잔잔한 일상에 트리플 물수제비를
일주일에 한 번 피아노 연습실에서 레슨을 받는다. 집과 연습실을 오가며 혼자 해오던 연주가 성에 차지 않았다. 재미로 놀리는 손가락이지만, 이왕이면 아름답게 연주 하고 싶었다. 때마침 도보로 15분 거리에 있는 연습실을 발견했고, 3주년 기념 할인은 부담을 줄였다. 그렇게 레슨이 시작됐다.
취미를 전전했던 시절
프랑스 감독의 영화 <퐁네프의 연인들>과 <녹색 광선>을 좋아했다. 자연스럽게 프랑스어에 대한 관심으로 이어졌다. 나는 대학생이었고, 졸업에는 어학 성적이 필요했다. 의무에 애정이 곁들여졌다. 토익 대신 프랑스어 시험인 델프를 치렀고, 중급 단계인 B1을 취득했다.
장비에 반해 수채화도 기웃거렸다. 소녀시대 태연이 쓴다는 ‘워터브러쉬’ 때문이었다. 물통과 붓을 합친 브러쉬는 신박했다. 브러쉬를 사고, 휴대용 팔레트도 만들었다. 겉모습에 혹한 탓일까. 의욕은 엽서만 한 그림 2점을 남긴 채 사라졌다.
그즈음 가디언의 편집국장이었던 앨런 러스브리저가 쓴 <다시, 피아노>를 읽었다. 그는 연주회에서 친구 게리의 쇼팽 발라드 1번 연주에 감명을 받은 뒤, 같은 곡에 도전한다. 미국 대선판을 좌지우지한 위키리크스 사건을 비롯해 각종 기사로 점철된 일과 속에서도 건반 앞에 선다. 피아노는 그에게 ‘진지한’ 취미였다.
나는 취미 환승을 그만두었다.
‘지속가능한 즐거움’으로서의 취미
10년 만에 피아노 레슨을 받은 배경에는 ‘제대로 즐기고 싶다’는 열망이 자리했다. 앞서 공부했던 프랑스어는 낯선 표현을 익히는 즐거움을 줬다. 워터브러쉬와 함께한 수채화는 삼주천하로 끝났다. 대상을 갈아타면서 느낀 점은 하나였다. 가장 큰 재미는 꾸준함에서 비롯된 도약에서 온다는 것.
순수한 애정으로 시작한 취미는 그 자체로 기쁨이며, 잘하면 쾌감은 배가 된다. 몰입한 일이 발전할 때, 우리는 다음 단계로 뛰어오른다. 농구에서 드리블을 연습하다가 손목 쓰는 노하우를 깨닫는 경우를 예로 들 수 있다. 도약의 즐거움은 중독성을 띤다.
돈으로 교환된 책임감과도 무관하다. ‘취미’는 네이버 국어사전에 따르면 ‘전문적으로 하는 것이 아니라 즐기기 위해 하는 일’이다. 유희의 영역이란 뜻이다. 평가당할 필요도 없고, 속도를 조절하며 즐기면 그만이다. 실력이 나아질 때 불쑥 찾아오는 설렘은 덤. 한 마디로 재미 위주의 성장이다.
지루한 일상 속 리듬을 바꾸자
일상은 드라마가 아니다. 평탄하고, 반복되는 나날이다. 하지만 그 속에서도 우리는 취미를 통해 생활이라는 잔뜩 쪼그라든 풍선에 재미를 불어 넣을 수 있다. 음악에 비유하자면 레, 레, 도의 심심한 멜로디가 아니라, 레, 레미레, 도처럼 꾸밈음을 추가하는 식이다.
최근 인상 깊게 본 피아노 연주 영상을 소개한다. 우리나라에선 ‘반짝반짝 작은 별’로 많이 알려진 곡이다. 모차르트의 ‘아, 어머니께 말씀드릴게요(Ah Vous Dirai-je, Maman)’ 주제에 의한 12개의 변주곡으로, 지휘자 정명훈이 연주한 버전이다. 0:02 부분과 1:11 부분을 비교해보자.
박자가 같아도 리듬이 달라지면 변화가 일어난다. 삶도 마찬가지다. 연주를 본 한 네티즌은 “무심하게 강가에 돌 던져서 물수제비 20콤보를 보는 느낌”이라는 감상을 남겼다. 그의 댓글을 인용해본다. 잔잔한 일상에 트리플 물수제비를 띄우고 싶다면, 취미를 가지라고. 꾸준하면 더 좋다. 당신의 생기로운 하루를 응원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