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순수로 돌아가는 일
돌 사진 속의 어른아이
- 다시 순수로 돌아가는 일
내 핸드폰 배경은 돌 사진이다.
얼굴은 둥글둥글, 눈은 초롱초롱 맑았다.
한 살 아기는 정면을 응시하고 있다.
사진 아래에는 선명하게 ‘전주 인물사진관’이라 적혀 있다.
그 시절에는 돌 사진을 남기는 이가 많지 않았다. 아마도 나는 장남이었기에, 부모님이 기념 삼아 사진관을 찾았던 모양이다.
낯설고 조용한 스튜디오 안에서 아기는 어떤 마음이었을까. 무슨 생각을 했을까.
어쩌면 생각이라는 것보다 앞을 바라보는 감각에만 집중했을지도 모른다.
일어서는 두 다리가 버거워서 중심을 잡는 데 온 신경을 쏟았을 수도 있다.
어쨌든 그 순간만큼은 맑고 투명한 봄이었다.
그로부터 60여 년이 흘렀다.
그 사이 몸은 달라졌고, 머릿속은 더 어지러워졌다.
나이를 먹는다는 것은 생애의 무게가 쌓이는 일임과 동시에, 불순물이 들어오는 과정이기도 하다.
음식과 환경, 습관과 질병, 경험과 지식, 걱정과 강박...
돌 때의 맑음은 조금씩 흐려지고, 잡념과 과업이 빈틈없이 들어찼다.
문득 돌 사진을 바라보는 이유가 무엇인지 스스로에게 묻게 된다. 그 시절로 돌아갈 수 있어서가 아니다. 돌아갈 수 없음을 알기 때문에 더욱 바라보는 것이다.
돌의 몸은 깨끗했고, 돌의 눈은 순수했다. 기억에도, 의식에도, 이해에도 오염이 없었다.
이제 나는 중년에서 노년으로 넘어가는 길목에 서 있다.
안 아픈 날이 드물고, 몸은 잦은 고장을 호소한다. 머릿속은 늘 분주하고, 해야 할 일은 많아 보이고, 잡념은 끝이 없다. 강박도 있다. 그러나 돌의 나는 그런 감각을 알지 못했다. 아예 배워본 적도 없다.
사진 속의 아기는 단지 앞을 보고 있었다.
그저 서 있었다.
그게 전부였다.
돌 사진을 배경으로 두고 사는 일은, 언젠가의 나를 부르는 일이다. 이미 지나간 시절이지만, 아직 사라지지 않은 상태를 기억하자는 일이다.
나는 어른아이가 되고 싶다.
비록 노년으로 들어가더라도, 마음만큼은 영원히 어린이처럼 맑을 수 있지 않을까.
그 가능성을 놓지 않는 일이야말로 삶의 마지막 사치이자 기도인지도 모르겠다.
오늘도 나는 핸드폰을 켜며 돌 사진을 마주 본다.
돌의 눈동자는 여전히 반짝이고, 그 맑음은 내 시선 위로 천천히 번져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