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공간 탐방

피아노조율사의 맛집 탐방기 ⌜국수의 맛 ⌟을 읽고

길다란 국수 면발처럼 삶도 인생도 쭉 뻗어나가길.

by 새벽일기


삶에 난제가 닥칠 때는 서점으로 향한다. 서점 매대에 올라와 있는 책들, 서가 곳곳에 숨어들어 독자를 기다리는 책들의 향연. 나는 한상 가득 차려진 음식을 바라보는 마음으로 책들 사이를 누빈다. 배에서 꼬르륵 소리가 날 때는 식당으로, 정신이 허기질 때는 서점으로.


2018년 무렵 지금 다니던 회사를 계속 다닐까 말까 누구나 꿈과 현실 사이에서 고민하는 시기를 나 역시 겪었다. 답을 찾을 수 있을까 방황하다가 서점을 향해 발길을 틀었고, 그때 책 서가를 쭉 훑다가 눈에 들어온 책이 있었다. 피아노와 중국집이라는 의외의 조합에 손이 절로 <중국집>이라는 책에 머물렀다.



그리하여 읽게 된 "피아노 조율사의 중식 노포 탐방기"


<중국집> 단 세 글자인 심플한 책 제목에 끌려, 또 피아노조율사라는 직업적 호기심에 이끌려 서가 앞에 서서 잠깐의 독서를 즐겼다. 짜장면, 탕수육, 짬뽕, 그리고 피아노조율사. 오랫동안 이어온 장인의 기술 속에는 노동의 고됨을 토로하는 애환만 담긴 것이 아니었다. 조율 의뢰가 오면 전국 방방곡곡 어디든 달려가는 피아노조율사. 그리고 한두 시간 집중해서 피아노 조율을 끝낸 그에게는 비장의 무기처럼 비밀수첩이 있다. 비밀수첩에는 그가 입수한 노포의 정보가 깨알 같은 글씨로 적혀있다. 피아노 덮개(액션)를 열면 현들이 마치 면발처럼 보이는 마법, 그 허기를 달래줄 비법들이 피아노조율사의 수첩 안에 빼곡히 적혀있는 것이다.


어느새 책에 푹 빠져서 읽다 보니 직장을 오래 다니려면 마음속에 "비밀수첩" 하나씩은 품고 있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그것이 먹는 것이든, 퇴근 후 취미생활이 되든, 연애가 됐든. 피아노조율사의 담담한 노포 탐방기에서 시작한 독서가 어느새 <경양식집에서>를 지나 이번 2026년 신작인 <국수의 맛>까지 이르렀다. 공통점은 모두 우리가 흔히 먹는 친숙한 음식들이다.



겨울이란 날씨가 그렇듯 김이 모락 나는 국물 한번 들이켜면 몸속까지 뜨뜻한 기운으로 차오를 것만 같다. 그러기엔 국수가 제격이다. 국수의 종류도 다양해서 입맛대로 골라 먹을 수가 있고, 가격 또한 요즘 물가 오르는 것에 비견하면 서민의 주머니 사정을 헤아려 주는 착한 가격이다. 이전 <중국집>과 <경양식집에서>는 물론 신작 <국수의 맛> 책 또한 읽는 내내 눈이 즐겁다. 단순히 맛집 정보를 소개하는 정도가 아닌, 맛 칼럼니스트의 새로운 지평을 열어준다.


<국수의 맛>에서 소개하는 경산남도 의령의 온소바_[다시 식당]


그리고 <국수의 맛>에는 사람 냄새 물씬 나는 이야기가 담겨있다. 피아노조율을 하며 일어나는 고객과의 소소한 에피소드, 딸과 함께 부산여행을 떠난 곳에서 한치메밀쟁반을 먹게 되고 딸의 입맛을 다시 한번 발견하게 되는 일상. 그리고 어느덧 세월이 흘러 딸이 대전에 있는 간호대학에 입학하게 되는 게 대견하면서도 아버지로서 품게 되는 애정 어린 걱정들. 28년 동안 이어져 온 피아노조율을 하며 이어진 일상이 여전히 이번 책에서도 따뜻한 시선으로 녹아있다. 그것은 자극적인 인스턴트식품에서 맛볼 수 없는 담담하면서도 꾸준하며, 우리 곁에 늘 머무는 면발과 함께 잘 어우러진 육수의 맛과 닮아있다.




특히 만두와 잘 어울리는 칼국수 한 그릇이 너무 먹고 싶어지게 하는 책이다. 읽는 내내 작가가 권하는 레시피대로 만두 한 개를 칼국수 국물에 촉촉하게 적셔서 후루룩 먹고 싶었다. 여기에 칼국수와 잘 어울리는 김치, 섞박지의 조합은 누구라도 반하지 않을 도리가 없다. 후한 한국의 인심답게, 칼국수 한 그릇에도 따라오는 반찬들이 많다. 물김치, 겉절이, 섞박지 등등. 단출한 한 그릇으로 떨어지는 국수 한 그릇에 따라오는 반찬의 가짓수는 왜 이리 다양한지. 거기다 기상천외하게 아삭한 콩나물무침을 뽕잎칼국수에 넣어서 먹는 경상북도 상주의 [뽕잎 칼국수]를 소개하는 부분에선 상주까지 달려가고 싶을 정도로 그 맛에 도전해보고 싶었다. 양념장을 넣어서 비벼먹기도 하고, 예상외의 밑반찬을 푹 담가서 먹기도 하는 국수를 즐기며 먹는 법을 자세하게 소개한 부분이 재미있었다.



내 인생의 소울푸드는 무얼까, 이 책을 읽는 내내 생각을 해봤다. 지구가 내일 멸망한다면 오늘 내가 당장 먹고 싶은 음식은? 이런 재밌는 생각까지 연상하게 하는 <국수의 맛> 국숫집 탐방 이야기들. 어째서 국수여야 했을까. 피아노조율사는 먼 거리 여행도 마다하지 않고 국숫집을 찾아 여행을 떠나기도 하고, 때론 먼 곳의 출장지도 기꺼이 감수한다. 일을 일이라고 생각하기보단 국수를 먹으러 가는 김에 피아노조율도 하는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


또 피아노조율사가 고객을 대하는 태도와 담백한 애티튜드 또한 인상 깊었다. 사람들은 피아노조율사와의 오래전 이어진 인연의 끈을 놓지 않고 다시 그를 찾아서 피아노 조율을 의뢰한다. 이것만 봐도 그가 얼마나 이 분야에서 신뢰받는 오래된 장인이자 숙련된 기술인인지 가늠할 수 있었다. 또 이제 그에게도 팬이 생겨서 방송을 보고 연락을 해오거나, 그의 지난 책들인 <중국집>, <경양식집에서>를 재미있게 읽고 독자가 돼서 피아노 조율을 의뢰한 독자들과의 에피소드도 인상이 깊었다. 나도 그의 전작 두 권을 재미있게 읽었고, 또 어찌어찌 검색한 끝에 퍄노조율사의 네이버 블로그까지 이웃추가를 해서 틈틈이 그의 새로운 일상을 보고 있는지라 반가운 마음이 들었다. 아직까지 어렸을 때 갖고 있던 영창피아노를 가지고 있다면 팬심으로라도 피아노 조율을 의뢰했을 텐데 아쉬운 마음도 있었다.


이 책에서 소개한 국수 중 제일 인상 깊었던 국수는 [팥칼국수]다. 내게도 팥칼국수에 대한 오랜 추억이 연상되서였다. 가족들과 소소하게 동네산책을 마치고 팥칼국수를 먹으러 간 기억. 고소한 팥칼국수 국물에 설탕을 한 스푼 섞어 휘휘 저어서 먹었다. 그리고 같이 나온 보리밥과 열무국수는 또 얼마나 맛있고. 오랜 기억이 스멀스멀 떠올랐다. 소중한 가족과의 추억들.


시간여행을 가듯 노포를 찾아 떠나는 피아노조율사의 일상이 근사하다. 일을 하고 가족과의 일상을 보내고, 맛있는 음식을 찾아 떠나는 식도락 여행. 그거면 쭉쭉 뽑힌 국수 면발처럼 우리 인생도 삶도 어떤 역경 속에서도 끊기지 않고 후루룩 시간을 뛰어넘어가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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