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일랜드 초반의 나, 다시 불만 가득의 나
문득 내 마음가짐에 대해 글로 적어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기자 생활을 그만 두고 연고지도 없는 아일랜드 땅에 처음 떨어졌을 때 가졌던 다짐과 희망, 그리고 그것들이 사라진 지 오래된 현재를 투명하게 적어 내 마음 상태를 점검해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글을 쓰는 것은 이래서 좋다. 항상 정리를 할 수 있고 기록할 수 있어서. 나중에 다시 읽어볼 수 있는 재미도 있고.
사실 내가 아일랜드를 선택한 적은 없다. 꼭 가보리라 마음 먹었던 워킹홀리데이에 지원할 수 있는 나이가 지나기 전에 지원이나 해보지 뭐 하는 심정으로 캐나다, 아일랜드, 네덜란드 등 여러 국가의 워홀에 지원했다가 운이 정말 좋게도 아일랜드에 합격해서 오게 됐다. 아마 2018년도에 지원을 해 무작위 추첨에서 뽑혔을 것이다. 비자 승인서를 받은 이후 출국 날짜를 잡고 비행기 표를 예매했다. 그리고 회사에는 출국 약 한 달 전에 통보했던 것 같다. 사유는 '유학'. 워킹홀리데이를 떠난다고 말할 수 없었다. 워홀에 대한 한국 사회의 시선이 어떤지 너무나 알기 때문에. 사직하기 전 사장 면담까지 했다. 나는 아일랜드에서 어학연수를 한 뒤 캐나다나 영국으로 대학원을 갈 것이라고 말하니 사장은 어처구니가 없어했다. 나도 별 할 말은 없었다. 거짓말이니까.
그렇게 일상에서 내가 나 스스로를 속이는 삶을 살게 하는 한국 사회가 싫었다. 한 번은 회식을 하고 선배와 동료들과 택시를 타고 집에 가는 길이었다. 대화를 하던 중 갑자기 뒷좌석에 앉아 있던 선배가 대뜸 나한테 말했다. "너 레즈비언 이런거니?" 난 전혀 당황하지 않은 기색으로 "네? 뭔 말이에요 선배, 에이 아니에요" 정확한 워딩은 아니지만 이런 식으로 말했다. 정말 감수성이 있는 사람이라면 모두들 있는 자리에서 저런 질문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이런 적이 뭐 한 두 번이어야 말이지. 내가 레즈비언이면 어떻게 할건데? 소문 내게? 여자라도 소개시켜 주게? 아현동을 지나는 길이었다. 대학생 시절 그 아현동 웨딩 골목에서 게이 커플 촬영을 한 적이 있다. 공간에 대한 기억을 삽시간에 바꿔놓는 장면이었다.
내 인생에서 정말 잘한 일이라면 기자일을 그만 둔 것이라고 자랑스럽게 말할 수 있다. 매일 글을 쓰고 새로운 사람들을 만나고 연락하면서 어떤 종류의 스킬은 향상했지만 그 이외에 내 미래를 그릴 수 없었다. 글의 논조에 있어서도 내 스스로를 속이는 삶을 살고 싶지 않았다. 타이밍도 매우 좋았다. 코로나 안정기에 접어드는 현재, 지난 이후 생각해보니 2019년 초에 한국 땅을 떠난 그때 내 선택이 얼마나 현명했는지 정말 칭찬하고 싶다.
그렇게 난 해외로 나와 하루 하루를 의미있게 보냈다. 어느 정도까지는 말이다. 항상 밖으로 나갔고 사진을 찍고 글을 썼다. 하지만 오래가진 못했다. 더블린에 사는 동안 더블린 내 모든 공공 도서관을 다니며 도서관 리뷰를 쓰겠다는 마음가짐은 라스마인 도서관 하나에서 그쳤다. 적어도 3군데는 기록해둘걸 후회한다. 일주일에 한 번은 브런치에 글을 남기자는 마음은 격주로, 한 달로, 그리고 거진 1년으로 길어졌다.
그때의 내 마음가짐은 '순간을 소중히 할 것'이었다. 지금 스치는 바람, 자주 흐르는 빗물, 재잘재잘 들려오는 달래는 새소리, 낮은 건물들, 이 스쳐 지나가는 모든 것을 소중하게 생각하자는 것이었다. 물론 지금은 아주 지긋지긋해서 죽으려고 하지만 막상 또 이 땅을 떠난다고 생각하면 그리움이 사무쳐올 것 같다. 더블린에서 처음 알디에 들어섰을 때 맡았던 마트 냄새를 잊을 수 없다. 어릴 적 영국에서 살 때 아스다에 가면 항상 맡았던 냄새였다. 어린 시절의 추억이 되살아나는 그 냄새를 이제는 맡기 어렵다.
내 상황에 대한 비관과 불만투성이였던 삶을 다르게 살아보고 싶은 마음도 있었던 것 같다. 한국에서는 내 스스로의 힘으로 어찌할 수 없는 한국 사회에 대한 비관과 불만이 많았는데 지금 아일랜드에 있는 나는 여전히 불만 투성이의 삶을 살고 있다. 아일랜드의 정치 사회는 내 문제가 아니라 힘들이지 않고 지나치지만, 내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없는 것들; 렌트 문제, 직장 문제가 최근까지는 가장 큰 우려꺼리였다. 특히 렌트집을 구하고 싶다고 해서 내 마음대로 되지 않는 시스템에 대한 불만이 매우 컸고 그에 대한 스트레스도 이만저만이 아니었다. 상위 매니저와의 불통은 현재 내 포지션에 대한 불만을 가지고 오기도 했다. 연봉 상승이 없는 이 포지션에서 벗어나 새로운 직장을 찾으려고 링크드인을 들어가고 CV를 수정하고 지원을 하지만 마땅한 소식은 없는, 그 와중에 주변에서는 이직도 잘하는 모습을 보니 내 자신이 쳐지는 느낌을 받았다. 약 2년 전 이 포지션에 합격하기 위해 얼마나 스스로 애를 닳았는지 생각하면 지금 난 배가 부른 것일까. 워크퍼밋이 발급됐다는 이메일을 받았을 때 얼마나 행복했는지.
물론 초기의 마음가짐에서 많이 달라진 내 마음가짐을 탓할 생각은 없다. 어떤 부분은 더 나아가고 싶은 마음가짐이기 때문이다. 다만 항상 다른 곳을 바라보며 '저곳에 있으면 더 나을텐데, 더 행복할 수 있을텐데' 하는 내 마음가짐을 바꿔야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지금을 비관하며 내 스스로가 없는 곳에 대한 환상을 품지 말고 지금을 바꿔나가고 싶다. 기자 생활 당시 누가 나에게 레즈비언이냐고 물었을 때 당당하게 그렇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워홀을 떠난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말도 안 되는 주제로 기사를 쓰라고 하던 부장의 말에 그럴 수 없다고 말했으면 어땠을까. 사회의 문제도 있지만 내 스스로 사회를 탓하고 있던 것은 아닐까. 나를 속여온 것은 지금까지 나 스스로가 아닐까. 지금을 바꾸지 못하면 언젠가 다른 장소에 있을 나 스스로를 바꿀 수 없을 것 같은 생각이 든다. 쉽지 않겠지만 그래도 조금씩 실천하고 있다. 그렇게 조금씩 현재를 즐길 수 있는 스스로가 되고 싶다. 중구난방의 글이 됐지만 이런 것도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