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름 영어표기 유감

이름의 순서를 바꿀 때,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는가?

by 글사랑이 조동표

이름 영어표기 유감

- 이름의 순서를 바꿀 때, 우리는 무엇을 내려놓는가


여권을 만들던 날을 기억한다.

창구 직원이 아무렇지 않게 말했다.

“영문 이름은 성을 뒤로 쓰시면 됩니다.”

그 순간 나는 망설이지 않았다.

오랫동안 그렇게 해왔고, 모두가 그렇게 했기 때문이다.

그런데 문득 이상했다.

왜 우리는 외국어 앞에서만 순서를 바꾸는가.

왜 이름 앞에 붙은 ‘성(姓)’을 그렇게 쉽게 뒤로 미루는가.


이름의 순서는 단순한 형식이 아니다.

그 안에는 한 사회가 사람을 어떻게 부르는지, 개인을 어떤 질서 속에 두는지가 고스란히 담겨 있다.

한국에서 이름은 언제나 ‘성-이름’의 구조였다.

그 순서 자체가 한국어이고, 한국 문화이며, 정체성이었다.


언젠가 서울대 국어교육과 로버트 파우저 교수의 글을 읽으며, 내가 막연하게 느끼던 불편함의 실체를 비로소 언어로 확인했다.


홍길동은 ‘Gil-dong Hong’이 아니라 ‘Hong Gil-dong’이어야 한다는 말.

외국인이 모를 것 같아서, 편하니까, 관행이니까 바꿔왔던 그 선택이 사실은 우리 스스로의 정체성을 조금씩 덜어내는 과정이었다는 지적 앞에서 나는 고개를 끄덕일 수밖에 없었다.


우리는 너무 쉽게 말한다.

“외국 사람들은 모르니까.”

하지만 정말 모를까.

아니면 우리가 설명하지 않았을 뿐일까.

일본인도, 중국인도 영어로 자신의 이름을 쓸 때 '성 이름'의 순서를 지킨다.


그들은 불편을 감수하면서까지 자기 언어의 질서를 고집한다.

그 고집이 곧 문화이고, 자존이다.


정체성은 거창한 구호에서 만들어지지 않는다.

국가나 민족을 외치기 전에, 사람은 먼저 일상의 언어로 자신을 증명한다.

어떤 이름으로 불리고, 어떤 순서로 불리는가.

그 반복된 습관이 한 사람을 만들고, 그 사람이 모여 사회가 된다.


요즘 우리는 ‘세계화’라는 말에 너무 익숙하다.

표준화, 효율, 글로벌 스탠더드.

그 말들이 편리함을 가져다준 것은 사실이다.

하지만 그 편리함 속에서 우리는 얼마나 많은 것을 내려놓았을까.


발음을 맞추느라 의미를 잃고, 형식을 맞추느라 뿌리를 흐릿하게 만들지는 않았을까.


한글날이 되면 우리는 자주 자부심을 말한다.

그러나 진짜 자부심은 기념일이 아니라 평범한 하루의 선택에서 드러난다.


이름을 쓰는 방식 하나, 부르는 호칭 하나, 작고 사소해 보이는 언어 행위 속에 정체성은 살아 있다.


나는 이제 서명할 때 내 이름의 순서를 다시 생각한다.

불편하더라도, 설명이 필요하더라도 ‘나’라는 사람의 출발점을 쉽게 바꾸지 않기로 한다.


이름의 순서를 지킨다는 것은 과거로 돌아가자는 말이 아니라, 나 자신을 잊지 않겠다는 다짐에 가깝다.


세계는 넓고, 우리는 계속 연결될 것이다.

그러나 연결된다고 해서 모두 같은 모양일 필요는 없다.

각자의 언어와 질서를 품고 있을 때 세계는 오히려 더 풍요로워진다.


이름 하나 지키지 못한다면 우리는 무엇을 지킬 수 있을까.


나는 오늘도, 내 이름을 부르는 방식부터 다시 생각해 본다.


Cho Dong-pyo는 Dong-pyo Cho가 아니다.



*이미지: 구글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