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타트업 '삼분의 일' 업무 스토리
※ 현재 저는 삼분의일에 몸담고 있지 않습니다. 아래 내용은 삼분의일 초기 때, 제가 주장했던 '일하는 방식'과 결과물 등 정리한 것입니다. 현시점에서는 아래와 같이 일하지 않을 가능성이 있으니 참고 바랍니다.
우리는 작다. 하지만 이룬 성과는 놀랍다.
회사를 설립하고 1년 동안 무료로 사용할 수 있는 사무실을 얻었다. 억대의 자금을 마련했고, 생산과 품질 관리를 도울 협력사를 만들었다. 제조업의 '제'자도 모르는 청년들이 오롯이 1000시간을 투자해 1125가지 조합 속에서 멋진 시제품을 만들었다. 제품 출시를 대비한 홍보물에 대한 기획과 운영 관리 시스템, 고객 만족 시스템의 기본적인 틀까지 갖추었다.
이것은 6개월 동안 단 3명이서 한 일이다. 당연히 대표와 디자이너, 마케터로서 각자가 맡은 일도 수행했으니, 모두가 합심하지 않았다면 이뤄내기 힘든 성과였다.
사실 우리도 놀랐다. 6개월 동안 이것을 다 할 수 있을까? 하며 세운 계획의 상당수를 이뤘기 때문이다. 우리는 발생한 내부 문제를 잘 해결하고 지금까지 잘 달려왔다. 돌이켜보면 아주 단순한 몇 가지의 방법 덕분이다.
알다시피 모든 스타트업은 초반에는 합심해서 일한다. 하지만 상당수는 시간이 지날수록 구성원 간의 합의점을 찾는데 골머리를 썩힌다. 커뮤니케이션 비용은 늘어나고 불화가 생긴다. 계획대로 일이 진행될 리가 없고, 어느 순간 회사는 사라진다. 살아남더라도 고질병을 앓는다.
우리의 해결방법은 단순했다.
같은 마음으로 일하고, 효율적으로 일하고, 할 일은 명확하게
다시 말하지만 아주 단순한 방법이다. 그렇지만 누구나 옳은 것은 알아도 실천하기 힘든 초등학교 도덕 교과서처럼, 실천하기란 매우 힘들다. 우리는 깊은 고민 끝에 다음과 같은 3가지 실천 방안을 마련했다.
브랜딩: 직원 모두가 한 마음으로 일하기 위해서 우리가 누구인지, 무엇을 해야 하는지 명확하게 설명해줄 수 있는 기준이 필요하다. 가장 좋은 방법은 브랜드다.
업무 매뉴얼 만들기: 업무 방식을 통일하고 불필요한 논쟁과 시간 낭비만 줄여도 업무 효율이 올라간다. 이를 위한 업무 매뉴얼을 만든다.
목표와 성과지표 만들기: 목표 달성에 필요한 것은 성과다. 성과를 만드는 것은 '일'이다. 따라서 목표와 성과가 명확해야지만 할 일 또한 명확해진다.
※ 이 글에서 상세히 다루는 내용은 업무 매뉴얼입니다. 목표와 성과지표 만들기는 다음 편에 다룰 예정이며, 브랜딩에 관한 내용은 삼분의 일 디자이너 늘보님의 브런치 글을 링크하니 참고 바랍니다. 하지만 업무 매뉴얼을 설명하는 데 있어 필요한 브랜딩 요소는 생략하지 않고 소개하겠습니다.
처음부터 업무 체계가 갖춰진 스타트업은 없다. 대부분 출·퇴근 및 점심시간을 정하고, 각자 맡은 업무 영역을 나누는 것에서부터 시작한다. 이후 여러 시행착오를 반복하며 이메일이나 슬랙과 같은 도구를 사용하고, 문서 도구(MS 오피스, 구글 오피스 등)를 통일하고, 업무 양식도 만들고, 미팅 규칙도 정한다. 이런 과정을 겪은 후에야 '회사가 어느 정도 잘 굴러간다'라고 할 수 있는 체계가 만들어진다.
그런데 이 과정이 순탄치가 않다. 하나의 규칙을 정할 때마다 긴 시간을 회의에 투자해야 한다. 새로운 도구를 도입하려면 동료를 설득하느라 중요한 업무를 못 한다. 경험과 인품을 갖춘 리더나 동료, 조언자가 있다면 매우 빠른 시간에 해결될 수 있다. 하지만 주로 혈기왕성한 청년(혹은 중년)들로 구성된 대부분의 스타트업에게 요원한 일이다.
업무 매뉴얼은 이런 과정을 없애주는 역할을 한다. 우리는 초기에 만든 업무 매뉴얼 덕에 겪었을지도 모를 지난한 과정을 빠르게 해결했다.
우리는 업무 매뉴얼을 거창하게 만들지 않기로 했다. 불필요한 논쟁과 시간 낭비를 줄일 수 있는 몇 가지 규칙과 업무 방식을 통일하는데 집중했다. 내용의 완성도는 새 직원이 읽고 '여기는 이런 식으로 일을 하는구나'하는 수준이면 충분하다. 그리고 수정 이력과 편의성을 위해 위키 방식의 웹문서로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우리가 선택한 것은 구글 사이트다.
매뉴얼 카테고리는 크게 4가지로 정리했다.
회사 규칙: 근무 시간, 휴가 정책 등
회사 문화: 핵심 가치
도구: 회사에서 사용하는 도구(이메일, 협업 툴 등)의 사용법 및 용도
업무: 회사의 주요 업무 프로세스
※ 회사 규칙은 말 그대로 회사 고유의 정책을 정리한 것이므로 상세하게 다루지 않는다.
회사 문화(기업 문화)에 대한 정의는 사람마다 회사마다 다 다르다. 게다가 회사의 규모와 처해진 상황에 따라 달라질 수 있다. 그래서 우리는 직원들의 행동 규범과 의사결정에 영향을 주는 핵심 가치만 만들기로 했다. 그 이상의 내용은 회사의 성장과 함께 보완하기로 결정했다.
핵심 가치를 만드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 브랜딩에서 결정된 사항을 반영했기 때문이다. 앞서 링크로도 소개했던 삼분의 일의 디자이너 늘보님이 작성한 글(브랜딩은 린하게, 합리적인 선에서)에서 확인할 수 있는 것처럼 우리는 3가지 핵심 가치를 만들었다.
합리적인: 이유가 타당하고 납득이 간다. 꼼꼼하게 따져보고, 꼭 필요한 것만 간결하게 제시한다.
전문적인: 우리가 가장 잘 알고 능숙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계속 연구하고 분석한다.
섬세한: 사용자에게 관심이 많다. 주의 깊게 관찰하고 친절하게 다가간다.
이 핵심 가치를 만든 후 우리는 복잡한 선택 상황에서 보다 빠른 결정을 내릴 수 있었다. A/B 선택지가 있을 때 '이것이 합리적인가, 전문적인 선택인가, 섬세한 접근인가'하며 우리끼리 물었다. 그렇게 묻다 보면 문제의 답은 의외로 명쾌하게 나오는 경우가 많았다.
도구 부분은 "1. 도구의 사용 목적과 선정 / 2. 도구 매뉴얼. 이렇게 만들었다"로 나눈다.
시작하는 우리를 위해서 많은 지인들이 '편의성, UI, 장기적으로 필요해' 등의 이유로 여러 도구를 추천해줬다. 모두 매력적인 도구였지만 이 모든 것을 사용할 수 없었다. 업무를 위해 도구를 사용하는 것이 아닌, 도구를 사용하기 위해 일을 하는 미련한 행동을 할 것만 같았다. 그래서 우리는 도구를 사용하는 목적(≒용도)이 무엇인지부터 접근했다.
공유: 업무에 필요한 아이디어와 정보를 쉽게 공유할 수 있는 도구
논의: 공유한 아이디어나 정보에 대해 쉽게 논의(혹은 질의)할 수 있는 도구
오피스: 프레젠테이션, 스프레드시트, 양식화된 문서 제작이 가능한 도구
아카이브: 암묵적 합의(논의를 통해 합의한 것을 문서화하지 않고 머리 속에만 넣는 행위)에 의한 분란을 피하기 위해 합의 과정부터 결과까지 논의 내용을 성문화 할 수 있는 도구
업무 관리: 도구를 활용해 개인 및 팀 업무를 효율적으로 관리
자료 보관: 중요 문서 및 대용량 파일 등을 보관
가벼운 커뮤니케이션: 기록으로 남길 필요가 없는 가벼운 메시지를 전하기 위한 도구
매뉴얼: 직원들이 반드시 알아야 할 정보와 규범, 자주 참조하는 문서를 작성하고 확인할 수 있는 도구
도구를 사용하는 목적이 정해지니 어떤 도구를 사용할지 분명해졌다.
이메일(공유, 논의, 아카이브), 슬랙(가벼운 커뮤니케이션), Meister Task(업무관리), 구글 오피스(오피스), 구글 사이트(매뉴얼), 구글 드라이브(자료 보관)
도구 선정보다 중요한 것은 도구를 어떤 식으로 사용하느냐다. 아무리 좋은 도구라도 직원들이 같은 목적으로 사용하지 않으면 의미가 없다. 따라서 가능한 상세하게 만들었다. 아래는 삼분의 일 업무 매뉴얼 중 이메일에 대한 내용이다.
이메일은 가장 중요한 커뮤니케이션 도구다. 논의와 질의, 아이디어와 정보 공유 등이 용이하며, 모바일에서도 언제든지(사무실 밖에서도) 필요한 정보를 쉽게 찾을 수 있다.
① 제목
반드시 구체적으로 적는다. 가능한 검색어를 고려한다. 이메일을 검색해야 하는 경우가 있기 때문이다.
② CC
이메일 스레드가 진행됨에 따라 해당 내용을 계속 알고 있어야 하는 멤버를 반드시 CC 한다. 어떤 멤버가 해당 내용을 알아야 하는지 판단하기 어렵다면, 가능한 많은 멤버들을 CC로 추가한다.
③ 내용
가능한 제목에서 벗어나지 않는다. 제목과 어느 정도 연관은 있지만 이메일 스레드에서 주로 논의하고 있는 내용과 밀접하지 않다면, 새로운 이메일 스레드를 개설해 내용을 공유한다. (기존에 생성된 이메일 스레드 중에서 공유하고자 하는 내용과 연관성이 높은 것이 있다면, 이를 활용해도 된다)
④ 유의사항
가벼운 대화나 일정과 업무에 관해 특정 멤버가 잊고 있을 때 이를 상기시키기 위한 내용 등은 '슬랙'을 활용한다. 업무에 도움이 되는 정보나 리서치 결과, 회의 내용은 이메일 통해 공유한다. 관련된 멤버를 CC 하면 불필요한 절차를 줄일 수 있다.
⑤ 구글 사이트(매뉴얼)
이메일 스레드를 통해 정리된 중요한 사항과 절차, 규정, 계획 등은 정리하여 반드시 구글 사이트에 올린다. 구글 사이트는 우리의 노하우와 무엇을 배웠는지를 체계적으로 정리한 매우 중요한 곳이며, 지속적인 업데이트로 관리를 해야 한다.
이메일 외에도 모든 도구에 대한 용도와 유의 사항을 정리해서 문서화했다. 그리고 각 도구와의 연관 관계에 대해서도 정리했다. 예를 들어 자료 공유를 할 수 있다는 점에서 이메일과 용도가 겹칠 수 있는 오피스의 경우 "이메일로 공유하기 적절하지 않은 양식이거나 지원하지 않는 기능이 필요할 경우에 구글 오피스를 사용한다."와 같은 항목을 추가했다.
그리고 우리가 선택한 도구는 아니지만 어쩔 수 없이 사용해야 하는 도구에 대한 항목도 추가했다. 예를 들어 "기타 (Ms Office, Adobe Software etc...) - 특정 업무를 수행하는데 반드시 필요한 도구 (일러스트레이터 등), 제휴사에 문서를 보낼 때에 워드나 파워포인트를 사용할 수 있다"이다.
매뉴얼을 만든 후 우리의 업무 방식이 달라졌다. 이메일 매뉴얼에 따라 우리는 모든 논의 사항과 새로운 아이디어 제안, 회의록을 전부 이메일로 공유했다. 그리고 공유한 내용에 대한 피드백과 추가 진행 사항을 전부 스레드로 남겼다. 지난 업무와 관련해 뒤늦게 분쟁이 발생해도 스레드에 남겨진 내용으로 인해 더 큰 분쟁으로 이어지지 않고 마무리됐다.
하지만 업무를 진행하면서 기존 매뉴얼에 한 가지 카테고리가 더 필요함을 깨닫게 됐다. 바로 업무 영역별 매뉴얼이다. 현재 삼분의 일의 구성 인원은 3명이기에 한 사람이 개인 사정으로 인해 잠시 일을 못하게 된다면, 회사 전체 업무의 삼분의 일이 마비가 된다. 해결이 급한 중요 이슈가 발생했는데 담당자가 없으면 대처를 못하는 것이다. (경험상 이런 이슈는 회사 규모가 커져도 발생한다)
이에 우리는 담당자 부재로 인한 위기 사항 대처뿐만 아니라 미래를 대비한 인수인계 절차 간소화, 새 직원을 위한 교육 자료를 목적으로 업무 영역별 매뉴얼을 만들기로 했다. 그리고 기존 매뉴얼을 지속적으로 버전 업하기 위한 간단한 프로세스를 만들었다.
다른 멤버의 피드백 혹은 논의가 필요한 경우
① 예를 들어 '샘플 제작 기획안'을 만든다면,
② 초안을 이메일로 공유하고 피드백을 요청 (사안에 따라 커뮤니케이션 툴이나 업무 관리 툴로 피드백 요청)
③ 피드백의 내용을 반영해 기획안 완성
④ 해당 기획안에 대한 가치 판단 (단발성 프로젝트인지, 오랜 시간 참조되는 것인지)
⑤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면 해당 기획안을 프로세스화 해서 구글 사이트에 업로드
(ps. 이 과정 중에 회의를 하는 경우가 빈번하게 발생했는데, 간혹 회의가 매우 길어질 때가 있었다. 그래서 '회의 매뉴얼'을 만들었다. 그로 인해 우리의 회의는 항상 짧고 굵게 진행됐다. 이에 대한 내용은 다다음 글로 다룰 예정이다.)
다른 멤버의 피드백이 필요 없는 내용인 경우
① 예를 들어 '협력사 정보'라는 내용을 정리한다면,
② 해당 내용은 제품 생산이라는 업무에 있어 중요한 정보로 판단
③ 업무 담당자는 협력사에 대한 주요 정보와 주요 담당자 연락처를 구글 사이트에 업로드
긴 논의가 필요 없는 경우
① 예를 들어 직원 간의 호칭을 정한다면,
② 이메일로 논의하지 않아도 되는 사안이라 판단
③ 슬랙으로 멤버들에게 호칭에 대해 묻고 대화를 나눈 뒤 결정
④ 호칭은 회사 문화에 영향을 끼치는 것이므로 구글 사이트에 업로드
위 과정을 바탕으로 만든 삼분의 일의 업무 매뉴얼 카테고리를 간단히 소개한다.
1. 회사 규칙: 출·퇴근 시간, 휴가 정책
2. 회사 문화: 회사의 목표, 우리는 누구인가, 어떻게 일할 것인가(핵심 가치, 목표와 성과지표, 팀 워크 - 팀 프로젝트 절차)
3. 도구: 이메일, 슬랙, 구글 사이트, 구글 오피스, Meister Task, 기타
4. 회의 규칙: 회의 유형별 회의 방법, 회의 필수 요건
5. 업무 - 생산관리: 제품 생산(납기, 비용, 품질 관리), 협력사 관리, 운송 및 반송
6. 업무 - 마케팅: 브랜드 전략, 매체 운영 및 판매 촉진 전략
7. 업무 - CS(고객만족)
아직 제품 출시 전이기 때문에 생산 관리와 마케팅 일부, CS에 관한 전반적인 부분은 기획단계에 있다. 기획 단계가 끝나는 대로 매뉴얼로 만들 예정이다.
우리는 브랜딩과 업무 매뉴얼만으로도 일의 효율이 대폭 올라간 것을 '체감'했다. 하지만 두 가지는 우리가 한 마음으로 잘 일할 수 있게 도와주는, 밑거름 역할이다. 진정한 계획 달성의 첨병은 '목표와 성과지표'였다.
업무 매뉴얼에 대해 이야기하느라 숨 가빠진 손가락의 호흡을 잠시 고르고, 우리가 어떤 식으로 목표를 설정하고 성과지표를 만들었는지는 다음 글로 소개하려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