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runch

You can make anything
by writing

C.S.Lewis

by 최은진 Oct 09. 2023

관광객이 만나는 릴, 브라드리부터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2022 프랑스 브라드리, 비유 릴, 보자르 미술관, 크리스마스 마켓까지

프랑스에 처음 발을 내디뎠던 작년 8월 말. 올해 8월 안으로 모든 교환학생 글을 다 작성하기로 먹었던 마음은 장렬하게 실패했다. 올해를 살다 보니 다른 소재도 많이 생기고, 그래서 순서가 밀리고.. 뿐만 아니라 글을 하나 쓰는 데에 생각 외로 품이 많이 든다. 사진을 고르고, 구조를 정하고, 대략 어떤 말을 쓸지 생각한 후에 한 단어, 한 문장씩 구체화해 나가기 때문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브런치를 쓴다는 것은 설렘이 존재한다. 글을 쓰기 위해 꺼내본 사진이 다시 보니 생각 외로 좋다든가, 당시엔 정리되지 않았던 감정을 글로써 풀어낸다든가, 하나의 글을 마무리 지으면 나중에 돌아볼 글이 생겼구나 하면서 뿌듯함까지도 느낄 수 있기 때문이다.


벌써 5개월 전, 여전히 프랑스를 하루에도 몇 번씩 생각할 때 릴에서 살았던 추억을 글로 적어두었다. 하나의 글에 릴을 다 담기 어려웠기에 관광객으로서 돌아본 릴은 나중에 쓰기로 했었는데 이제야 쓴다. 9월이 되면 유럽에서 가장 많은 사람이 모이는 곳, 프랑스 릴의 또 다른 이야기를 시작한다.


* 이 글은 2022년의 이야기를 기준으로 합니다.



브라드리 드 릴 (Braderie de Lille)

유럽 최대 규모의 벼룩시장이 이곳, 프랑스 릴에서 열린다. 학기가 막 시작한 당시 이런저런 오리엔테이션을 다니면 빠지지 않고 나오던 주제가 바로 '브라드리'였다. 유럽의 가장 큰 벼룩시장이라고, 이번 주말에 열린다고, 홍합이 그렇게나 유명하다고. 코로나 때문에 3년 만에 재개되는 것이라 그런지 설명해 주는 이들도 좀 더 상기된 듯한 느낌이었다.


브라드리 당일 친구들은 일찍부터 구경에 나섰지만 왠지 끌리지 않았던 나는 느지막이 혼자 기숙사를 나섰다. 대체적으로 원래 뭘 센스 있게 사는 편이 아닌 터라 분위기가 적응하기 어려울 거라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한국에서부터 오프라인 쇼핑이란 구매의사가 조금이라도 있는 사람들에게나 허락된 일인 것 같고, 또 혹여나 찾으시는 거 있냐고 말이라도 걸면 멋쩍게 웃다가 자리를 뜨는 스타일인지라 생각보다 이것저것 구경을 하진 못했다.


기숙사로부터 얼마 떨어지지 않은 성당 안에서까지 물건을 팔고 있었다. 귀엽지만 너무 작아서 나에겐 필요가 없는 작은 컵을 살짝 들어보는 정도로 소심한 구경을 했다. 옆에서는 이제 막 릴에 도착한 나와 같은 처지의 다른 나라 유학생이 밥솥을 흥정하고 있었다. 저렴한 가격에서 더 깎아서 사가는 걸 보고 '나도 밥솥 없는데' 하는 생각이 스쳤다. 이전까진 관심도 없던 밥솥을 괜히 놓친 듯한 기분이 들었던 기억이 난다. 다시 생각하니까 웃기네.


이날 나는 브라드리에서 사람을 제일 많이 봤다. 다들 신나 보였다. 출국 직전까지 한국에서 코로나를 걱정했었는데 이곳은 완전히 다른 세상 같았다. 나도 마스크 없는 자유를 느낄 수 있음에 감사했던 것 같다.


그리고 그랑플라스에 문어 다리가 있어서 이게 뭔지 궁금해서 검색까지 해봤는데 난 아직도 이게 뭔지 모른다. 이 근처에 오니 디제잉도 하고, 문어 다리도 움직이고 벼룩시장이라기보단 축제에 온 것 같았다.


대충 구경을 하고 친구들을 만나 점심을 먹기로 했다. 브라드리하면 대표적인 홍합 요리 물 프리트 (Les moules frites)가 유명하다. 누구에게 브라드리의 설명을 듣든 브라드리가 끝나면 홍합 껍데기가 몇 톤이 나온다는 소리를 들을 것이다. 그만큼 브라드리와 홍합은 짝꿍이다. 난 친구가 홍합을 시킨다길래 괜히 고기를 시켰는데 저 작은 다섯 조각의 고기에 2만 2천 원을 냈다. 게다가 소스에서 맥주맛이 나서 내 스타일이 아니었다. 먹을 만하다는 친구들에게 고기를 다 주고 나는 감자튀김만 먹었다. 그래도 친구의 홍합은 맛있었다. 브라드리에선 홍합을 먹자! 다들 먹는 데엔 이유가 있다.



비유 릴 (Vieux Lille)

매일매일 여행을 갈 순 없으니 아무 일이 없는 날엔 친구들이랑 릴에서 놀러 나갔다. 비유 릴은 오래된 릴, 구시가지를 의미한다. 그래서인지 브랜드 제품들을 쇼핑할 곳도 많고, 예쁜 곳들이 많았다. 친구들이랑 여기서 트러플 꿀도 맛보고, 뭐가 기념품으로 유명한지 정보를 들은 덕에 나중에 가족들이 파리에 놀러 왔을 때 선물을 사서 갈 수 있었다.


처음에는 이곳이 비유 릴이라는 명칭이 있는 걸 몰라서 가로수길 같다고 가로수릴이라 했었던 기억이 난다. 그만큼 편집샵도 많고, 예쁜 카페도 있고, 분위기도 좋은 곳이다.


비유 릴에서 제일 좋아했던 맛집은 '타이거밀크'다. 추천!!



보자르 미술관 (Palais des Beaux-Arts de Lille)

모두가 아는 파리 루브르 박물관. 루브르 박물관이 프랑스에서 가장 크다면 두 번째로 큰 박물관이 릴에 있다. 바로 보자르 미술관이다. 학교 시티 투어 시간에도 보자르 미술관에 대한 설명을 들었기 때문에 언젠가 한 번 가봐야지 하는 생각을 가지고 있었다.


이미 여러 친구들은 다녀왔었고, 나는 언제 가야 좋을까 고민하고 있었다. 혜택이 많은 프랑스이기 때문에 미술관을 돈 주고 가기 싫어서 무료입장인 날을 찾아봤는데 마침 근처에 헤리티지 데이가 있었다. 헤리티지 데이가 뭔지 잘 모르겠어서 덩케르크 가는 기차 안에서 버디인 플로하한테 물어봤던 기억이 난다.


European Heritage Day는 유럽 문화유산의 날로 매년 9월 세 번째 주말이다. 평소에 비공개인 명소들을 공개하기도 하고, 이렇게 미술관 무료입장도 진행한다. 프랑스에서는 이렇게 무료로 볼 수 있는 날이 많으니 잘 노려보다가 날짜 맞춰 가는 건 필수이다.

 

두 번째로 크기 때문에 규모가 정말 크기도 하고, 유명한 작가의 작품도 많았다. 모작을 하는 장면을 볼 수도 있었고 생각보다 볼거리가 많았다. 그래도 나는 예술 작품을 봐도 잘 모르겠던데 그림 하나하나 집중해서 보는 내 친구들이 신기했다. 그리고 아무래도 중세 시대 작품은 성경을 좀 알아야 더 잘 이해되는 부분도 있는 것 같다고 느꼈다.




릴 크리스마스 마켓

유럽의 겨울은 단연 크리스마스 마켓이다. 해가 짧아지고, 매서운 추위가 들어친 릴에게도 한줄기의 즐거운 소식, 크리스마스 마켓이 찾아왔다.


크리스마스 마켓은 11월 중순부터 12월 말까지 진행됐다. 길고 뾰족한 크리스마스 트리와 대관람차가 크리스마스가 다가왔음을 알렸다. 왼쪽은 낮의 사진이고, 오른쪽은 밤의 사진인데 오른쪽은 프랑스가 월드컵 결승 진출이 확정된 날이라 그런지 사람이 정말 많을 때 찍은 사진이다.


나는 학교가 끝나고 플로하, 승희랑 함께 크리스마스 마켓에 갔다. 쾰른이나 파리보다 크진 않았지만 그래도 기숙사 근처에서 크리스마스 마켓을 즐기는 게 좋았다. 동그란 츄로스와 방쇼를 사 먹었는데 고도로 발달한 츄로스는 도넛과 다를 게 없다. 방쇼를 마시고 컵을 보관하고 싶어서 가져가려 하는데 주변에서 컵을 호시탐탐 노리는 게 느껴졌다... 이 컵을 반환하면 보증금을 돌려주기 때문에 내가 버리면 가져가려는 것 같았다.


마켓을 둘러보고 맨날 보고 지나치기만 했던 대관람차를 탔다. 한국 거보다 빠르고, 안전바도 없고 뭔가 조금 더 무섭다. 그래도 내가 대관람차를 타면서 찍은 가운데 사진을 너무 좋아하는데 낭만만큼은 한가득이었다.




나는 릴이라는 도시를 좋아했다. 내가 릴에서 너무 좋아했던 것 중에는 이 도시의 브랜딩도 있다. 삐죽삐죽한 소문자와 대문자가 섞인 로고. 브라드리에서 이 로고를 처음 만나고 기숙사에 돌아오자마자 이 로고에 대해서 찾아봤었다. 가장 왼쪽에서 보이는 이 로고는 수년 동안 도시 경관의 재생과 수많은 문화 프로젝트에 전념해 온 릴의 정체성을 담아 2013년에 새로 도입된 로고이다. 파리와 릴에 본사가 있는 디자인 에이전시 Register가 맡았다는 것도 인상적이었다.

https://www.register-design.com/case_study/ville-de-lille/


또 릴 유럽역으로 가는 길엔 'lille 3000'도 볼 수 있다. 이는 lille 2004라는 국제적인 문화 행사를 통해 문화와 예술의 도시로 변화하는데 성공한 릴이 유럽 문화 수도로 선정된 역동성을 이어가는 것을 의미한다. 이렇듯 릴은 멈추지 않고 나아가는 도시이다. 그렇기 때문에 작년의 릴에 머물러 있는 이 글과 다르게 올해의 릴은, 내년의 릴은 또 다를 것이라 생각한다.

매거진의 이전글 헤밍웨이의 말처럼 움직이는 축제였던 파리
작품 선택
키워드 선택 0 / 3 0
댓글여부
afliean
브런치는 최신 브라우저에 최적화 되어있습니다. IE chrome safar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