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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굴이 잘 빨개지는 마을의 이장님

by 돌강아지

언젠가 시장에서 감을 샀다.

감 파는 언니가 봉지에 감을 정말 많이 담아줬다.


그 언니의 시어머니인지 어머니인지 모르겠는데

옆에서 할머니가 내게 감 봉지를 건네주는 언니에게 이렇게 말했다.

"얘 감을 너무 많이 담았다"

그랬더니 언니의 얼굴이 빨개지면서

"저번에도 사가셨던 분이라서요"라고 했다.

할머니가 전혀 혼을 낸 게 아니었는데 언니의 얼굴이 빨개졌다.


오랜만에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을 봤다.

노발대발하며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봤어도

작은 일에 얼굴이 빨개지는 사람은 정말 오랜만에 봤다.


저번에 왔었다고 감을 대책 없이 많이 넣어주고,

감을 너무 많이 넣었다고 하니까 얼굴이 빨개지던

서툰 언니가 귀여웠다.


아무래도 나는 얼굴이 잘 빨개지는 사람이 편하고 좋다.

예쁘네요 칭찬하면 얼굴이 빨개지고

먼저 인사를 건네면 얼굴이 빨개지고

아무렇지 않은 일들이 별일이 되는 그런 사람들이 좋다.

조금만 건드려도 톡 하고 반응하는 사람이 좋다.


얼굴이 잘 빨개지는 사람들이 모여 사는 마을의

이장님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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