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퇴자의 고민

출근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by 글사랑이 조동표

은퇴자의 고민

- 출근하지 않으면 사라지는 것들


은퇴자를 향한 이런 말이 있다.

지금까지 쌓아온 직장 경험과 노하우가 있으니, 그래도 돈벌이를 해야 한다는 말.

수익을 만들고, 소득을 올려야 한다는 말.

맞는 말이다. 틀리지 않다.


그런데 또 다른 말도 있다.

수익을 내기 위해 비즈니스를 하다 보면, 결과는 잘 나오지 않고 돈도 안 되는데 스트레스만 쌓인다는 말.

그러니 아무 일도 하지 말고 쉬라는 말.

이 말 역시 틀리지 않다.


이 두 문장은 서로 싸우고 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사실은 동시에 맞는 말이다.

그래서 갈등은 더 깊어진다.


돈을 벌자니 마음이 닳고, 일을 하지 않자니 삶이 공허해진다.

사무실에 출근하지 않는 날이 이어지면 하루는 느슨해지고,

느슨해진 하루는 곧 ‘의미 없음’이라는 단어로 번역된다.


아무도 나에게 출근하라고 하지 않는데

나는 여전히 출근하지 않는 나를 의심한다.


수익을 만들기 위한 시도는 늘 그럴듯하게 시작된다.

경험이 있으니 잘할 수 있을 것 같고,

연결된 네트워크도 있고,

머릿속에는 이미 완성된 그림도 있다.


하지만 막상 시작해 보면,

돈은 생각보다 늦게 들어오고,

스트레스는 생각보다 빨리 찾아온다.


결과가 없는 노력은 사람을 지치게 한다.

특히 ‘이미 한 번 충분히 일해본 사람’에게는 더 그렇다.


그렇다고 아무것도 하지 않으면 괜찮아질까.

아니다.

출근하지 않는 삶은 잠시 자유로울 수는 있어도, 오래 지속되면 정체성을 잠식한다.


나는 일을 하지 않는 사람이 아니라 역할이 없는 사람이 되어 간다.


이 갈등은 의지의 문제가 아니다.

선택을 잘못해서 생긴 문제도 아니다.

인생의 국면이 바뀌는 지점에서 생기는, 아주 정상적인 충돌이다.


문제는 우리가 자주 두 가지를 한 번에 해결하려 든다는 데 있다.

돈도 벌고, 의미도 찾고, 스트레스는 적고, 삶은 단단하길 바란다.


하지만 이제는 알게 된다.

돈의 논리와 의미의 논리는 같은 엔진으로 돌아가지 않는다는 사실을.


그래서 나는 이렇게 생각해 보기로 했다.


돈을 벌기 위한 일은 욕심을 버린 채, 검증된 영역에서만 하자.

확장도, 성장도, 증명도 내려놓고 그저 마음을 안정시키는 정도의 현금 흐름이면 충분하다고.


대신 의미를 느끼는 일에는 돈을 붙이지 말자.

출근의 형식만 남기고, 성과도 평가도 없는 나만의 역할을 만들자.


이 둘을 분리하지 않으면 나는 계속 같은 자리에서 흔들릴 것이다.


출근하지 않으면 의미 없는 삶 같다는 느낌은 게으름 때문이 아니다.

그건 오랫동안 ‘역할 있는 사람’으로 살아온 이들이 공통으로 겪는 정체성의 공백이다.


그러니 지금 필요한 건 더 큰 수익도, 더 그럴듯한 사업도 아니다.


지금 필요한 건 나를 다시 부를 수 있는 작은 역할 하나다.


요즘 나는 이런 문장을 스스로에게 건넨다.


“나는 이제 돈을 벌기 위해 나를 증명하지 않아도 되고, 의미를 느끼기 위해 무리해서 돈을 벌 필요도 없다.”


이 문장이 마음속에 자리 잡자 선택의 압박이 조금 느슨해졌다.


출근하지 않는 날도 이전보다 덜 불안해졌다.


아마 이 정도면, 지금의 나는 잘 가고 있는 중일 것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