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집을 읽으세요

우리는 관념어로만으로는 세상을 살아가기 힘듭니다

by 조양제

우리는 늘 소설과 영화와 드라마의

재미에 탐닉하며 삽니다.

물론 그것들이 다른 일을 못하게 할 정도로 사로잡는 건 사실입니다.

히가시노게이고의 스토리 힘은

지하철 정거장을 지나치게 하고

<더글로리>의 복수는 그다음이 궁금해서 마지막 회까지 다 보게 합니다.

웹툰의 매력도 마찬가지입니다.

돈을 주고서라도 그다음회를 볼 수밖에 없는 매력이 웹툰의 힘입니다.

우리는 우리 사는 세상만으로도

다양한 스토리의 세계에 살고 있는데

내가 겪지 못한 대리체험을 다른 스토리를 통해

또 해소하려고 합니다.


어느 날, 축 처진 몸을 이끌고

KTX를 타고 일을 보러 갑니다.

무언가 마음이 헝클어져 그냥 눈을 감고 잘까 하다가 가방 속에서 시집 한 권을 슬쩍 꺼냅니다.

시 한 편, 한 편을 천천히 읽습니다.

그냥 머리로만 살려고 했던 그 복잡한 순간들이

가슴으로 하나씩 매듭을 풀고 있습니다.

관념어로 해석하려고만 했던 세상이

감성어로 바라보니

어디가 잘못되었는지가 보입니다.

사람은 감정을 가진 동물이었는데

그 감정은 어디다 팽개치고 그저 똑똑한 척하며 살았는지 한숨이 저절로 나옵니다.


스토리는 재미를 주지만 시는 위로를 줍니다. 신발끈이 풀어진 지도 모르고

정신없이 달린 일상에 시는 잠시 무릎을 꿇고 자신을 가다듬을 기회를 줍니다.

폴 발레리의 "바람이 분다. 살아봐야겠다' 시구 하나만으로도 정말

다시 살아봐야겠다는 다짐을 합니다.

어떤 시는 무슨 말을 하는지

도대체 알 수 없는 시도 있습니다.

그러나 그걸 이해하려고 드는 것 자체가

관념어의 습관에 빠져 있는 겁니다.

시집을 한번 보고 다 이해할 수는 없습니다.

그냥 차창 밖 풍경을 지나치듯 천천히 지나가다가 어느 시구에서 눈이 번쩍 뜨일 때가 있습니다.

그 시구가 가슴을 콩닥거리게 할 때가 있습니다.

바로 그 순간이 내 눈앞의

인생을 즐기는 순간입니다.


시는 시인들의 아픔을 99도까지 참다가

100도에 이르러 터져 나온 절규입니다.

터져 나온다는 것은 그만큼 축적되고

눌려진 시간이 크다는 것이고,

그걸 인내한 발효의 시간이 있었다는 걸 말합니다.

자기 아픔을 온전히 직시하는 사람이

자기 아픔을 시로 표현합니다.

나무, 꽃, 노을, 바람에 시인들은

자신만의 언어로 마음을 실어 보냅니다.

보고서를 쓰고, 남을 유혹하는 문구를 쓰기 바쁜 우리는 그 슬픔의 언어,

발효의 언어를 발견하는데

이미 둔해져 있을 겁니다.

우리는 세상을 두 발로 걸어가는데

당신의 언어는 외발로

걸어가고 있지는 않은지 돌아보십시오.


저는 어느 날 박연준 시인의 <얼음을 주세요>라는 시에서 이 시구에 가슴이 쿵했습니다.

"케이크 위에 내 건조한 몸을 찔러 넣고 싶어요.

조명을 끄고

누군가 내 머리칼에 불을 붙이면 경건하게 타들어갈지도. "

아... 어떻게 이런 비유,

이런 표현을 할 수 있을까요?

자기 자신을 케이크에 꽂아 태워 없앤다는

그 아픈 상상력은

우리들의 일상어, 관념어로는

표현해 낼 수 없습니다.


문정희 시인의 <응>이라는 시를 한번 보세요.

" 햇살 가득한 대낮

지금 나하고 하고 싶어?

네가 물었을 때

꽃처럼 피어난

나의 문자


"응"

동그란 해로 너 내 위에 떠 있고

동그란 달로 나 네 아래 떠 있는

이 눈부신 언어의 체위 "

이런 비유는 도대체 어디서 배운 걸까요?

아니 배워서 되는 비유는 아닐 것 같습니다.


시집 한 권은 120페이지도 안 됩니다. 책도 가벼워서 들고 다니기도 편합니다.

박완서 님에게 시를 왜 읽느냐고 물으니

"심심하고 심심해서 왜 사는지 모르겠을 때도 위로받기 위해 시를 읽는다."라고 말합니다.

저도 그렇습니다.

왜 사는지 아는 사람이 몇 명이나 됩니까.

우리는 늘 안갯속을 헤쳐가는 사람들입니다.

그 불안과 불투명의 인생에서 시는 나를 위로하고 내 눈앞의 뿌연 세상을 와이퍼로 지워줍니다.


어떤 작가는 시를 읽고 쓰는 일이 모든 예술 장르를 통틀어 가장 유익한 예술장르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그림을 그리거나 작곡을 할 줄은 몰라도 시를 읽을 줄은 압니다.

식당에도 메뉴가 다양하듯 시의 메뉴도 국밥 같은 시, SF 같은 시, 드라마 같은 시,

대중가요 같은 시도 있습니다.

지금도 사랑하고 있고 앞으로도 사랑할 사람이라면 시 한 편은 꼭 읽어주어야 합니다.

내 뜨거운 사랑을 표현하는 데 시만큼

좋은 언어는 없기 때문입니다.


한 달에 책 한 권도 안 읽는데 시집을 읽으라고요? 그래서 더 시집을 권합니다.

가벼운 책으로 시인들의 현란한 비유의 언어 필살기를 만나고, 애끓는 감정의 수사를 만나고,

그들의 아픔이 내게로 와

다시 힘을 내 살아갈 에너지를 선물합니다.

요즘 글쓰기 강좌가 인기입니다.

그런데 정말 글을 잘 쓰는 비결이 뭔지 아십니까?

같은 말을 해도 평범하지 않게 말하기,

어려운 말을 쉽게 표현하기 일 겁니다.

그 비법을 익히려면 시집을 펼치십시오.

우리에게 너무나 잘 알려진

김소월 시인은 <개여울>이라는 시에서

"당신은 무슨 일로 그리합니까?"라고 표현합니다.

"왜 그러고 있습니까?"의 평범한 언어가 아닙니다.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시집을 가까이 둔다고 합니다.

삶을 끔찍하게 사랑하는 사람들이

시집 속으로 파고든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이 세상을 더 사랑하고,

여러분의 삶을 더 사랑하고 싶다면

시집과 사랑을 나누시기 바랍니다.

부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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