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땅의 물결

by 돌강아지

봉숭아 밭에서 뱀을 봤다.

봉숭아를 심으면 뱀이 안 온다고 한 것 같은데.


손과 발이 없어도 자유로운 뱀.

손과 발이 없어서 자유로운 뱀.


"뱀은 물결 같아"

"응. 진짜."


언니가 뱀이 물결 같다고 했다.


책 정리를 하다가 옛날 책갈피를 발견했다.

동네 서점에서 책을 사면 하나씩 끼워주던 책갈피.

자연 사진이나 어딘가 싱거운 그림 위에

좋은 구절이 적혀 있었다.

막 예쁘지는 않았지만 서점에서 받는 책갈피를 좋아했다.


책을 사면 계산대의 플라스틱 통에 들어있는 책갈피를 아무거나 골라 책 사이에 끼워줬다.

서점 이름이 인쇄된 부스럭거리고 빳빳한

비닐 봉투에 담긴 책을 들고 의자에 앉아

버스를 기다리다 책갈피를 뽑아보았다.

뒤를 돌려보면 서점 이름이 적혀 있었다.



안경을 썼던 서점 언니의 얼굴까지 기억난다.

keyword
작가의 이전글귀뚜라미 우는 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