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지막 말은 질문으로 남는다

이어령 선생과 이병철 회장

by 글사랑이 조동표

마지막 말은 질문으로 남는다

- 이어령 선생과 이병철 회장


누구에게나 마지막에 남는 말이 있다면 그것은 무엇일까.


사랑일까.

어떤 별의 이름일까.

혹은 오래 떠나온 고향의 이름일까.


2022년 1월, 이어령 선생은 죽음을 한 달 남짓 앞두고 이 질문을 종이 위에 남겼다.


“나에게 남아 있는 마지막 말은 무엇인가?”

그는 곧바로 선을 긋듯 적어 내려간다.

“시인들이 만들어낸 말은 아닐 것이다.”


마지막 말은, 아름답게 다듬어진 언어가 아니라는 선언.

그는 평생 언어로 세계를 해석해 온 사람이었지만, 끝에서는 언어의 한계를 먼저 인정한다.


그가 찾고 있던 말은 이 세상에 있는 말이 아니었다.

“이 세상에는 없는 말 흙으로 된 말이 아니라 어느 맑은 영혼이 새벽 잡초에 떨어진 그런 말일 것이다.”


그 말은 개념도 아니고,

사상도 아니고,

철학도 아니다.


새벽의 잡초 위에 잠시 맺혔다 이내 사라지는 이슬처럼, 존재했다가 설명되지 않는 말.


그러나 그는 끝내 고백한다.


“하지만 그런 말이 있는지 나는 알 수 없다.”



시간을 거슬러 올라가면 1987년, 또 다른 질문이 있다.


삼성 창업자 고 이병철 회장이 죽음의 문턱에서 스스로에게 던진 스물네 개의 질문.


“신이 있다면 왜 자신의 존재를 드러내지 않는가.”

“인간의 영혼은 존재하는가.”

“부유한 자는 과연 악한가.”

“우주의 끝은 있는가.”



그 질문들은 경영자의 언어도, 성공한 자의 언어도 아니었다.

그저 한 인간이 자신이 쌓아 올린 모든 성취 너머에서 처음으로 마주한 질문들이었다.


1987년의 질문은 성취의 끝에서 터져 나왔고,

2022년의 질문은 사유의 끝에서 가라앉았다.


이병철은,

“이 모든 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를 물었고,

이어령은,

“끝에서 무엇을 말할 수 있는가”를 물었다.


질문의 방향은 달랐지만 그들이 서 있던 자리는 같았다.

더 이상 답으로 건널 수 없는 자리.


이어령은 이렇게 적는다.


“내 몸이 바로 흙으로 비저 젓기에 나는 그 말을 모른다.”


몸이 흙으로 돌아가는 존재임을 인정하는 순간, 언어는 더 이상 소유할 수 없는 것이 된다.


그래서 그는 확신하지 않는다.

마지막 말이 무엇인지도,

그 말이 존재하는지도.


다만 이렇게 남긴다.


“죽음이 죽는 순간 알게 될 것이다.”


이병철의 질문도 그 지점에서 멈춰 있다.


그는 답을 찾지 못했다.

그러나 질문을 포기하지도 않았다.


성공은 그에게 답을 주지 못했지만, 질문을 시작하게 만들었다.


우리는 흔히 성공을 답이라고 믿는다.

성과를 설명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이 두 사람은 서로 다른 시대에서 같은 결론에 이른다.


답은 남지 않는다.

질문만 남는다.


말은 사라지고,

확신은 무너지고,

마지막까지 남는 것은

“나는 무엇을 묻고 있었는가”라는 태도다.


이병철은,

성취의 끝에서 질문을 남겼고,

이어령은,

언어의 끝에서 질문에 머물렀다.


죽음 앞에서 거목은 다시 인간이 된다.


그리고 그 순간,

우리에게 남는 것은

마지막 말이 아니라

마지막 질문이다.


그 질문을

우리는 아직 살아 있는 동안

조용히 품고 있을 뿐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