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술관과 패션위크, 헤밍웨이와 센강 따라 산책까지.
“파리는 내게 언제나 영원한 도시로 기억된다, 어떤 모습으로 변하든, 파리를 평생 사랑한다. 파리의 겨울이 혹독하면서도 아름다울 수 있었던 것은 가난마저도 추억이 될 만큼 낭만적인 도시 덕분일 것이다. 만약 당신에게 충분한 행운이 따라 주어서 젊은 시절 한때를 파리에서 보낼 수 있다면, 파리는 마치 움직이는 축제처럼 남은 일생에 당신이 어딜 가든 늘 당신 곁에 머무를 것이다. 바로 내게 그랬던 것처럼.” - 헤밍웨이 1950년 인터뷰
헤밍웨이는 파리를 '움직이는 축제'라고 표현했다. 많은 사람들처럼 나도 파리에 대한 로망을 가지고 있었지만 그 어떤 말보다 '움직이는 축제'라는 말이 날 설레게 했다. 도대체 파리는 어떤 곳일까? 지금에 와서 내 기억 속 파리를 돌아보면 관광객이 많았고, 번잡했고, 불편한 점이 많았다. 첫인상도 좋지 않았다. 그럼에도 나는 이 도시를 '움직이는 축제'라고 표현한 헤밍웨이의 말에 공감했다. 2022년의 내가 1950년의 헤밍웨이에게 공감하게 한 파리의 이야기를 풀어본다.
파리는 문화예술이 가득한 도시임을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모나리자와 루브르, 오르세 등 익히 들어본 박물관이 모두 파리 중심에 위치한다. 릴을 교환학생할 곳으로 고른 데에는 문화예술이 풍부한 대도시 파리와 가깝다는 게 가장 컸다. 릴에 가기 전 파리에서 3일을 보내기로 결정한 나는 가장 먼저 오랑주리 미술관을 다녀왔다. 아무래도 모네의 수련 연작이 가장 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사실 여러 번 인터넷에서 접한 그림이라 그런가 엄청 큰 감동은 없었다. 주말에 간 것도 한 몫했다. 사람이 너무 많았다. 그렇지만 덕분에 다양한 색감의 패션을 자랑하는 각국의 사람들이 그림을 감상하는 걸 보는 게 더 재밌었다.
릴에서 교환학생을 하던 중 하루는 오로지 오르세 미술관을 목적으로 혼자 파리에 다녀왔다. 인상주의 작품이 많고 건축이 멋있어서 꼭 가보고 싶었기 때문이다. 프랑스에 있는 동안 현대 미술엔 흥미가 없고, 인파를 제칠 힘도 남지 않은 탓에 퐁피두와 루브르는 쿨하게 패스했다. 유명하다는 이유만으로 관심이 없는 미술관을 가고 싶진 않았다. 하지만 그럼에도 다녀왔다면 느끼는 것은 분명히 있었을 거라 생각한다.
오르세 미술관은 기차역이었던 오르세역의 건축 가치를 인정받아 원래의 모습을 유지한 채 미술관으로 리모델링되었다. 건축적 의미의 원래 가치를 보존하면서도 미술관으로 재탄생시켜 새로운 가치를 창출할 수 있는 점이 멋있었다. 오른쪽 사진에 보이는 시계가 이곳이 원래 기차역이었음을 실감케 했다.
그림을 잘 모르는 나도 아는 작품이 많아서 재밌게 감상했다. 트로카데로 광장에서 바라봤던 에펠탑, 이모랑 둘이 다녀왔던 예술의 전당 로트렉전, 코끼리 바위에서 내려다본 에트르타 바다까지. 잊고 있었던 많은 기억을 끄집어내 주었다. 이 많은 유명한 작품을 한곳에서 볼 수 있는 것은 다시 생각해도 놀랍다.
샹젤리제 거리에는 명품 브랜드들이 즐비해있다. 길을 걷다가 루이뷔통 건물에 달린 동그란 장식이 귀여워서 찍었는데 쿠사마 야요이와의 콜라보였다. 쿠사마 야요이 조형물이 건물 위에 설치되기도 했는데 나는 설치 전에 다녀와서 보지 못해 아쉬웠다.
까르띠에 옥외광고도 미관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원래의 건물과 어울리게 하는 게 인상적이었다. 바르셀로나와 밀라노 성당에 걸린 갤럭시 옥외광고와 너무 비교되었다. 이런 광고처럼 성당의 멋을 해치지 않는 선에서 할 순 없었을까? 싶었다.
또 파리 패션위크를 위해 당일치기로 파리에 다녀온 적도 있다. 3대 패션위크 중 하나인 파리 패션위크의 분위기를 내가 언제 느껴보냐 싶어서. 수업이 없는 날 가다 보니 갈 수 있는 쇼가 한정적이었고, 아크네 쇼장 앞에서 패션위크의 분위기를 느껴볼 수 있었다.
이 앞에서 에르메스 버킨백의 뮤즈인 제인 버킨, 카일리 제너, 루엘 등 여러 해외 스타들을 봐서 신기했다. 2019년에 루엘을 봤었는데 파리에서 우연히 다시 봤다는 게 가장 신기했다. 그리고 역시는 역시 답게 카일리 제너는 오기 전에 스태프들까지 난리가 났었던 기억이 난다.
패션위크를 준비 중인 모습도 여럿 접했고, 팔레드 도쿄, 루브르 등 도시 전체가 패션쇼장이 되는 것을 알 수 있었다. 이날 비로소 헤밍웨이가 말한 도시 전체가 축제라는 말에 공감했다. 동시에 내가 왜 교환학생으로 프랑스를 선택했어야 했는지 의미를 찾은 날이었다. 어딜 가도 도시 전체가 가득 채워져 있는 느낌은 파리에서만 받을 수 있었다.
사실 생각해 보면 파리를 방문하는 동안 아무것도 하지 않은 시간도 많았다. 가족들이 파리에 와서 루브르랑 오랑주리를 구경하는 동안 나는 밖에 앉아 커피 한 잔과 함께 책을 읽었다. 볼 게 너무 많은 도시라 짧은 여행에선 누리기 힘든 여유를 느끼며 할 일 없는 파리도 참 좋구나 생각했다.
또 그냥 생각 없이 걷기도 많이 걸었다. 셰익스피어 앤드 컴퍼니 서점, 물랑루즈 등 헤밍웨이와 로트렉의 발자취를 찾아보기도 했다.
하루는 헤밍웨이를 따라 소르본 대학 근처를 걷다가 우연히 판테온에 다다랐고 역사적 인물들을 만났다. 빅토르 위고, 마리 퀴리, 장자크 루소의 묘지를 봤다. 친구의 설명으로 알게 된 판테온 건물 외부에 쓰여 있는 멘트는 '조국이 위대한 사람들에게 사의를 표하다.'라는 의미였다. 파리 중심에 이런 공간이 있다는 점은 배울 점이라고 느꼈다. 나라에서 위인을 위해주는 것, 그리고 그 방식이 멋있었다.
센 강변을 따라 걷기만 해도 좋고, 어디서나 에펠탑이 보이는 파리는 정말 좋았다. 서울의 1/6 정도인 작은 도시 크기로 인해 오밀조밀 모여 있어 더 가득 찬 도시라고 느꼈던 것 같기도 하다.
파리 시청사 앞에는 2024년 올림픽 로고가 세워져 있었다. 지금도 이렇게 도시가 가득 찬 느낌인데 2024년 올림픽 때는 또 얼마나 풍요로워질까 궁금해졌다. 파리 올림픽은 기존 스포츠 경기장뿐만 아니라 에펠탑 아래 샹 드 마르스 공원, 나폴레옹의 유해가 안장된 앵발리드, 베르사유 궁전 등 문화유산들을 경기장으로 활용할 것이라고 알려져 있다.
귀국 후 프랑스 건축가 25인의 한국 건축 여행기를 담은 <봉주르 한국 건축>이라는 책을 읽었다. '서울의 시간은 파리보다 열 배쯤 빨리 흐르는 것 같다. 파리라는 도시는 좀처럼 변하지 않는다. 100년 전 모습을 고스란히 간직한 동네도 많다. 파리가 늘 한결같은 모습을 유지해 온 도시라면, 서울은 어제와 오늘이 다른 도시다. 매년 서울을 여행한다면 아마 매년 다른 모습을 보게 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라는 구절이 인상적이었다.
돌이켜 생각해 보면 오래되고 낡은 것을 사랑하는 사람이라 파리가 좋았던 것 같다. 느리게 흐르는 파리의 시간 덕에 헤밍웨이의 말에 공감할 수 있었다고도 생각한다. 오늘로부터 또다시 72년 후 파리를 방문한 누군가 또한 헤밍웨이의 말을 이해할 수 있을 것 같다. 파리는 그런 도시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