담담하지만, 단단한 소설가 최은영식 소설은 그때나 지금이나 마음을 채우고 생각을 비우게 한다. 책을 읽다보면 생각이 많아 질 때도 있지만, 생각이 비워질 때도 있다. 생각을 채워야, 비울수도 있는 거지만, 그녀의 책은 생각을 많이하게 하고 그 생각을 비우는데 시간이 필요하다. 뭔가 마음을 채우게 하지만, 채워지지 않는 감정들을 담담하게 표현하면서 마음을 단단하게 만든다. 평소 최은영 작가님의 소설을 좋아한다. 그녀의 소설은 화려하진 않지만, 담백함 속에서 느껴지는 삶이 있다. 감정의 결에 공감된다. 평범한데, 평범하지않은 그런 보이지 않는 인간의 결핍이 담겨있다. 그녀의 소설 속엔 그녀들이 있다. 평범한 우리의 일상에서도 한번쯤 만났을 법한 그녀들의 삶이 담겨 있다. 풍족해서 마음 편히 사는 여성보다, 풍족하지 않기에 책임감있게 살아가는 여성들이 있다. 그것이 누군가에는 치열함으로 보일테고, 또는 용감하게 보일 수도 있겠다. 하지만 말로 보이기보다 행동으로 보이는 그녀들의 삶을 관찰하는 게 소설 속 재미다.
- ”다들 너무 격양된 것 같은데, 발표자 글이 그 사건을 직접 다루는 글도 아니잖아요. 발표자는 그래도 편향되지 않고 균형감 있게 잘 쓴 것 같은데요.“ 누군가 그렇게 말했을 때, 나는 아무렇지 않은 척했지만 수치스러웠다. 내가 그 글을 쓰면서 남들에게 어떻게 읽힐지 의식했다는 사실을 나도 알고 있었기 때문이다. 내가 하고 싶은 말, 표현하고 싶은 생각이나 느낌을 그대로 담았을 때 감상적이라고, 편향된 관점을 지녔다고 비판받을까봐 두려워서 나는 안전한 글쓰기를 택했다. 더 용감해질 수 없었다. ”지금 이 발표자의 글이 그렇다는 건 아니지만.“ 그녀가 입을 열었다. 그녀는 어떤 사안에 대한 자기 입장이 없다는 건, 그것이 자기 일이 아니라고 고백하는 것밖에는 되지 않는다고 말했다. -p.31 단편 [답신]은 가족에게 편지를 쓰고 싶게 한다. 엄마에게, 아빠에게, 이모에게, 고모에게, 올 가을엔 가족들에게 편지를 쓸거야. 소설 속 이야기는 아프고 아리지만, 그 속에서 가족의 소중함을 깨닫게 된다. 옆에 있어도, 곁에 있어도, 곁에 없는, 옆에 없는 사람이 되는 게 아니라, 곁에 없어도, 옆에 없어도 마음만은 하나인 사이, 그런 가족이 되길.
- 나의 숨은 흰 수중기가 되어 공중으로 흩어졌다. 나는 그때 내가 겨울의 한가운데에 있다는 사실을 알았다. 겨울은 사람의 숨이 눈으로 보이는 유일한 계절이니까. 언젠가 내게 하고 싶은 말을 참으며 긴 숨을 내쉬던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 보일 것처럼 떠올랐다. 그 모습이 흩어지지 않도록 어둠 속에서, 나는 잠시 눈을 감았다. - p.45
- 밤 비행을 할 때면, 검은 하늘을 날아가고 있을 때면 나는 종종 멀리서 나를 바라보는 이모를 느낀다. 이모의 시선은 조종실 너머에, 비행기 너머에, 밤하늘과 대기 너머에 있다. 희박한 공기와 낮은 온도, 여러 층을 올라가면 결국 사라지는 대기와 우주공간의 시작. 내가 아는 하늘은 그런 것이지만, 그런 순간에 나는 문득 옛날 사람들의 믿음을 떠올린다. 환한 낮이 아니라 어두운 밤에만 지상에 닿는 저 너머의 눈빛이 있다는 믿음을 말이다. -p. 265
덤덤하고 담담하게 사람의 마음을 울린다는 건 쉬운 일이 아니다. 아주 희미한 빛도 캄캄한 어둠 속에서 만나면 하나의 큰 빛으로 반짝인다. 그녀의 글은 맑은 오후 하늘의 구름이 아니라, 어두운 밤 하늘에 달같은 감동을 준다. 피는 물보다 진하다는 말을 지지하지 않는다. 가족을, 혹은 부모 자식 간을 말할 때 그리 표현하는데 가족은 물같기를 바란다. 소설 속 그녀는 글을 쓰는 것에 애정을 가지고 있다. 삶의 낙일수도 있고, 삶을 버티는 방법일수도 있고, 삶을 기록하는 것 자체가 습관이 되었을수도 있겠다. 홀로 글을 쓸수도 있겠고, 누군가에게 편지를 쓰거나 소통을 위한 글을 쓸수도 있겠다. 소설 속의 인물만이 아니라, 글을 쓰는 행위는 말하는 것보다 깊이있는 힘을 가지고 있다. 말은 강하지만, 글은 깊이가 있다. 나는 이 소설을 통해 작가는 강하기보다 깊은 사람이라는 생각이 든다. 말보다 글로 소통하는 그녀의 삶 속에서 한명의 독자로서 늘 그녀를 응원하겠다. 고마워요, 최작가님. 당신의 소설을 묵묵히 사랑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