슬로우 라이프 무비. <산의 톰씨, 2015>
영화 제목의 영문은 Mountain days with Tom-san, 바로 산에 들에 둘러싸인 집에 사는 고양이 톰과 사람들의 이야기다. 고즈넉한 이 곳에선 직접 가꾼 밭에는 채소가, 닭장에는 달걀이, 염소들에게서는 우유와 치즈가 난다. 아, 언뜻 보았을 때 이 얼마나 평화로운가 하겠지마는 나는 전원생활이 전쟁임을 안다. 심지어 집고양이처럼 바구니에서 얌전히 자란 톰에게도 고요를 깨는 막중한 임무가 있으니, 쥐를 잡아야 한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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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도심 속 전원생활
결혼 전 나는 서울 도심 속 전원생활을 했다. 전원일기에서 볼 수 있을 듯한 마당과 연못이 있는 옛날식 주택 집이다. 몇 번 드라마 촬영지였던 우리 집은 지금도 종종 방송국 촬영팀이 섭외를 하러 온다. 화면 속 집은 분위기 있을지 모르나, 직접 살아본다면? 다른 이야기다. 마당과 연못이 잡초와 벌레, 모기의 서식지고 단독주택의 긴 지붕은 쥐들의 대운동장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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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무
비명소리가 들리면 누군가는 총대 메고 벌레를 잡아야 한다. (비명소리는 나, 벌레 담당은 주로 남동생) 여름에 집에 붙어 자라는 덩굴들이 무성해지면 집이 습해져 곰팡이와 벌레가 활개를 친다. 이건 사다리를 타고 팀으로 움직여 전깃줄 가까이까지 자란 덩굴을 잘라내야 한다. 겨울밤에는 자기 전 뜨거운 물을 똑똑 틀어놔 수도관 동파를 막았다. 너무 조금 틀어놓으면 바로 동파되었기에 적당한 물줄기를 내주어야 한다. 그렇게 해도 1년 겨울 중 2번은 동파되어 보일러가 나갔다. 그럴 땐 해빙 전문 기술자가 필요하다. 정원 일 중 공동의 목표는 눈에 보이는 족족 잡초들 뽑아내기, 물고기 밥 주기는 옵션, 나무 가지치기는 봄날, 그 외에도 계절마다 집 소독약 치기, 겨울에 연못 얼기 전에 잉어들 빼놓기, 이미 얼었을 땐 언 연못 깨고 구출하기 등……. 아, 우리 집 반려견 아무는 문 앞에 놓아둔 쓰레기 봉지를 뒤지는 냥이들을 쫓아내는 임무를 맡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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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원생활에서 자연과 공존한다는 것의 의미
전원주택에서 살면 자연과 타협을 보아야 한다. 줄을 타고 미끄러지듯 집을 활보하는 거미들을 일부러 죽이지 않은 것은 그들이 해충을 잡아먹어주기 때문이다. (그래도 내 주먹만 한 거미 앞에선 어쩔 도리가 없었다) 영화 <산의 톰씨>에서처럼 쥐들이 지붕 위에서 운동회를 벌여 타다다닥 떼 지어 다니는데, 실제로는 영화에서 들리는 사운드보다는 더 가벼운 소리다. (영화에서의 소리는 고양이가 지붕 위에서 내는 소리와 흡사하다) 약을 치면 되지 않느냐고? 약을 치는 것도 한두 번이지 시간이 조금 지나면 금세 다시 쥐 달리기 소리가 들렸다. 나중엔 어느 정도 포기하고 같이(?) 살게 되었다. 예쁜 연못은 여름에 아디다스 모기들에게 살을 물어뜯기는 것과 맞바꾸어야 한다. 정원에서 신발을 잘 사수해야 한다, 안 그러면 벗겨진 신발을 산개미들이 점령한다. (상상이 가는가? 경험담이다…) 이럴 땐 물을 뿌려 개미들을 걷어내고 빨리 되찾아와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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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얻는 휴식
마냥 좋을 것만 같은 전원생활 그 현실은 어디 하나 손이 안 가는 곳이 없고 끝없는 수고로움을 필요로 한다. 해도 해도 끝이 없다 마치 잡초처럼. 영화 속에서 별장에 놀러 온 정장 차림의 도시 여성은 홈메이드 된장에는 감동하지만 염소 우리 장 앞에서는 뒷걸음질 친다. 아마 도시 생활에 익숙한 사람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이기 충분할 것 같다.
그럼에도 분명 전원생활의 이점은 있다. 그곳에서는 시간이 느리게 흐르는 느낌을 받는다. 도심보다 조용하고 나긋나긋 흐르는 시간의 느낌이라고 할까. 명상을 하기엔 제격인 것이 산 새 지저귀는 소리, 바람에 산들거리는 나뭇잎과 바람 냄새가 창문을 열면 있다. 아침엔 어디에 있는 닭인지 모르겠으나 닭이 울어재껴 깨워준다. 비가 오기라도 하는 날이면 지붕 밑으로 똑똑 떨어지는 빗소리에 차분해진다. 텃밭을 가꾸는 즐거움을 누릴 수 있다. 아, 단독주택이니 아침이든 밤이든 피아노를 칠 수 있다.
마지막으로, 자연으로부터 얻는 형용할 수 없는 감사함이다. 영화에서 닭장 속 달걀을 꺼내오는 임무를 맡은 여자 아이가 "고맙습니다." 하며 계란을 품에 모은다. 매일 아침 맞아주는 자연의 기운, 잘해준 것도 없는데 쑥쑥 자라는 들풀과 나무, 활짝 피워낸 향기로운 꽃이 그득히 채우는 아름다움에 감사했다. 고양이 톰과 별장 식구들의 소소한 에피소드를 통해 잔잔히 나의 경험들을 떠올릴 수 있었고, 자연과 함께 살아가는 전원생활을 엿볼 수 있었던 영화 <산의 톰씨>였다.