말차는 풀 맛이야. 말차는 그저 풀맛이라고. 그래! 말차는 풀맛이고! 나는 소(cow)다! ― 정도와 뜻이 통하는 중독성 강한 챈트가 최근 영미권에서 밈으로 화제가 되어 인터넷을 휩쓸었습니다. 너도나도 자신이 소라고 외치는 이 예상치 못한 방식의 말차 바이럴 사례는, 마케터에게 새삼 ‘말차가 맛없는 음식’이라는 사실을 더 크게 느끼게 합니다.
누군가에겐 도무지 맛이 없는 말차. 또 어떤 누군가에겐 중독적으로 찬양할 만큼 매력적인 말차. 이 극단적인 평판의 양면성은 많은 사람들의 공감을 산 것 같습니다. 말차 마케터로 일하다 보면, 근래 폭발하는 말차 트렌드에 대해 “말차는 사실 맛이 없는데, 사람들은 이것이 트렌드라서, 초록 말차 한 잔을 손에 드는 것이 패션이된 지경이라서 마신다”는 전문가와 비전문가들의 분석을 자주 듣습니다. 특히 말차의 맛이 근본적으로 서양, 특히 미국인의 기호에 맞기 어렵다는 이야기도요.
어떤 의견을 가지고 계셔도 괜찮습니다. 말차가 맛이 없다고 해도 차는 크게 놀라지 않으니까요. 민트초코칩 논란처럼, 차맛에 대한 호불호의 역사도 길고 지난합니다. 안성재 셰프가 “잘 만든 민초는 맛있다”라고 말한 대목이 떠오르기도 하지만, 말차를 제대로 만들기만 하면 놀라울 만큼 맛있다고 주장할 전문가는 아마 없을 겁니다.
오히려, 차를 사랑하는 사람에게 "차가 맛있나요?"라고 물어보면 그들을 당황시킬 수 있습니다. "제 눈에는 잘생겼어요" 같은 "제 입에는 맛있어요"로 회피할 수 없어서 뜸을 들일지도 모릅니다. 차를 매우 즐겨 마시는 사람들도, 차가 '맛있다'는 이야기는 쉽사리 못합니다. <애프터 양>이라는 영화에선 찻집을 운영하는 한 가정의 AI 아들이 이 같은 질문을 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인간, 차를 왜 좋아합니까. 차가 맛있습니까?라는 이 질문을 받은 아비는 고민이 된다는 듯 뜸을 들이다가, 추상적인 개념들로 '차의 맛'을 설명하게 됩니다. 그가 뭐라고 했는지는 꼭 후술 하겠습니다.
차가 맛이 없다는 의견은 역사 속에도 있습니다. 16세기말 중국으로 간 선교사 마테오 리치는 차를 보고 “잎으로 색을 낸 물”이라 했습니다. 당시 유럽인들은 차를 기호음료보단 어떤 동양의 신비로운 약물로 인식했는데, 맛없는 물을 물 대신 마셔대는 데엔 그런 효엄한 이유라도 있겠거니, 싶었던 것 같습니다.
차 마케터는 차 제품에 대한 문안과 콘텐츠를 기획하는 일을 합니다. 먹고 마시는 것을 팔고 싶을 땐 그저 맛있다고 설득하면 되는 건데, 차 분야에선 그게 참 어렵고, 또 그것만으로 충분하지 않다고 느낄 때가 많습니다. 회의가 너무 길어질때면, 팀장님이 책상을 탁! 치며, 이건 도저히 너무 복잡하다는 표정으로 "F&B잖아. 복잡할 거 없어. 딱 보면, 막 먹고 싶으면, 그게 다지!"라고 외치는 것으로 회의가 끝납니다. 그런 간단한 결론은 속 시원하지 못합니다. 차가 맛있다고 하는 것보다 맛이 없다고 하는 것이 온라인 바이럴엔 더 가능성 높음이 증명된 최근 사례가 도움이 되지 않습니다.
하여 맛과 가까운 개념인 아로마(차향)에 초점을 맞춰 '향이 좋은 차'로 홍보하기도, 혹은 그조차도 여의치 않을 땐 역사 이야기를 할 때도 있습니다. 역사 속 어느 다인이 즐겨 마셨던 차로부터 '영감 받은' '기념하는' 차 같은 제품이 그런 것입니다. 그런 제품을 보게 되신다면, 정확하게 뭐가 역사 속 차와 같다는 거냐, 우리 선조가 직접 제다해 먹었던 차를 개발팀이 먹어보기라도 한 거냐, 묻지 마시고 그냥 넘어가주십시오.
그렇다고 차맛을 소홀히 하는 것은 절대 아닙니다. 다양한 연령층의 차 고관여자들을 관리하고, 자주 소통하며 의견을 청취함으로써 제품 기호도를 측정하고 언제나 고객 스탠더드에 맞는 차맛을 자신 있게 유지합니다. 그들을 만나서 여러 가지 질문을 할 기회가 생기는 편인데, 차를 즐겨 마신다는 젊은 층에게 차를 왜 마시냐고 물어보면, 대부분 부모님이 집에서 차를 많이 드셨다는 이야기를 합니다. 언젠간 한번 친구의 추천으로 마셔봤는데, 맛있어서 마시게 되었다는 증언은 나온 적이 없습니다, 한 번도. 이 부분운 술이나 커피와 확연히 다른 지점입니다.
차의 '맛'을 차를 마시는 '이유'로 정의해 본다면, 내가 속해있는 문화이기 때문에 마신다는 말이, 가풍, 내지는 유산이라는 말이, 차의 '맛'을 가장 잘 설명하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차를 마시지 않는 사람들도 누군가를 위해선 고급 차를 선물합니다. 오설록이 선물 시장에서 엄청나게 성장한 배경 중 하나라고 생각합니다. 차가 맛있다는 생각에 설득되지 않은 사람들 조차, 가까운 누군가를 위해선 제공하고 싶은 속성이 차에게는 있는 것 같습니다. 누군가를 향한 다정한 마음이, 차를 살 이유가 됩니다.
'차'라는 단어에 어울리는 관형어가 아닌 것 같은 '맛있다'. ‘사랑은 맛있다'보다 말이 안 되는 것 같은 '차가 맛있다'. 차의 맛과 가장 가까운 관형어는 '우리' 아닐까요. 차를 '우리'기 때문은 아니고요, 그것을 노린 것은 맞는 것 같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