집밥을 먹고 싶을 때마다 들르는 곳
고기와 생선을 집에서 굽지 않는다. 특히 생선을 집에서 굽는 순간 아무리 전기레인지의 후앙(후드)을 가동한다 해도 온 집에 비린내가 오랜 시간 배어있다. 사방팔방 튀는 기름을 키친타월과 물휴지로 한참 닦는 경험을 하다 보면 생선은 밖에서 사 먹을 거란 다짐이 절로 나온다. 옷방까지 흘러드는 연기는 페브리즈를 몇 번이나 뿌려도 생선의 흔적을 지워내기 어렵다. 몇 년째 들르는 생선구이집이 있다. 연탄으로 생선을 구워서 내주는 식당이다.
생선 굽는 공간이 별도로 분리되어 있는 터라 식사를 마치고 나와도 옷에 냄새가 배지 않는다. 옷에 냄새가 배는 식당은 머리카락에까지 냄새가 흡수돼서 집에 들어오는 즉시 샤워를 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이 없는 식당이 불광동에 있다.
동네 산책을 자주 나간다. 어떤 날은 오른쪽으로 돌고, 그 방면이 지루하면 다시 왼쪽으로 동네 한두 바퀴를 돈다. 그러면서 오래된 식당을 구경하고, 다음에 이곳에 와서 먹어야지 하는 맛집 탐방에 설렌다. 무언가를 먹고사는 일이 사는 일과 직결되어 있다. 가급적 인스턴트식품을 멀리하고 싶어진다.
생선 중에선 고등어를 제일 좋아한다. 조기와 전어 같은 생선은 맛은 좋으나 가시를 발라내기 귀찮다. 동태찌개에 들어가는 동태는 가시는 발라먹기 좋아도 살코기의 맛이 다소 심심하다. 고등어는 굽기에 따라 살코기가 연하기도 하고, 겉은 바삭하니 튀김을 먹는 것처럼 식감이 다채롭다. 오래된 묵은지를 넣고 뚝배기에 고등어를 같이 끓여내면 밥도둑이 따로 없는 묵은지고등어찜이 된다. 고등어살을 발라내 길게 세로로 찢은 묵은지를 흰밥 위에 올려 먹으면 한 공기 반은 뚝딱이다. 나는 이 연탄구이 생선식당을 찾을 적마다 공사장에서 일을 마친 인부처럼 밥을 먹었다. 나는 워낙 밥을 좋아한다. 어렸을 때부터 엄마의 집밥을 꾸준히 받아온 덕에 집밥을 해주는 사람만큼 고마운 사람이 없다. 그 노고에 보답을 하듯 내 돈으로 사 먹어도 밥을 싹싹 긁어서 잘도 먹는다. 혼밥도 즐기지만, 앞에 식도락 산책을 함께 해주는 친구가 있다면 밥맛은 배로 단맛을 더하는 것 같다.
화려함은 없지만, 오래 된 동네식당만의 온기가 있다. 생선요리만을 취급하는 단일한 메뉴판이 세월의 흐름을 보여주듯 반질반질하다. 주로 연세 많은 어르신들이 오는지라 동네 식당만의 푸근함이 느껴진다. 집밥을 그리워한 이들이 혼자, 또는 삼삼오오 모여서 각종 생선구이를 찢어 쌀밥 위에 올려두는 정경이 익숙하다. 그 속엔 우리 서민들의 생활상과 외식의 현장이 고루 담겨있다.
고등어구이와 김치찜을 시켜서 기다리는 동안 밑반찬이 나온다. 생선구이가 메인인데, 밑반찬이 정갈하고 가짓수가 적지 않다. 두부, 마른김, 배추김치, 나물, 무생채 등 생선과 같이 곁들여 먹기 좋은 찬들이 기다리는 동안 입을 심심하지 않게 해 준다. 이 반찬들로만 반 공기를 금세 먹어치운다. 밥 한 공기는 생선을 시키면 기본으로 주지만, 한 공기는 더 추가해서 시키면 된다. 이미 나는 고된 노동을 끝낸 인부처럼 밥 반 공기를 꿀떡하고 삼킨다. 마른김에 김이 모락 나는 흰밥을 올려 반찬을 토핑으로 올린 후 맛을 음미한다. 한국식 애피타이저다.
국은 때에 따라 다르게 나오기도 한다. 이날은 김칫국이 나왔지만, 더운 여름날엔 오이냉국이 나온다.
어떤 때는 미역국이 나와서 밥 반 공기를 먼저 말아먹기도 한다. 같이 간 친구는 소주 한 병을 시켰다.
생선을 안주 삼아서 낮술을 즐길 요량인가 보다.
마침내 기다리던 고등어김치찜과 고등어구이가 나왔다. 자작자작한 김치찜 국물에 밥을 비벼서 먹는다.
칼칼한 국물이 영하로 내려간 날씨에 냉한 몸을 따뜻하게 덥혀준다. 역시 밥이 보약이라 했던가.
쌀밥을 먹어야 힘이 난다. 서양음식도 좋지만 단연코 한국음식만큼 기운을 내게 해주진 않는다.
식사를 마친 후에도 더부룩함이 금세 가라앉아서 한식이 좋다.
잘 발라낸 생선살을 간장 소스에 찍어 김을 싸 먹는다. 겨울철 보양식이 되어주는 고등어요리다.
이날은 올겨울 들어 추위가 강세를 부린 날이었다. 신년이 주는 기대감에 들떠 너무 거한 음식을 먹기보단 간소한 한식을 먹고 싶었다. 한 시간 가량의 산책은 몸의 가뿐함과 동시에 허기를 불러왔다. 바삭하게 잘 구운 고등어구이와 묵은지김치찜은 든든하게 속을 채워주었다. 늘 가던 곳을 가는 익숙함은 새로울 것은 없지만 편안함을 불러일으킨다. 올 한해도 먹던 음식을 먹고, 가던 식당을 가고, 산책을 하면서 한 해를 보낼 계획이다.
연탄불처럼 은근하게 데워지는 한 해이길 바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