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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oel Jan 26. 2020

기후 변화를 여행하는 아이슬란드의 역설

다이아몬드 비치는 정말 아름답기만 할까

아이슬란드 여행은 적어도 나에게 기후 변화를 몸소 느끼게 한 수학 여행이었다. 실제로 북유럽은 기후 변화에 적극적으로 대응하는 지역이다. 얼마 전 유엔 기후변화총회에서 미국 트럼프 대통령에게 살벌한 눈초리를 보내면서 세계적으로 이름이 알려진 그레타 툰베리 환경운동가도 스웨덴 출신이다.


한 SNS에서 돌아다니던 글 중 기억나는 인상 깊은 내용이 있는데 아이슬란드나 스웨덴, 노르웨이 등 북유럽 국가들은 통나무 집에서 살고 석탄도 거의 사용하지 않으면서 자연과 어우러져 살아왔는데 온도가 높아지고 해수면이 상승하면서 억울하게도 기후 변화 영향을 직격탄으로 맞았다는 것이다. 18세기에는 산업 혁명을 주도한 영국, 21세기에는 기후 변화를 믿지 않는다는 미국과 이제 대규모 발전을 거듭하는 중국이 저지른 똥을 난데없는 북유럽이 받았다는 설명이다. 물론 북유럽에도 서구 열강에 포함됐던 국가도 있긴 하지만 아이슬란드의 경우에는 그 어느 국가보다 억울할 법하다. 면적은 약 1000만 헥타르로 한국이랑 비슷한데도 총 인구는 30만명밖에 안 되고 지열 발전을 주로 해왔던데다 험난한 지형이 많아서 도시화 자체가 힘든 나라다. 그래선지 아이슬란드 여행 곳곳에서는 기후 변화를 우려하고 이를 막아야 한다고 성토하는 글을 많이 볼 수 있었다.


정말 안타까운 사실은 웃기게도 아이슬란드에 중국인 여행객들이 넘친다는 사실이다. 환경 오염과 기후 변화의 주범국인 나라 사람들 말이다. 저렴한 인건비로 수많은 공장을 가동하며 경제 발전을 이룩하고 있는 중국은 안타깝게도 지구 온난화의 주범 중 하나다. 그런 나라의 국민들이 아이슬란드에 와서 바다로 천천히 흐르는 거대한 빙하를 보며 아름답다며 사진을 찍는 모양새가 그 어느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역설이었다.



요쿨살룬의 가장 유명한 관광지인 다이아몬드 비치는 수백 수천년을 살아온 빙하들이 바다로 가기 전 마지막으로 거쳐가는 곳이다. 각양각색의 모양새를 한 빙하들이 해변가에 널부러져 있고 그 옆으로는 더 큰 규모의 빙하들이 천천히 흘러가는 모습은 그야말로 장관이다. 하지만 그 앞에 있던 관광 안내문에는 슬픈 글귀만 적혀 있었다. 기후 변화로 인해 녹아 내려온 빙하들이 점점 늘어나고 있다는 설명이었다. 그 다음 설명은 빙하가 과거에 비해 얼마나 더 빠르게 녹는지 설명하는 우리가 익히 들어온 내용이었다. 그 글귀를 읽는데 나는 더이상 즐기고 있을 수가 없었다. 그 앞에선 한 중국인 관광객은 포즈를 취하며 웃고 있었는데 그게 그렇게 슬프고 역설적일 수가 없었다.


천천히 바다로 흘러가는 빙하의 모습을 두고 사진을 찍는 중국인 관광객을 보는 기분은 처참했다.


요쿨살룬 빙하 투어에서도 가이드는 기후 변화를 강조했다. 아이슬란드에 있는 빙하들은 가만히 있는 것 같아 보여도 그 깊은 아래에서는 끊임없이 녹으면서 수면 위로 나와 강을 만들고 바다로 흘러가는 여정을 보내는데 이게 점점 빨라지고 있다는 것이다. 지형이 매일 변하기 때문에 빙하 투어 지역도 계속 발굴해야 한단다. 그날 본 작은 빙하 동굴은 며칠 전 찾아낸 곳인데 일주일 뒤면 없어져 있을 것이라고 했다. 그날 우리가 올라갔던 빙산 아래로는 빙하가 녹아 형성된 호수가 있었는데 몇 년만 지나면 이 빙산 전체가 녹아 거대한 호수만 남을 것이다. 그게 자연의 섭리지만 새로운 빙산이 생기는 속도보다 기존 빙하들이 빠르게 녹는 것이 문제다.


흡사 백두산 천지를 연상케 하지만 빙하가 녹은 호수다. 내가 서있는 곳도 언젠간 다 녹아서 더 큰 호수가 될 예정이다.


요세미티를 연상케한 거대한 돌산. 원래 빙하로 덮혀 있었다고 한다. 앞에 보이는 건 모두 빙하다.


오늘 출근길에 본 뉴스인데 미국과 중국 공동 연구진이 티벳에 있는 고대 빙하에서 지금까지 본 적 없는 박테리아를 발견했다고 한다. 총 33종의 바이러스 중 28종이 난생 처음 보는 부류였다고. (https://www.sciencealert.com/several-ancient-viruses-have-been-found-in-15-000-year-old-glacial-ice) 아마 수억년을 살고 있는 빙하 속에는 우리가 모르는 고대 바이러스가 더 많이 있을 수도 있다. 빙하가 녹아서 정체 불명의 바이러스에 현대의 동식물이 노출됐을 때 찾아올 수 있는 결과는 아무도 예상할 수 없다.


기후 변화는 그동안 실감할 수 없던, 교과서에나 나오는 구호에 불과했다면 이제는 정말 생존을 위협하는 단계까지 오고 있다. 마지막 경고라는 느낌까지 들 정도다. 그동안 성장해온 선진국의 투정이고 이제 막 발전 단계에 들어선 후발주자는 어쩌라는 거냐라고 한다든지, 그저 인류가 걷는 거대한 생의 한 흐름이니 그대로 받아들이자고 한다면 할 말이 없다. 하지만 현생 인류의 과학 기술로 생존할 수 있는 유일한 공간을 정말 잃고 싶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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