸을 때부터 글을 읽고 쓰는 것을 놀이로 삼았다. 요즘은 내가 진짜 창작하고 싶은 글이 무엇인가 하는 생각에 골몰한다. 같이 쓰기 위해 모였던 망원동 저녁의 모임은 사람이 그리워 그 자리에 나를 더욱 앉게 했다. 다만 쓰기 위해 모였던 시간에서 나아가 쓰기 위해 혼자인 시간을 갈망하게 된 밤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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