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위로하지도 않았지만, 내 앞을 떠나지도 않았다

차갑지만 정다운 친구, 피아노

by 궁금한 민지

우리는 힘든 일이 있을 때 길가는 누구라도 붙잡고 떠들고 싶다. 직장에서 입은 상처를 친구와의 통화로 해소한다. 도무지 해결책이 보이지 않는 가족과의 불화를 애인과 만나 풀기도 한다. 어떤 말도 힘이 되지 못할 때는 다른 처방책을 찾는다. 그건 술이 될 수도, 소설 한 권이 되기도, 강바람을 맞는 라이딩이 될 수 있다. 나의 경우는, 피아노였다.




말과 말 사이에는 큰 강이 있다

어렵게 털어놓은 고민에 오히려 골치가 아프다. 술 한 잔 기울이고 등이나 두드려주면 좋을 텐데, 다 내 맘 같지 않다. 당사자보다 더 진중하게 걱정하면서 조언하거나, 괜찮냐며 안부 세례를 퍼붓는다. 마음이 가벼워지고자 한 말에 스스로 발목 잡히는 격이다. 그렇다고 상대가 “별 것 아니네”라고 가볍게 말해도 마음이 상한다.

한 마디로 상대가 자신과 똑같은 온도로 이야기를 들어주길 바라는 황당한 마음인 거다. 하소연을 듣는 쪽은 심사가 괴팍하다며 욕할 만하다. ‘저 생각해서 말해줬는데 반응이 왜 이래’, ‘배가 부른지 별 걸로 고민하네’. 그만큼 말이라는 건 상대의 마음을 정확히 겨누기 어렵다. 또 정확히 맞았더라도 소통에 성공하리라는 보장은 없다.



한 치 오차 없이 전달되는 뉘앙스

피아노는 조금 다르다. 조율이 시급한 피아노가 아니고서는. 그는 손가락이 거는 대화를 명확하게 이해한다. 터치 강도, 터치의 톤, 타건 위치에 따라 정확히 반응한다. 뜻대로 소리내지 않는 건반을 탓할 때도 있지만, 결국 문제는 손가락임을 깨닫는다. 연주한 만큼 소리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연주법이 잘못됐거나 감정이 메마른 탓이다.

건반이 빚는 음악은 오롯이 내게서 비롯된다. 자신의 손길을 따라 발화하는 건반 앞에서는 신중할 수밖에 없다. 여리거나 강하게, 투박하거나 매끄럽게, 명징하고 또렷하게, 가볍게 튀어 오르듯이, 둔중하게 가라앉듯이. 무언가에 쫓기듯이, 시간을 잊은 듯 유영하듯이. 모든 뉘앙스는 건반을 통해 해머로, 현으로 고스란히 전해진다. 오해는 일어나지 않는다.



혀끝에서 쏟아지는 언어 대신 건반을

피아노는 ‘무뚝뚝한 사물’이다. 그는 쉽게 유혹하지도, 쉬이 곁을 내어주지도 않는다. 피아노 앞에서 나는 겸허해진다. 그럴듯한 말을 지어내긴 쉬워도, 그럴듯한 음색을 꾸며내긴 쉽지 않다. 원하는 소리는 예민한 청각과 함께 그만큼의 분석을 기울여야 겨우 얻을 수 있다. 88개 건반과의 대화는 오롯이 내게 집중하는 시간이었다.


인간관계에 지치고, 상황이 힘겨울 때면 누군가를 만나는 대신 피아노로 향했다. 그동안 나는 스스로 감정에 치이고, 주변의 말에 휘둘리면서 겪는 감정의 눈보라를 피할 수 있었다. 여전히 지하철 플랫폼에 주저앉아 울고 싶은 날이면 누군가를 만나는 대신 피아노 뚜껑을 연다. 우직하고 묵묵하게 같은 자리를 지키면서도, 호락호락하지 않은 친구를 만나러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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