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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궁금한 민지 Oct 06. 2024

작가의 작품 혹은 인생에서 (나는) 무엇을 보는가

존 배《Shared Destines》전시를 보고 

존 배 작가의 《Shared Destines》전을 봤다. 달걀을 닮은 타원형 조형작품에 이끌린 때문이었다. 갤러리 지하에 자리한 영상에서는 바흐의 Concerto in D Minor, BWV 974 - 2악장이 흘러나왔다. 영상은 그가 프랫 인스티튜트에서 보낸 꿈같은 학부 시절을 지나 교육사업을 하던 부모님의 영향을 받던 때의 회상으로 이어진다. 


작가의 부모는 한국전쟁 발발 이후 구호활동을 위해 귀국한다. 교육사업에 전념하며 학생들에게 농사를 짓는 법을 가르쳤다. 17년 만에 한국으로 귀국한 작가는 ‘나도 농사를 해 봐야겠다’며 팔을 걷어붙인다. 그런 그를 보던 한 군인은 말한다. 우리가 당신보다  그것(농사)을 잘한다고, 그리고 당신은 우리가 못하는 일을 해낼 수 있다고. 자신도 부모처럼 세상에 공헌하는 일을 해야 할지 고민하던 그는 다시금 혼란을 느꼈지만, 이내 ‘일종의 허가를 받은 기분’을 느낀다. 


그의 작품을 본다. 철을 용접해 만든 작품은 선이 만나 접점을 만들고 접점이 다시 하나의 면에서 나아가 입방체를 이룬다.《Shared Destines》라는 전시명 때문일까. 그가 군인에게 들은 말은 작가의 인생에서 그가 작품활동에 전념하도록 이끄는 데 어떤 기여를 했을까. 아무리 작고 가벼운 사물이어도 시공간을 휘게 하는 우주의 구조처럼, 한 사람의 인생에 들어온 것은 어떤 식으로든 그의 인생에 휘어짐을 생성한다. 


드니 빌뇌브의 영화 <컨택트>는 우리의 선형적 언어 체계와는 다른 언어 체계를 쓰는 외계 생명체와의 조우를 조명한다. 이후 주인공은 무한히 돌고 도는 고리 위에서 다시 도래할 삶을 맞은편에서 미리본다. 영원회귀하는 기쁨과 회한을 감내해야 하는 운명을 산다. 그처럼 우리는 일상적으로 한 사람의 행동과 말로, 어김없이 뒤흔들리고 마는 하루를 마주한다. 그중 바라던 이야기를 외부에서 계시처럼 들을 때면 얼마나 과단해지는지. 


휴가 직전 W는 내게 <무엇도 아닌 모양으로>라는 책을 선물했다. 자신이 좋아하는 아트 디렉터의 책이어서 골랐다는 책은 일종의 호명 같았다. 나 자신도 잘 모르겠는 상태로 달걀 껍데기 안에 갇혀있는 감정을 두드리는 바깥의 노크 같았다. 작가가 군인의 말에서 ‘허가받은 기분’을 느꼈다면, 나는 모호한 불안의 정체에 ‘이름을 얻은 기분’을 느꼈다. 파도의 형태로 밀려왔다가 모래에 부서지며 하얀 거품을 부글거리는 바다를 보며 무정형의 하루를 가늠했다. 퇴사를 고민한 지 84일차였다. 


(중략) 형태가 없는 나에 대해 생각한다. 나의 모양은 다른 사람들보다 빠르게 변해서 어떤 모양이 진정 나의 것인지 알 수 없다. 알 수 없다는 사실을 받아들이기까지 너무 오랜 시간 생각했고, 아마 앞으로도 이를 계속해서 받아들이며 사는 것이 나의 숙명일 것이다. 나는 사는 동안 최대한 방어하지 않고 내게 다가오는 것들에게 자리를 주기로 한다. 불확실성의 진가를 알아보기로 한다.
-「무엇도 아닌 모양으로」 ‘형태가 없는 나에게’ 중, 김지원, 카멜북스, 156쪽


존 배의 작품은 완성된 형태를 계획하지 않고 진행된다. 기존 좌표에서 살짝 고개를 돌린 선들이 새로운 위치에 형성한 교점과 그 무수한 교점들이 만나 더 가깝거나 먼 간격으로 밀도를 형성하고, 그러한 예측불허의 만남들이 모여 안과 밖이 모호한 하나의 조형물을 이룬다. 작가의 작품에서 미리 규정할 수 없는 인생을 본다. 이처럼 인생은 무수한 감명(感銘)을 체화한대로, 흘러갈 것이다. 



#안다고도모른다고도못하더라도 #존배_shareddestines


존 배 《Shared Destines》

2024.8.21-2024.10.20

갤러리 현대


관람일자: 2024. 10. 2

발행일자: 2024.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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