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아야 한다
부자지간불책선(父子之間不責善)
-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아야 한다 -
아이를 키우며 가장 많이 듣는 말이 있다.
“남의 자식 가르치는 건 쉬워도, 내 자식 가르치는 건 어렵다.”
정말 그렇다.
평생 교육을 업으로 삼았다는 선생님도 마지막까지 남는 난제는 ‘자기 자식’이라고 했다.
다른 사람을 가르칠 때는 일정한 거리가 있다.
하지만 내 아이 앞에서는 그 거리가 사라진다.
감정이 들어오고, 기대가 끼어들고, 서운함이 뿌리를 내린다.
아이가 내가 원하는 만큼 변하지 않으면 답답하다.
답답함이 화로 바뀌고, 화는 말의 날을 세운다.
그 순간, 우리는 가르치는 것이 아니라 상처를 주게 된다.
공자는 왜 아들을 가르치지 않았을까?
공자에게는 공리(孔鯉)라는 아들이 있었다.
명실상부한 성인의 아들.
누군가에게는 부러움의 대상이었겠지만, 공자는 아들을 직접 가르치지 않았다.
그저 “詩를 읽어보거라, 禮를 배워보는 게 어떻겠느냐” 하고, 지나가는 말처럼 건넬 뿐이었다.
가르칠 능력이 없어서가 아니라, 가르치려는 마음이 오히려 관계를 해칠 수 있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이다.
부모가 자식을 가르칠 때, 무심코 해버린 한마디가 수년의 상처가 되어 돌아올 수 있다는 것을 그는 알았다.
그는 깨달았다.
“아이와의 관계는 가르침이 아니라, 인연이어야 한다.”
맹자는 이렇게 말했다.
부자지간불책선(父子之間不責善)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선(善)을 강요하거나 옳고 그름을 따지는 관계가 아니다.
핏줄로 이어진 인연 앞에서는 정답을 가르치려는 순간, 마음이 멀어진다.
상대방의 부족함을 잡아내는 데 집중하면 결국 그 인연도 함께 깎여나간다.
완벽한 자식도, 완벽한 부모도 없다
사람이 관계를 망치는 데는 대단한 짓이 필요 없다는 것을 우리는 늦게야 배우게 된다.
“이 정도는 해야지.”
“왜 그것도 못 해?”
“내 마음을 왜 이렇게 모르느냐?”
이 말속에는 사랑이 아니라 기대가 담겨 있다.
기대가 상처가 되고, 상처가 벽이 된다.
어쩌면 부모 자식 사이에서 가장 필요한 말은 가르침이 아니라 이해일지도 모른다.
오늘, 이렇게 말해보면 어떨까
“괜찮아. 너는 너의 속도로 가.”
그리고 이렇게 말하는 사람도 필요하다.
“괜찮아. 나도 완벽한 부모가 아니야.”
부모는 자식을 통해 완벽을 이루려 하지 말아야 하고,
자식은 부모에게서 완벽한 사랑을 기대하지 않아야 한다.
그저 함께 있음이 기적이고 감사할 뿐이다.
우리가 기억해야 할 단 한 문장.
부자지간불책선: 부모와 자식은 서로에게 완벽함을 바라지 않는다.
- 가장 맘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이라고 합니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