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 클래식 입덕
<케이팝 외길인생 축 클래식 입덕>
1. 클래식 입덕은 예견된 미래 같은 것
오타쿠 이력
머글로서 오덕을 가까이에서 본 내 친구가 말하길(당연히 내가 오덕, 친구가 머글). 좋아하는 걸 만나서 거기에 빠지면 갓반인. 어디 뜯어먹을 살코기 통통하게 오른 거 없나 찾아 헤매면 오덕. 일생을 어딘가에 빠져있는 모드로 살아왔다.
해리포터-케이팝-식물-커피-운동에 이어 오덕 계보에 클래식을 잇게 되었다. 듣기에 일반인들은 영화를 보면 재밌다 하고 끝이라는데 그게 되나요? 무언가를 좋아하면 쪽쪽 빨아먹고 뜯어먹고 재탕 삼탕 오탕 탕탕탕. 여기에 원작 비하인드 싹싹 긁어먹고 아 먹을 거 없다 배 뚜드리는 사람이라면 클래식? 추천드립니다. 내가 평생 봐도 못 볼 떡밥들이 넘실거려요. 지금 엄지발가락 하나 담가보고 신난 초보. 좋았어, 이번엔 클래식이야.
시작은 알고리즘
라때는 노래라는 것을 말이야.. 피엠피로 들었단다. 화려한 빅뱅과 콜드플레이가 초절기교와 비창을 싹 감싸네... 그때도 플레이리스트가 매우 혼종이었다. 언젠가 한 번 발 담가 봐야지 했지만, 이제야 기회와 만났다. 하도 돌려봐서 지휘자님 지나가다 보면 인사드릴 것 같은 반 클라이번 영상이 케이팝과 수영, 브이로그로 도배된 유튜브 알고리즘에 찾아온다.
https://www.youtube.com/watch?v=DPJL488cfRw
처음 접한 영상은 매우 충격적이었다. 좋아서. 한 곡이 40분..? 요새는 한곡에 2분 안에 끊어야 한다고요, 초딩들은 숏츠도 길다고 안 본다고요... 근데 길이가 믿기지 않을 정도로 몰입해 여러 번 봤다. 그냥도 켜놓고, 그림 그릴 때도 듣고, 청소할 때도 듣고, 에어팟으로도 듣고, 아이패드로도 틀어놓고, 집 티비로도 틀고, 설거지할 때도 틀고... 꿈에 선율이 나올 정도였다.
임윤찬의 라흐마니노프 피아노 협주곡 3번
오덕의 기본자세. 일단 공식, 오피셜 싹 끌어모아 정리해서 공부하고. 팬들 해석 싹 긁어모아 보고. 맞아요! 잇몸 말려주고. 혼자 벅차올라서 잠깐 일시정지 해주고. 꿈에서도 한 번 들어줘야 루틴 한 바퀴. 빨리 실시간 떡밥 소화해야 된다고요. 양볼 가득하게 이것저것 정보를 넣기 시작했다.
이미 윤이상 콩쿠르 최연소 1위를 할 만큼 알려진 연주자였다. 오히려 좋아... 쌓인 떡밥 어서 오고. 우승한 반 클라이번 콩쿠르는 3대(의미 없다지만)보다는 약간 다른 느낌의 (... 공중파 보다 tvn 같은 건가, 알못) 콩쿠르이고 특징은 매우 많은 레퍼토리를 소화해야 한다고 한다.
콩쿠르에서 연주한 다른 연주자들의 영상들을 좀 보니 라흐마니노프 협주곡 3번은 냉전시대에 미국인 피아니스트 반 클라이번이 연주했기에 더욱 의미 있고, 곡 자체의 장엄함으로 인해 많이 선택되는 듯하다. 2번과 더불어 라흐마니노프의 피아노 협주곡 2, 3번은 마치 불후의 명곡과 같은 오디션프로 단골 레퍼토리로 느껴졌다. 당시에는 너무 대중적인 선율에 과도한 신파라고 평가되기도 했다는데, 오타쿠들은 그게 넘나 취향이거든요... 이미 많이 연주되었음에도 임윤찬의 연주에 많은 사람들이 열광하는 걸 보면, 정말 새롭게 몰입시킨 시도로 여겨진다.
팬에게 입덕곡은 잊을 수 없는 법. 내리치는 선율과 라흐마니노프 곡 자체의 감동도 있었지만, 오케스트라 단원, 지휘자 그리고 피아노 연주자가 하나의 음악을 하고 있다는 점이 희열로 다가왔다.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 사람들이 임윤찬에게 열광하는 이유는 열정이라고 생각한다.
https://www.youtube.com/watch?v=vhwhwJU3wro
이번 애플 클래식 뮤직에 공개된 플레이 리스트 혹은 앙코르 때 선택하는 음악만 보아도 오랜 시간 음악 자체를 좋아해 온 것이 마음이 느껴지고, 음악에 대한 깊이가 남다름에 놀랄 때가 많다. 그만큼 무언가를 사랑하는 마음. 그리고 그걸 내 삶에 들여와 실행하는 행동력. 발전시키는 성실함. 이 모든 게 가능한 순수함. 이런 게 무척 귀한 시대이다. 좋은 건 몰라도 알아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