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에 대하여
나를 믿지 못하는 마음에 대하여
- 선택과 질책
살다 보면 선택을 해야 할 순간이 생각보다 자주 온다. 큰 선택이든 작은 선택이든, 우리는 수없이 결정을 내리고 그 결과를 감당하며 하루를 이어간다.
돌아보면 잘된 선택도 분명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상하게도 그런 선택은 금방 잊힌다. 혹은 더 정확히 말하면, 나 자신은 그것을 굳이 기념하지 않는다. 잘된 선택은 당연한 일, 혹은 크게 기뻐할 필요가 없는 일로 취급되곤 한다.
반면 잘못된 선택은 오래 붙잡혀 있다. 지나친 후회와 집착, 그리고 스스로를 향한 비난이 뒤따른다. 왜 그때 그렇게 했을까. 왜 다른 길을 생각하지 못했을까. 왜 더 신중하지 않았을까. 잘못된 선택은 마치 교과서의 오답표처럼 남고, 틀린 문제를 다시 확인하듯 매일 나를 소환한다.
겉으로는 “나를 아끼며 살자”, “나를 가장 사랑해야 한다” 같은 말을 쉽게 한다. 그러나 정작 나는 나에게 그리 관대한 편이 아니다. 아니, 오히려 매일 내 선택을 날카롭게 채점하는 심사관 같다. 나를 향해 칼날을 세우고, 후회라는 흠집이 보이면 빠짐없이 표시하고 기록한다.
이것은 바람직한 태도일까. 때로는 자기 성찰이라 부를 수 있다. 스스로를 객관화하고 다음 선택에서 더 나은 판단을 하려는 노력일지도 모른다. 그러나 지나치다 싶을 때도 있다. 비난이 성찰을 밀어내고, 상처가 통찰을 대신할 때가 있기 때문이다.
사람이 매일 최선만을 택할 수는 없다. 살아 있는 동안은 늘 선택을 하고, 그 가운데 하나쯤은 틀리기도 한다. 그러니 후회가 없는 삶이 아니라, 후회를 견디는 삶이 아마 더 현실적인 목표일지 모른다.
나는 아직도 나를 믿는 연습을 하는 중이다. 스스로에게 여유를 주고, 잘못된 선택을 했던 지난날을 함께 살아온 동반자로 인정하는 연습. 비난 대신 이해를, 채점 대신 관찰을, 후회 대신 책임을 택하는 연습.
완벽한 선택보다 필요한 건 완벽하지 않은 나를 받아들이는 힘일 것이다. 매일 내가 나에게 지는 싸움이 아니라, 매일 나와 함께 살아보는 연습 말이다.
*이미지: 네이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