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인의 재능을 탐내기 전에
치, 날 때부터 아름다웠겠지
연습곡인 베토벤 소나타 No.7번을 듣는다. 아직 템포는 커녕 올바른 음정과 정확한 착지를 시도 중이다. 초보자에게는 방향키가 필요하다. 훌륭한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듣는 일은 아마추어에게 감을 키워준다. 멋도 모르고 노를 젓는 뱃사람에게 베테랑 선장의 뒷모습은 늠름하기만 하다.
하지만 타인의 연주를 향한 탐닉은 때때로 독이 된다. 뿌리도 튼튼하게 내리지 못한 어린 나무가 장성한나무의 고운 실가지와 연둣빛 이파리, 잎새에 이는 바람 소리에 홀린다. 그리고 시샘한다. 날 때부터 아름다웠을 거라고.
그 나무가 겪어온 겨우살이는 상상하지 못한 채.
질투는 쉬워도, 실천은 어렵다
우리는 한 사람이 어떤 경지에 도달하기까지 들인 수고를 보고 싶어 하지 않는다. 인간은 편리함을 취하도록 진화해왔다. 열매를 얻는 과정이 험하면 뱉도록 태어났다. 자연스러운 일이지만, 참 간사하다.
페이스북 피드에서 '옆구리 군살 7일 만에 없애기' 운동 영상을 공유한다. 이렇게 쌓인 트레이닝 영상이 피드에 한가득. 연예인의 무결점 피부를 보고 "피부는 타고나는 거야"라고 질투하긴 쉽다. 수분 관리를 위해 매일 7 스킨법을 하고, 이틀에 한 번 마스크팩을 하고, 한 달에 한 번 피부과를 찾는다는 사실은 한 귀로 흘려버리면서.
피아노 연습 중 머리를 식힐 겸 스마트폰을 켠다. 유튜브에 들어가 피아니스트의 연주를 본다. 액정을 통해 보는 연주는 매끄럽고, 쉬워 보인다. 그를 따라 허공에 손을 놀리니 전문 피아니스트가 따로 없다. 착각은 연습을 시작하는 순간 깨진다. '정신 빼고 있었지?' 물으며 건반이 하얀 이를 드러낸다.
얼음 위에 불시착한 시간들
우리가 보는 소설과 시, 영화, 피아노 연주는 작가와 감독, 피아니스트가 특정 시기에 내놓은 최선의 결과물이다. 그가 그 시기에 할 수 있는 최상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300쪽의 소설, 2시간짜리 영화, 60분간의 콘서트를 위해 혼자 얼마나 많은 밤을 지새웠을까. 모자란 부분을 적당히 넘어가려는 자신을 어르고, 타이르고, 채찍질하면서 말이다.
피겨여왕 김연아가 빙판 위에서 넘어지는 모습이 화제였던 때가 있었다. 모두가 아는 바로 그 영상. 그의 표정에 답답함과 화, 투지가 뒤섞였다. 연습은 관객도, 심사관도 없는 자신과의 무한한 싸움. 매번 한계를 시험하는, 지난한 시간의 연속이다.
성공 너머의 노력을 들여다보자. 조금만 관심을 가지면 잊고 있던 사실을 알게 된다. 영광 뒤에는 고집스러울 정도로 묵묵한 고행의 시간이 자리한다는 것을. 그 시간들은 빛나는 결과만을 부러워하는 이들에게 말한다. 막연한 선망은 버리고, 안일해지는 자신과 싸우라고.
당신 안의 불꽃이 꺼지지 않도록
학부 시절, 열정과 재능에 관한 교수님의 이야기를 떠올린다. 누구나 가슴 속에 불꽃을 지닌다고. 활활 타오르는 불꽃이 있는가 하면 작은 불씨도 있을 거라고. 크기는 다르지만, 불꽃을 계속 타오르게 하는 것은 너희의 몫이라는 말씀을 기억한다. 천재의 불꽃은 평범한 사람과는 다를 것이다. 그러나 불꽃을 지키는 일은 각자의 의지와 인내에 달려있다.
어쩌면 천재는 타고난 재능보다는, 재능이라는 칼을 갈고닦는 행위에서 꽃피는 것이 아닐까. 세상을 반짝 놀라게 하긴 쉽지만, 사람들의 마음에 울림을 주긴 쉽지 않다. 그리고 우리가 기억하는 천재 대부분은 수없이 그렸다가 지우고, 건반에서 미끄러지고, 얼음 위에 불시착한 사람들이다.
시간은 끊임없이 자신에 맞선 이들에게 곁을 내어준다. 천재는 그 순간 태어난다. 타인의 성취를 탐내는 시간은 하루 십 분이면 족하다. 그가 이뤄낸 결실이 탐난다면, 그들처럼 자신에게 저항해야 한다. 내면의 불꽃을 찬연하게 틔우는 방법은 그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