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아는 일본인 할머니는 93세 치매 환자이다. 할머니를 모시고 사는 딸은 일본어 강사로 일을 하고 있다. 둘은 서울 서촌에 있는 일본식 가옥에 살고 있다. 그 옛날 할아버지가 일본 상사의 주재원으로 서울에 근무했을 때 사둔 집을 리모델링하였다. 할아버지는 5년 전에 서울에서 타계했다. 유난히 한국에 대한 애착심이 강했던 모양이다.
딸은 일본에서 대학을 졸업하고 부모와 함께 서울에 정착했으며 이미 60대 중반을 넘어섰다. 남동생은 도쿄에 거주하고 있다.
할머니는 할아버지의 사후 유족연금으로 생활을 하고 있다. 매일 데이케어센터(돌봄이 필요하신 어르신을 낮 동안 노인 돌봄 전문가가 상주하며 안전하게 돌봐드리는 곳)에서 하루를 지낸다.
또 외국인이라 의료보험 혜택을 못 받고 병원에 다니기에 본인 부담액이 상당하다.
가끔 영상통화를 하면 아들 얼굴을 보고서 이름을 불렀는데, 이제는 이름은 물론 얼굴조차도 까먹었다. 딸에게도 당신은 누구냐며, 아줌마라고 부른다. 곁에 있는 딸조차 전혀 기억을 못 하는 것이다. 한집에서 같이 살아왔음에도 불구하고 할머니가 치매에 걸리면서 딸의 이름과 얼굴을 잊어버렸다.
치매도 막바지로 치달으면서 한 여름인데도 겨울 옷을 꺼내 입는다. 감각이 무뎌지고 있는 것이다. 대표적인 치매 증상을 예로 들면, 숫자가 두 자리를 넘어가면 읽지 못한다. 예컨대 11이라는 숫자가 있으면 1과 1, 즉 하나 하나로 읽는다. NHK 방송을 틀어 놓고 옛날 노래가 나오면 흥얼거리는 정도이다.
할아버지가 한국에 살았을 때 같이 근무했던 한국인 동료들이 있었는데 지금은 지방에 살고 있다. 그런데 이 분들은 퇴직 후 몇십 년이 지났어도 돈독한 관계를 유지하고 있다. 서로의 근황을 알리면서 수시로 연락을 취하고 있고, 김장 때는 김치도 보내 준다. 또 서울에 오면 반드시 인사하러 오곤 한다. 아직도 끈끈한 정을 유지하고 있는 걸 보면 할아버지가 따뜻한 사람이었나 보다.
할머니는 조금씩 식사는 하고 있지만 씹는 것을 잊어버렸다. 딸은 음식을 최대한 잘게 다져서 부드럽고 삼키기 쉽게 제공한다. 그렇게 소식을 함에도 불구하고, 몸집이 왜소한 할머니가 옷을 안 갈아입겠다고 버틸 때는 완강한 힘을 발휘한다.
나는 가끔 이 할머니의 치매 진행 과정을 듣곤 했는데, 그때마다 정도가 심각해져 가는 모습에 많이 서글펐다. 타국에서 점점 병세가 나빠지는 모습에 연민의 정이 느껴졌다.
수구초심(首丘初心)이 발동되어 일본에서 마지막을 맞이하고 싶은지, 자꾸만 “집에 가자, 돌아가자”를 중얼거린다. 그럴 때마다 딸은 기지를 발휘하여 지금 바깥이 깜깜하니 내일 가자며 만류를 하고, 그러면 할머니는 그냥 주저앉는다. 그런데 대낮에 가겠다고 고집을 부리면 집 밖으로 데리고 나오는데, 문 밖에 나오자마자 왜 나왔는지를 까먹고 멍하니 서있는다. 그러면 동네 한 바퀴 돌고서 다시 집으로 간다. 수십 년을 한국에서 살았음에도 우리말을 거의 못 하니 만약에 길을 잃어버리고 헤매면 큰일이다. 물론 딸은 한국어를 잘하지만 말이다.
딸은 예전에 혼자서 우리나라 방방곡곡 여행 다니는 것을 좋아하여 구석구석까지 돌아다녔다. 그런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신 뒤 할머니와 단 둘이 남게 되면서 그 좋아하는 여행을 갈 수가 없게 되었고, 일본에도 못 가본다. 할머니를 돌보느라 꼼짝달싹 못하는 신세가 된 것이다.
게다가 할머니가 밤에 깨어 있어 본인도 잠을 설치므로 삶의 질이 매우 나빠졌다. 할머니는 주중에 데이케어센터에 다니므로 집에 없지만, 주말에는 오로지 집에서 낮잠만 주무신다. 그러다 밤에 일어나서 배고프다고 보채면 요구르트 하나를 건네주면서 달래곤 한다.
아직 미혼인 딸은 일하는 시간을 제외하면 오로지 할머니를 돌보며 사는 일에 열중하고 있다. 가끔 일본의 남동생이 서울에 오면 할머니 곁에 있으라고 맡긴다. 그러면 반나절도 지나지 않아 엄마 돌보기 힘들다는 말을 내뱉는다. 누나는 매일 보살피는데 남동생은 그것이 어려운 모양이다.
병원 의사조차도 할머니가 이제 고령의 중증치매이니 더 이상 투약할 의미가 없다며 약을 끊어보자고 하였다. 그래서 한 달 전부터는 아예 치매 약을 안 먹기 시작했더니, 오히려 삶의 질이 좋아졌다. 갑자기 딸의 이름을 불러서 깜짝 놀랐던 적도 있고 총기가 돌아온 것처럼 느껴진다. 식사도 더 잘하게 되어, 도대체 이것이 어떤 변화인지 당황스럽다.
중증 치매환자들에게 치매의 진행을 지연시키는 약이 무슨 효과가 있을까? 거대 제약기업들이 천문학적인 비용을 쏟아부으며 신약개발에 몰두하고 있지만, 아직까지 근본적인 치매 치료약은 발매되지 않았다. 약이 문제가 아니라 집에서 돌보기 어려워 요양병원에 보내버리면, 두 달이면 온몸의 근육이 다 빠져버려 몸 상태를 더 악화시킨다는 기사도 보았다. 사람이 못 먹고 못 걸으면 세상을 떠나기 마련이다.
효심이 지극한 딸이 곁에서 개호(介護)를 해주고 데이케어센터에 나가면서 관리를 해주고 있는 것이 오히려 환자에게 더 좋은 것일까? 외국인이라 요양병원에 쉽게 못 보낸 것이 더 나은 선택이었을 수도 있다.
이 딸처럼 현명하게 할머니를 모실 수 있을까? 일반적으로 치매증상이 나타나면 환자에게 야단을 치거나 타박을 해대곤 하는데, 딸은 아예 마음을 내려놓고 속으로 삭이며 어머니가 원하는 대로 받아내 준다.
이런 이야기를 들으니 치매 환자를 대하는 보호자의 자세가 매우 중요하다는 생각이 든다.
이제 할머니는 본인이 태어난 일본으로 돌아가 여생을 보내도 좋을 것이다.
언젠가 세상을 떠나면 먼저 가서 기다리고 있을 할아버지를 만나 천년 해로 하기만을 기원해 본다.
*이 할머니는 서울의 요양병원에 입원하신 지 두 달 만인 2024년 12월 18일에 타계하셨습니다. 고향에서 마지막을 맞이하지 못하셔서 안타깝습니다. 다만 밤잠을 설쳐가며 간병한 따님은 이제부터 자유로운 삶이 전개되겠습니다.
삼가 고인의 명복을 빕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