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에게 어른이 있는가
어른 김장하, 그다음을 생각하며
어른이라는 말이 무슨 뜻일까요? 사전적 의미로는 다 자란 사람, 또는 다 자라서 자기 일에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이라고 나옵니다. 그러나 저는 어르고 달래는 사람으로 어른을 배웠습니다. 감정 조절이 안 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것이 어른입니다. 예기치 않은 슬픔에 빠져 헤어 나오지 못하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는 것도 어른입니다. 어디로 튈지 모르는 아이들을 어르고 달래서 올바른 방향으로 가게 만드는 것도 어른입니다. 저는 어릴 때부터 그런 어른들을 보고 자랐습니다.
물론 어른도 사람인지라 실수할 때도 있습니다. 자기 슬픔과 분노에 못 이겨 사람을 다치게 하고, 사고를 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곧 자신의 잘못을 솔직하게 인정하고 바로 잡습니다. 자신보다 수준이 높은 사람 앞에서는 겸손할 줄도 압니다. 무조건 자기 목소리만 키우는 게 아니라 상대의 목소리도 들을 줄 압니다. 자기 혼자만 잘 살려고 아등바등 사는 게 아니라 자기보다 못한 사람을 돌아보고 돌볼 줄도 압니다. 자기감정에도 솔직하고 자기 능력에도 솔직한 그런 어른들이 옛날에는 참 많았던 것 같습니다.
얼마 전 <어른 김장하>라는 다큐멘터리를 봤습니다. 숨겨졌던 한 인물이 세상을 들썩거리게 했습니다. 자신이 한 일을 절대 알리고 싶지 않았던 이분은 언제까지 꼭꼭 감춰져 있을 분이 아니었습니다. 세상을 위해 하신 일은 너무나 많은데 스스로 그림자 속에서 있었습니다. 세상의 불의에 맞서서 싸우기도 하고, 환경 운동도 앞장섰고, 형평운동도 지원을 했지만 결코 자기 이름을 내세우지 않았습니다. 사람들이 그의 진가를 인정해서 늘 가운데 자리로 모시려 해도 끝끝내 구석 자리에 않는 분이 바로 어른 김장하였습니다. 너무 큰 인물이어서 그 다큐멘터리에 출연하는 사람들마다 차마 닮을 수 조차 없다고 말합니다. 닮을 수 없다면 담으면 됩니다. 담아서 좋은 어른의 샘플을 모아 놓고 천천히 따라가면 됩니다.
우리 주변의 어른들 모습을 한번 둘러보십시오. 자기 자리에 욕심이 많은 사람, 나이를 들먹이며 아랫사람을 누르려는 사람들, 남 험담만 까는 사람들, 잘난척하고 생색내기 바쁜 사람들... 이런 사람들이 자신을 어른이라고 얘기하며 다닙니다. 드라마 <나의 아저씨>에 나오는 우리의 아저씨는 듣고도 모른 척하고 솔직하면서도 인간적입니다. 약한 사람을 돌볼 줄 알고, 기쁨과 슬픔을 같이 나눌 줄 압니다. 손을 내밀고, 등을 두드릴 줄 아는 사람입니다. 그런 어른이 당신 곁에 있나요?
저는 어른이라면 이 네 가지 정도는 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저도 남들에게는 어른의 나이가 되었지만 이 네 가지를 갖추면서 어른이 되려고 노력할 겁니다. <어른 김장하>만큼은 안 되어도 <나의 아저씨> 정도는 되고자 합니다. 제가 생각하는 어른의 네 가지 조건은 나눔, 들음, 낮춤, 배움입니다. 우선 우리가 따르고 싶은 어른이라면 나눌 줄 알아야 합니다. 자기가 모든 것을 다 움켜쥐고 사는 게 아니라 내가 가진 것을 언제든지 나보다 못한 사람에게 나누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Give & Take가 아니라 Give & Forget의 정신을 가진 사람이어야 합니다. 나눈다는 것이 꼭 물질적인 것만은 아닙니다. 측은지심, 즉 처지가 곤란한 사람들을 보고 그냥 지나치지 못하는 마음이 필요합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같이 살아가는 정신이 필요합니다. 김장하 어르신처럼 많은 돈을 기부하고, 많은 일을 하지는 못해도 내 주변에 보이는 작은 어둠을 몰아내는 촛불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어른이 되기 위한 두 번째 조건은 들을 줄 알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리 입에서 얼마나 나쁜 게 많이 나오는지 잘 모릅니다. 오늘 아침, 아이들에게 심한 말을 하지 않았는지 돌아보십시오. 사람들을 만나서 내 자랑질하느라고 입이 바쁘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친구들 몇몇이 모여서 누군가를 뒷담화까지 않았는지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는 세상의 작은 소리는 들으려 하지 않고, 자기 이야기만 크게 떠들려고 합니다. 이태원의 아픔, 튀르키예의 아픔에 귀를 닫고 당장 내일의 대출 이자만 신경 씁니다. 누군가 아프다는 건 나도 그렇게 아플 수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 아픔을 외면해서는 어른이 될 수 없습니다.
세 번째 어른 조건은 낮춤입니다. 스스로 낮출 줄 알아야 합니다. 다들 자기만 높게 세우려 합니다. 그러면 밑에 누가 있는지 잘 모릅니다. 자기가 높아지면 누군가는 낮아지게 되어 있습니다. 대중가요 중에 "겸손은 힘들어"라는 노래가 있습니다. 정말 그 노래 제목 그대로 겸손은 참 힘듭니다. 그러나 겸손하려고 노력해야 어른이라 생각합니다. 잘난 척은 누구나 합니다. 그런 사람은 어른이 아닙니다. 겸손은 힘듭니다. 그러나 겸손할 줄 아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스스로 구석으로 가고, 스스로 그림자가 되고, 스스로 무릎을 낮추는 사람들, 지금 우리 세상에는 이런 어른을 찾아보기 참 힘듭니다.
마지막 어른의 조건은 배움입니다. 나이 50, 60을 먹고 나니 더 이상 배우려 하지 않습니다. 그동안 쌓아온 자기만의 가치관, 생각을 허물려하지 않습니다. 보수적인 사람들은 눈을 감을 때까지 보수적이고, 나름 진보라고 생각하는 사람도 끝까지 진보를 고집합니다. 100세도 못 사는 인생이 그깟 이념에 붙잡혀 속 좁은 사람이 되어서야 되겠습니까? 정말 올바른 어른이라면 열린 자세가 되어야 하고 무엇이든 배울 수 있는 사람이어야 합니다. 10대 어린아이들에게서도 배울 수 있는 사람이 어른입니다.
지하철을 탑니다. 내 아들, 딸 같은 청년들이 보이고, 내 부모님 같은 어른들이 보입니다. 그냥 다들 내 가족처럼 비슷해 보입니다. 사는 게 다 거기서 거기라서 그럴 겁니다. 그런 마음으로 세상을 살면 마음도 더 푸근해질 겁니다. 어르신이 넘어지면 내 아버지가 넘어진 것처럼 손을 내밉니다. 지각할까 봐 허겁지겁 달려오는 아가씨를 보면 내 딸 같아서 엘리베이터 문을 붙잡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으로 우리 세상을 바라보면 어떨까 합니다. 상대를 이해하는 마음, 즉 공감지수가 높은 사람이 어른입니다. 내가 싫은 것을 남에게 시키지 않는 마음, 즉 양심지수가 높은 사람이 어른입니다.
당신은 어른입니까? 우리 주변에 어른이 안 보이면 우리 스스로 어른이 되면 됩니다. 당신은... 어른이 되실 수 있겠습니까? 어른 김장하 선생님에게 물어봤습니다. 인생을 어떻게 살아가야 할까요? "사부작사부작 꼼지락꼼지락 그래 걸어가면 돼." 그렇죠. 그렇게 사부작사부작 어른의 네 가지 조건을 하나씩 익혀가면서 살아가면 됩니다. <나의 아저씨>처럼 낮은 곳, 아픈 곳을 돌아볼 줄 아는 인간적인 어른으로 살아가면 됩니다. 부디 우리가 사는 대한민국에 그런 어른이 점점 많아지기를 기원해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