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거진 공간 탐방

[# 1]불광동의 은둔 공간 : 프리롤카페에서의 오후

풍경과 카페가 잘 어우러진 공간

by 새벽일기


등산객들이 삼삼오오 모여드는 불광역 2번 출구 앞, 나만 오래 알고 싶은 카페가 있다. 1층의 큰 통창이 시원하게 카페의 내부를 보여주고, 심플한 간판이 눈에 띈다. 북한산을 등반하기 위해 모인 인파가 카페 앞까지 수선스럽게 진을 치고 있다. 조용한 공간을 찾는 나에게 등산객들이 많은 카페는 부담이 된다. 등반을 마치고 온 사람들에게 나는 시큼한 막걸리 냄새와 땀냄새는 유독 코끝에 오래도록 내려앉는다. 이런 걱정이 무색하게 유리창 앞에는 "음주한 손님 받지 않습니다."라는 안내문이 붙어있다. 카페의 외관에서 풍기는 분위기와 커피를 내리는 바리스타들의 느릿한 움직임이 잘 어울리는 공간이다. 문을 열고 안으로 들어간다. 나선형의 긴 계단이 천장을 향해 뻗어있다. 어릴 적 읽었던 그림책 동화 재크와 콩나무가 떠오르는 계단이다.




2층으로 올라가는 나선형계단




카운터 위에 있는 유리 장식장 안에는 휘낭시에와 에그타르트가 옹기종기 놓여있다. 배가 고프면 베이커리류를 같이 주문할 텐데, 내가 주문하는 메뉴는 늘 디카페인 커피류다. 차분하게 집중하고 싶을 때 찾아오는 공간인만큼 배를 채우는 것보다 분위기를 온전히 누리고 싶다.


1층에는 기다란 테이블이 크게 놓여 있어서 넓게 자리를 차지하고 작업을 하기에 알맞다. 내가 이 카페를 찾은 목적은 늘 2층 공간의 운치를 누리기 위해서다. 천장을 뚫고 2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계단을 오르다 보면 1층이 주는 개방감과는 다른 공간이 나타날 것 같은 기대감이 생긴다.


2층 공간은 조도가 낮아서 낮에도 자연광만이 유일하게 공간을 밝힌다. 형광등 불빛을 좋아하지 않는 나는 어둑한 공간에서 아늑함을 느낀다. 은둔하고 싶어서 찾아드는 공간인만큼 옆자리에 누가 있는지 의식하고 싶지 않다. 각자가 자신의 작업에 몰두해 있는지라 볼일은 더구나 없다. 날이 저물어 책조차 읽기 힘들 땐 테이블 위의 조명 밝기를 조절한다.



제일 어두운 구석 공간에선 세상에 오로지 둘만 존재하는 것처럼 커플이 자리를 잡고 앉아 밀어를 나눈다. 어깨와 머리를 맞댄 연인들. 요란스럽지 않게 작은 사랑의 언어와 유희를 나누는 연인들.


프리롤카페가 생기기 전에 이곳 2층 공간은 독일식 소시지를 파는 알바트로스 맥주집이 있었다. 언제 한번 시간을 내서 옛날 정취를 느낄 수 있는 호프집에 가야겠다 생각한 순간 호프집은 사라지고 말았다. 얼마간의 내부 공사 기간이 끝난 곳엔 카페가 자리를 잡았다. 평소에 나는 프랜차이즈 커피숍에 자주 가는 편이지만, 조용한 공간을 찾고 싶을 땐 개인 커피숍을 간다. 일률적인 인테리어의 프랜차이즈 커피숍과는 다르게 개인 커피숍에는 카페 주인장의 취향이 보여서 재미있다.


이 프리롤카페의 정수는 2층 창문이다. 카페 창이 바깥 외부를 향해 돌출된 구조를 띄고 있다. 이 정사각형 창문이 바깥의 풍경을 입체적이고 더 넓게 보여주는 효과가 있다. 그 반대편 창은 가로로 넓은 직사각형 모양의 창문이다. 불광역 뒷골목의 풍경이지만, 전면창과 후면창이 주는 대비 또한 색다른 반전을 보여준다.





프리롤카페 2층 공간 및 외부 정경. 모던한 인테리어를 밝히는 조명 불빛.



2층 창으로 스며드는 자연광, 나만의 오후




둘이 속삭이며 대화를 나누는 여자들. 노트북을 타닥타닥 두들기며 작업에 몰두한 사람. 이어폰을 끼고 유튜브 영상을 보는 사람. 나는 가져온 공책을 꺼내서 필사를 한다. 오래전부터 필사는 나의 오랜 취미이자 명상이었다. 한때는 일부러 빈티지연필을 구입해서 뭉툭하게 닳은 연필심을 새로 깎아서 필사를 했다. 느린 것의 미학. 시간이 되면 일부러 돌아가는 선택을 하곤 한다.


연말이 되면 박민규의 소설 <죽은 왕녀를 위한 파반느>를 다시 읽는다. 주인공을 비롯한 그의 연인이었던 한 여자, 그리고 요한이 늘 찾던 호프집의 간판은 “hof”가 아닌 희망으로 불을 밝히는 "hope"이다. 그곳에 가면 새로운 희망이 찾아질 것도 같고. 맥주를 주문하려고 뒤를 돌아보면 낡은 네온사인 간판엔 "beer"가 아닌 "bear"가 적혀있다.


"맥주 한 잔이요~"


주문을 하면 아기곰이 500cc 맥주를 높이 들고 자리로 찾아올 것만 같은, 그런 느낌이 들게 하는 소설.




프리롤카페의 디카페인 카페라떼와 필사공책, 오래도록 써온 제트스트림 펜



집 가까이에 이런 카페가 있다는 건 다행스러운 일이다. 차려입지 않고도 언제든 배낭을 둘러매고 스웻팬츠에 후드티 복장으로 간편하게 찾아올 수 있는 공간. 나만 알고 싶은 은평구 카페다.


“다음 공간 탐방에서는 또 어떤 장소와 마주할까?”



카페 입구를 맞아주는 커다란 트리. 감각적인 선반형 책장과 조명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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