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벌초

by 돌강아지

얼마 전에 엄마랑 언니랑 셋이

아빠 산소를 벌초하고 왔다.

아빠 산소 옆에 큰아빠 산소도 있어서 같이 벌초를 했다.


어디가 산소인지 모를 정도로 풀이 자라 있었다.

큰아빠 산소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 있었다.

칡덩굴도 많고 머위도 있고 억새도 있었다.

떨어지기 전에 끝낸다고 빨리했더니 손목이랑

허리가 많이 아팠다.

엄청나게 많은 풀을 베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지구가 사막이 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벌초하는 동안 슬플 겨를이 없으라고 풀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자라는 것은 아닐까'


오래전 처음 아빠 산소를 벌초할 때는 하다 보니까

해가 져서 폰 후레쉬를 켜고 벌초를 하기도 했었다.

아빠랑 큰아빠가 보고 있었다면 한심해서 웃었을 거다.

아이고 저것들이 무슨 벌초를 후레쉬를 켜고 하나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니까 이제는 우울하고 슬펐던 일도

웃어넘길 줄 알게 되었다.

시간은 약이 되고 사람은 경험보다 커지나 보다.


이번에는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끝냈다.

비 소식도 있었는데 딱 다 끝내니까 비가 내렸다.

아빠가 도와준 것 같았다.


풀을 베면서 낫에 다치지도 않았고

벌이나 뱀도 만나지 않았다.

다 아빠가 도와준 것 같다.




어릴 때 아빠가 벌초하면 따라갔었다.

언니랑 나는 망개 열매를 구경하거나 솔방울 같은 것을

주워 들고 놀았다.

솔가지를 꺾어서 아빠에게 달려드는 모기를 쫓아주기도 했지만 금방 그만두곤 했다.


큰아빠도 삼촌도 다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 삼촌 산소를 모두 아빠 혼자서 했다.

많은 산소를 혼자서 벌초하느라 몸도 힘들었겠지만

그보다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떠올려보면 아빠와의 기억이 전생처럼 느껴진다.

아빠 산소에 온다고 아빠가 생각나는 게 아니라,

계절이 바뀌고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면

아빠 생각이 난다.


사람은 태어나긴 뭐하러 태어나고

죽기는 또 뭐하러 죽을까.


긴 옷을 입어서 다른 데는 안 물렸는데

얼굴만 모기에 물렸다.

해마다 사촌 오빠들이 벌초를 해줬었는데 정말 고맙다.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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