완벽해져야 한다는 강박관념

Vietnam #1

by GABI

'떠나자'라는 말과 함께 티켓팅으로 이어지는 순간까지 고작 4~5시간밖에 걸리지 않았다. 해외여행이 이토록 쉬운 거였다면, 우리가 이제까지 만난 3년여 동안 왜 한 번도 하지 못했을까 싶을 정도로. 그렇게 쉽게 표는 예약되었다. 그리고 내가 여권이 만료된걸 깨닫기까지는 오래 걸리지 않았지. 여권번호를 알려달라는 조군의 말에. 잠시 카톡 사이의 공백이 존재했다. 해외여행에서 '여권'을 떠올리지 못한 나의 무지함과 꽤 오랜 기간 동안 해외를 다니지 않았다는 오만가지 생각이 머리를 스쳤다. 다행히 비행기를 타기까지는 일주일의 시간이 있었고, 그 사이 여권을 만든다면 충분하다는 사실을 네이버를 검색하고 알았다. 내가 무너진 첫 번째 이야기.


티켓은 조군의 몫이었고, 호텔은 나의 몫이었다. 호텔스컴바인을 통해 다낭을 검색해 호텔부터 리조트까지 살펴보기 시작했다. 필리핀 여행 땐, 현지에 가서 숙소를 구했었고 일본 출장은 이미 숙소가 정해져 있었다. 그러고 보니 내 손으로 직접 예약한 적도 없는 초짜였다. 서른두 살의 나는 처음해 보는 숙소 예약 앞에서 한없이 작아졌다. 그러다 일은 일어났지. 술을 좀 마시고 예약을 했고, 굳이 3번이나 예약을 한 것이다. 왜 그랬는지까지 이야기하면 너무 구질구질해지니깐. 그것보단 예약 취소도 안 되는 '예약'이었다는 걸 다음 날에 안 이후로 머리 위에서부터 발끝까지 떨어진 자존감과 무너진 내 마음들. 내가 무너진 두 번째 이야기.


연이은 두 번의 무너짐과 병원에 계시는 엄마를 두고 여행을 갑자기 떠난다는 죄책감, 책임을 지고 해왔던 일들. 여행 가기 전까지 들뜸따윈 없고, 스트레스만 뒤를 이었다. 아, 장염까지 겹쳤었지.


그렇게 여행을 떠나게 되었고, 도착한 날 새벽 공항에서 택시를 잡아타고 숙소 주소를 내밀었다. 약 20분을 달렸을까. 글쎄, 관광지라고는 생각 들지 않는 곳에 우리를 내려다 주었다. 기사양반도 우리가 딱 봐도 관광객인데, 너네 이곳은 구경하기 좋은 곳은 아니야라고 짧은 영어로 충고까지 날려주었다. 우리도 도착하자마자 알았거든.

IMG_1452.JPG 잠만 겨우 자기 위해 구했던 아주저렴한 호텔

문을 열고 들어서자 꽤 나이 많아 보이는 노인 한 분이 우릴 맞이했고, 영어는 못했고, 그래도 숙소 키를 용케 받아냈다. 방문을 열었을 때, 분명 난 오션뷰를 예약했는데 저 멀리 보이는 게 그 오션이란 말인가. 그런 실망감을 마음에 두고 잠이 들었다. 새벽에 조군 핸드폰이 깨지는 사건까지 겹치자, 뭔가 이번 여행 불길하다는 말도 안 되는 생각도 했지. 말도 안 되는 저렴한 가격에 2인 조식까지 포함되어 있어, 일단은 내려가 보았다. 생각보다 다양한 메뉴와 친절한 사람들. 조군은 혹시 근처에 애플 수리점이 있는지 물었고, 주소를 알려주면서 혹시 그 사람들이 영어를 못하면 자기에게 전화하라며 번호까지 알려주었다.

이렇게 예정에도 없는 다낭 시내를 가게 되었다는 것. 그것도 오토바이를 빌려서. 단돈 2,000원에.

어찌나 그 시간이 재미있었는지. 구글맵을 켜고 처음 가보는 그곳을 오토바이로 달리는데, 행복해서 계속 꺄르륵 걸렸다. 수많은 오토바이 부대와 그들의 삶 속으로 내가 쏙 들어간 기분이랄까. 그들은 왜인지 모르겠지만, 우리가 길을 물을 때마다 한없이 친절했고 우리가 가고자 하는 길을 찾을 때까지 모두가 우릴 안내해주었다.

또 그 수많은 오토바이들은 신호등 하나 없는 교차로에서 어찌나 서로 잘도 피해서 다니는지. 법이 없으니, 서로를 더욱 굳게 믿어주는 게 그들의 법인 듯 보였다.

IMG_1457.JPG 차보단 오토바이가 주 교통수단, 더 신기한 건 경찰이 없지만 모두 헬멧, 마스크를 다 쓰고 다닌다는 것
IMG_1459.JPG 오토바이와 자전거 등 구분없이 도로 위를 질주한다


그렇게 핸드폰 수리까지 친절하게 잘 받고 돌아와 숙소에서 샤워를 하려고 욕실에 들어갔는데. 목에서 어떤 '울컥'함이 올라오더라. 왜 모든 것에 그렇게 악을 쓰고 완벽하려 했을까.

사소한 것 하나에, 일어났던 모든 일에 예민했던 내가 안쓰렵고, 안쓰러웠다. 모두 다 잘 진행되었고, 우린 무사히 도착했으며, 또 이렇게 좋은 사람들과 경험을 얻었는데. 난 무엇을 위해 그렇게 예민했을까. 왜 여행에서 조차 완벽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을까.


걱정인형이었던 나에게 매번 '괜찮다'며, 모든 게 다 잘될 거라고 말해주었던 조군은 지금 카지노에 가고, 나는 홀로 남아 글을 쓴다. 지금 이 시간을 기억하고 기억해야지. 훗날, 일에 치이고 사람에 치이고 모든 것에 치여 말도 안 되는 못된 여자로 변해있을 때 꼭 이때를 떠올려야지.



keyword
매거진의 이전글리틀프레스 페어 참가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