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뉴
brunch
벌초
by
돌강아지
Dec 22. 2021
얼마 전에 엄마랑 언니랑 셋이
아빠 산소를
벌초하고 왔다.
아빠 산소 옆에 큰아빠 산소도 있어서 같이 벌초를 했다
.
어디가 산소인지 모를
정도로 풀이 자라 있었다.
큰아빠 산소는 대나무가 많이
자라 있었다.
칡덩굴도
많고 머위도 있고 억새도 있었다.
해
떨어지기 전에 끝낸다고 빨리했더니 손목이랑
허리가 많이 아팠다
.
엄청나게 많은 풀을 베면서 이런 생각이 들었다
.
'지구가 사막이 될 일은 절대
없을 거야'
'벌초하는 동안
슬플 겨를이
없으라고 풀이 이렇게 어마어마하게 자라는 것은 아닐까'
오래전 처음 아빠 산소를 벌초할 때는
하다 보니까
해가 져서 폰 후레쉬를
켜고 벌초를 하기도 했었다.
아빠랑 큰아빠가 보고 있었다면 한심해서
웃었을 거다.
아이고 저것들이 무슨 벌초를 후레쉬를
켜고 하나
하고.
시간이 많이 지나니까 이제는 우울하고 슬펐던 일도
웃어넘길 줄 알게 되었다
.
시간은
약이 되고 사람은 경험보다 커지나 보다.
이번에는 다행히
해가
지기 전에 끝냈다
.
비 소식
도 있었는데 딱 다 끝내니까 비가 내렸다.
아빠가 도와준 것 같았다
.
풀을 베면서 낫에 다치지도 않았고
벌이나 뱀도 만나지 않았다
.
다 아빠가 도와준 것 같다
.
어릴 때 아빠가 벌초하면 따라갔었다.
언니랑 나는
망개 열매를 구경하거나 솔방울 같
은 것을
주워 들
고 놀았다.
솔가지를 꺾어서 아빠에게 달려드는 모기를 쫓아주기도 했지만 금방 그만두곤 했다
.
큰아빠도 삼촌도 다 일찍 돌아가셔서 할머니 할아버지, 큰아빠, 삼촌 산소를 모두 아빠 혼자서 했다
.
많은 산소를 혼자서
벌초하느라 몸도 힘들었겠지만
그보다 마음이 얼마나 힘들었을까 싶다
.
떠올려보면 아빠와의 기억이 전생처럼 느껴진다
.
아빠 산소에 온다고 아빠가
생각나는 게 아니라,
계절이 바뀌고 공기의 온도가 달라지면
아빠 생각이 난다
.
사람은 태어나긴 뭐하러 태어나고
죽기는 또 뭐하러 죽을까
.
긴 옷을 입어서 다른 데는 안 물렸는데
얼굴만 모기에 물렸다
.
해마다 사촌 오빠들이 벌초를 해줬었는데 정말 고맙다
.
내년에는 더 잘할 수 있을 거다.
keyword
벌초
산소
추석
2
댓글
댓글
0
작성된 댓글이 없습니다.
작가에게 첫 번째 댓글을 남겨주세요!
새 댓글을 쓸 수 없는 글입니다.
돌강아지
'노지월동' 매해 겨울을 나고 봄이면 다시 꽃이 피는 다년생의 그림일기
구독자
17
제안하기
구독
작가의 이전글
얼굴이 잘 빨개지는 마을의 이장님
지난 추석 이야기
작가의 다음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